주택경기 착시 경제

▲ 부동산 경기가 주도하는 경제는 위태롭다. 주택건설 사업구조 상 주택투자 급증은 가계부채로 이어져서다.[사진=뉴시스]
신문에 실린 광고는 물론 신문에 끼어 들어오는 전단지 상당수가 부동산 광고다. 아파트ㆍ오피스텔 분양과 상가 및 토지 매입을 권하는 선전 문구를 보노라면 경제 상황이 엄청 좋아 보인다. 서울 강남지역이긴 해도 3.3㎡당 4000만원을 넘는 분양가에 청약 경쟁률이 300대 1을 넘어섰다니 이게 정말 우리나라 이야기인가도 싶다. 건설경기, 그것도 지나치게 끓어오른 주택경기가 왜곡하는 우리 경제 모습이다. 이른바 ‘주택경기 착시錯視경제’다.

한국 경제는 지금 부동산 시장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활황을 유지할 뿐 사방에서 경고음이 울려댄다. 수출과 내수가 동반 침체하고, 실업 사태는 심각해지고 있다. 10월 들어 수출은 10일까지 전년 동기보다 18.2% 감소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판매 중단과 현대차의 파업 및 수출부진 여파로 10월 이후에도 한동안 고전할 것이다.

내수는 관광쇼핑축제 코리아세일페스타로 미래 소비를 당겨쓰고, 부동산 경기가 떠받치는 덕분에 근근이 증가세를 이어가지만 언제 꺾일지 모른다. 10월 말 쇼핑축제가 막을 내리면 소비절벽이 닥칠 것이다. 부동산 경기도 인구 추세를 감안하지 않은 주택 공급과잉과 역逆전세대란 조짐 등 위험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경제의 핵심 엔진인 수출과 내수가 기진맥진이니 고용시장이 원활할 리 없다. 6개월 이상 장기 실업자가 외환위기 이후 최대이고, 9월 청년실업률도 9.4%로 사상 최고다. 해운ㆍ조선ㆍ철강ㆍ석유화학에 이어 자동차까지 주력업종이 휘청대면서 실업대란 우려는 더 커졌다.

건설경기가 경제를 떠받치는 기형적 구조는 통계로 입증된다. 수출이 부진의 늪에 빠진 가운데 건설 부문 의존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지난 2분기 성장에서 건설투자 기여율은 51.5%로 1993년 이래 최고치다. 성장률 3.3% 중 건설투자 부문이 1.7%로 건설투자가 없었다면 성장률이 반토막 났을 게다.

 
이런 건설투자를 주택 부문이 주도하는 것이 더 걱정스럽다. 최근 4분기 동안 주택투자 평균 증가율은 21.9%로 전체 건설투자 증가율의 두배에 이른다. 모델하우스만 보고 계약금ㆍ중도금을 내는 선先분양 후後시공의 주택건설 사업구조 상 주택투자 급증은 고스란히 가계부채로 이어진다.

가계부채는 1300조원을 향해 달려가고, 대출이자만 연간 40조원에 이른다. 가계부채 급증세는 소비여력을 감소시켜 내수부진과 성장둔화를 초래하는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된다. 그간의 저금리 정책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는커녕 시중 자금의 부동산 쏠림과 주택시장 과열 현상을 야기했다.

이런 판에 미국이 연내 금리를 인상하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테니 우리도 저금리 기조를 지키기 어렵다. 그럼에도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8일 “기준금리 여력”을 운운하며 한국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그것도 국내가 아닌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방문길 언론 인터뷰에서. 같은 회의에 참석한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재정 여력’을 강조하며 맞섰고, 금융통화위원회는 10월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건설투자는 속성상 대규모 자금이 필요해 부채를 유발하는 구조다. 사회간접자본(SOC)으로 대변되는 공공토목 부문은 정부 재정지출을, 주택건설이 중심인 민간건축은 가계부채 증가를 초래한다. 따라서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적절하게 관리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미 너무 높고 증가세도 가파르다.

인위적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려고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방조하는 것은 독을 잉태하는 것과 같다. 건설투자 의존형 경제성장은 빚으로 움직이게 하는 ‘부채추동형 성장’으로 오래갈 수 없다. 일본도 1990년대 건설투자 위주의 경기부양책을 썼다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잃어버린 30년’의 단초를 제공했다. 더 늦기 전에 주택담보대출 요건을 강화하고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을 늘려 투기성 거래를 차단하고 주택시장의 과열을 진정시키자.

기업투자 촉진과 수출 회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도 시급하다. 산업 구조개혁과 규제철폐도 일관성과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유일호 경제팀이 이끌어갈 역량이 안 보이면 인적쇄신도 요구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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