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내부자들 ❻

▲ “모히토 가서 몰디브나 한잔 하자”는 것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분간하기 어렵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내부자들’에 등장하는 우장훈(조승우) 검사는 이력과 행보가 독특하다. 시골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홀아비의 자식이며, 경찰에 투신해 혁혁한 실적을 올린 현장 출신이다. 검찰에 특별 채용돼 사회악과 한 판 제대로 붙어볼 꿈에 부푼다. ‘금수저’는 아니라는 얘기다.

우장훈 검사에게 배당된 첫 사건은 불행하게도 미래자동차 오 회장(김홍파)의 비자금 사건이다. 웬만한 조폭은 온몸으로 부딪쳐 소탕해 본 경험이 있는 그는 미래자동차 비자금 사건도 뒷골목 조폭 사건쯤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기업형 조직폭력집단 ‘오회장파’는 구성원 면면부터 간단치가 않다.

대통령 후보인 국회의원 장필우(이경영)는 자신의 정치권력을 이용해 미래자동차에 수상한 대출을 하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국내 최대 재벌인 오 회장은 그 대가로 장필우 의원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한다. ‘오회장파’의 기획실장이기도 한 조국일보의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는 펜대를 휘두르며 바람잡이 역할을 수행한다. 깡패 안상구(이병헌)의 역은 어둠의 돌격대장이다. 일개 검사 따위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조직이다.

한국 사회를 설명할 때 흔히 지연ㆍ학연ㆍ혈연이라는 ‘삼연三緣주의’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하지만 ‘오회장파’는 별다른 ‘삼연’도 없다. 그들은 오로지 이권을 연고로 뭉쳐 ‘우리’가 된다. 그 속에서 그들만의 족보를 만들어 아무나 형님, 동생이 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논설주간과 조폭대장이 호형호제呼兄呼弟를 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정감 있고 푸근한 ‘우리’가 그들에게 붙으면 난폭한 말이 된다. 내부자들에게는 따뜻할지언정 울타리 밖의 외부자들에게는 북풍한설北風寒雪이 몰아치는 ‘우리’다.

오로지 ‘내부자들’ 사이에서만 모든 고급 정보와 이권의 거래가 이뤄진다. ‘우리’라는 울타리 속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다. 세상이 온통 전쟁터와 같은 레드오션이지만 ‘외부자들’에게 견고한 울타리를 친 그들만의 리그는 블루오션의 청정지역을 유지할 수 있다.

▲ 내부자들에게는 따뜻한 ‘우리’가 외부자들에게는 북풍한설로 몰아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신라의 골품제도가 그러했고 조선시대의 붕당정치도 그랬다. 늘어만 가는 새로운 양반들의 유입을 막는 울타리를 치고 우리끼리 ‘해먹어야’ 한다. 끼리끼리 우리가 돼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새로운 족보를 만들어간다. 2층에 올라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딛고 올라온 사다리를 치워버리고, 폭우 속에 비 피할 집을 찾은 사람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우리’가 된다.

우장훈은 그들만의 리그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거부하고 그들의 울타리 밖에서 ‘우리’가 아닌 ‘남’이 되어버렸다. 잘나갈 뻔했던 검사는 변호사로 전업했고, 로펌 변호사로의 스카우트는 언감생심이다. ‘전관예우’와도 거리가 먼 변두리 개업 변호사로 자리를 잡는다. 패기 충만 잘나가던 검사의 전락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들만의 리그에 일격을 가한 우장훈과 안상구(이병헌)가 재회한다. 그들의 울타리 밖으로 내몰린 안상구도 이미 잘나가는 조폭은 포기하고 동네건달쯤으로 전락했다. 두 사람은 우장훈의 변호사 사무실이 입주한 서울의 어느 변두리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나눠 문다. 한때 그들도 활개를 쳤지만 이제는 자신과 상관없는 곳이 돼버린 서울 번화가를 바라보며 “모히토 가서 몰디브나 한잔 하자”며 웃는다.

영화는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잔’하는 것이 속세의 덧없음을 깨달은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기쁨이라면 해피엔딩이겠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밀려난 참담함과 허허로움이라면 새드엔딩이지 않을까.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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