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에도 기계는 기계일뿐”

로봇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왠지 ‘양날의 칼’ 같은 느낌이 든다. 로봇이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영화를 본 탓이거나, 최근 이세돌 9단을 바둑으로 이긴 ‘알파고’를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로봇이 인간을 위협하지 않겠냐는 두려움이다. 로봇계의 대부 로드니 브룩스 회장은 “판타지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최대 로봇 행사인 '로보월드2016'에 로드니 브룩스 리싱크로보틱스 회장이 참석했다.[사진=로봇산업협회]

미국의 대표적인 컴퓨터 과학자이자 미래학자로 꼽히는 레이 커즈와일은 2005년 발간한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놀라운 예측을 내놨다. 커즈와일이 말하는 ‘특이점’이란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넘어서는 시점을 뜻한다. 지능은 물론 지각능력, 판단력, 심지어 감성까지 포함한 영역이다. 그는 이 시점을 2045년으로 봤다.

사람들은 그의 전망을 허무맹랑하게만 듣지 않았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에 늘 흥미를 가졌다. 이런 호기심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잘 드러난다. 가사 일을 척척 해내는 로봇 덕분에 인간이 편리한 삶을 누리는 장면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로봇과 교류를 나누다 깊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심지어 로봇이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도 할리우드 영화의 주요 소재다.

하지만 이런 호기심의 끝에는 “정말로 ‘특이점’이 올까”라는 질문이 있다. 10월 12일. 올해로 11회째 열리는 ‘2016 로보월드’는 이런 질문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특별한 행사다. 국내외 최첨단 로봇 기술을 한 곳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다. 총 183개 업체가 참가해 480개의 부스가 마련됐다.

이 행사가 특별한 건 규모 때문이 아니다. ‘로봇의 대부’로 불리는 로드니 브룩스 리싱크로보틱스 회장의 첫 방한 이벤트 때문이다. 로드니 브룩스는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로 재직 중인 1990년 콜린 앵글, 헬렌 그라이너, 신시아 브리질 등 제자들과 함께 글로벌 청소로봇 시장에서 독점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아이로봇’을 창업했다.

MIT 퇴직 후에는 리싱크로보틱스를 창업, 산업용 협업 로봇시장에 뛰어들었다. 제자들도 로봇시장을 개척하는 산파産婆 역할을 자임했다. 콜린 앵글은 현재 ‘아이로봇’을 경영하고 있으며, 헬렌 그라이너는 미국 최초 상업 배달에 성공한 드론기업 ‘사이피웍스’를 창업했다. 신시아 브리질은 전세계 투자유치에 성공한 소셜 로봇기업 ‘지보’ 개발에 성공했다.

‘2016 로보월드’를 찾은 그는 ‘로봇의 대부’답게 기자에게 흥미로운 얘기를 던졌다. “얼마 전 바둑 대결에서 인공지능 알파고가 승리한 후 공포감이 커졌다. 혹시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계가 오지 않겠냐는 거다. 하지만 그런 세계는 오지 않을 거다. 500년 뒤라면 모르겠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인간을 보완하는 로봇

 
그가 이런 믿음을 갖은 이유는 ‘포섭구조(Subsumption architecture)’에 있다. 포섭구조는 로드니 회장이 로봇 산업에 처음으로 제시한 이론이다. ‘인간의 인지 과정에 중앙통제적인 장치가 존재한다’는 종전 이론을 정면으로 부정한 그는 “로봇에 중앙통제장치가 필수적인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과거 로봇을 만들 때의 접근법을 보자. 일단 중앙통제장치가 주변환경을 최대한 파악한다. 이를 바탕으로 복잡한 연산과 피드백 과정을 거쳐 결과를 내고, 그에 따라 로봇이 움직인다.

하지만 그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중앙통제장치의 역할을 과감하게 줄였다. 그가 만든 곤충 로봇 ‘겐지스’는 이를 증명하는 작업이었다. 겐지스는 중앙통제장치가 모든 행위를 제어하지 않는다. 겐지스(개미 모양)의 다리에 부착된 센서가 각각의 다리를 움직인다. 중앙통제장치가 없어도 특정 행위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겐지스는 놀랄 만큼 빠른 반응속도를 보여줬다. 낯선 환경에서도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가 설계한 구조에 따라 미 항공우주국(NASA)은 화성 탐사로봇 소저너를 만들었다.

로드니 회장의 ‘포섭구조 이론’에 따르면 로봇의 인공지능은 모든 행위를 통제할 수 없다. 당연히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판단하지 못한다. 그가 “커즈와일의 특이점 이론(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는 시점)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로드니 회장은 “커즈와일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면서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사람의 생각을 로봇이 넘을 수 없다고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로봇이 인간의 노동 시장을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이른바 ‘3D업종’을 로봇이 도맡으면서, 인간의 업무 환경과 일자리 수준은 개선될 것이라고 봤다.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이 어려운 수준의 업무를 맡는 미래 역시 불투명하다고 판단했다. 자료를 분석하는 업무나 지적 노동도 어느 정도는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수 있지만 그 규모나 속도를 예상하기는 어렵다는 거다.

 
“병원의 예를 들어보자. 주삿바늘을 놓거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처방전을 내리는 일은 로봇이 할 수 있다. 하지만 검사 결과를 상담하는 것처럼 상호작용이 필요한 서비스를 우리가 로봇에 맡기려고 할까. 의사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업무가 줄어들면서 온전히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 닮은 로봇 나오기 어렵다

그는 오히려 로봇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게 로봇 산업 전체의 실망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대표적인 게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소셜 로봇이다. 이들은 사람의 접촉에 일정한 반응을 할 뿐이지 자연스러운 행동은 없다. 사람이 느끼는 외로움을 기계가 잠시 채워주는 것뿐이다. 최근 여러 기업들이 감정을 나누는 로봇을 설명하는데 이는 ‘과장된 약속’이다. 기계는 여전히 기계로 남아야 한다.”

대신 로드니 회장은 로봇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이점을 강조했다. “리싱크로보틱스에서 만드는 협업 로봇도 마찬가지다. 협업로봇은 아무나 손쉽게 스마트폰처럼 사용하면서 배우면서 쓸 수 있는 산업용 로봇이다. 앞으로 가까운 미래의 도로에는 안전한 자율주행차가 다니고, 서비스 로봇은 고령화 시대에 노인을 살뜰히 돌보게 될 것이다.” 로봇의 대부는 로봇이 인간의 물리적인 한계를 보완하면서 인간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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