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사기 CP 사건 3년 후…

동양그룹 사기 CP 사건이 터진 지 3년이 흘렀다. 사기 CP를 발행한 동양그룹의 일부 전현직 임원은 법적 처벌을 받았고, 동양그룹 계열사는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하지만 CP 사건에 휘말린 4여만명의 울음은 그치지 않고 있다.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는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2013년 발생한‘동양사태’는 투자자 4만2000명에게 1조7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혔다.[사진=뉴시스]

‘동양사태’가 터진 지 3년째 되는 날이던 지난 9월 30일. 시민단체 ‘약탈경제반대행동’과 ‘동양피해자대책협의회’는 서울시 을지로 유안타증권(전 동양증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사기성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발행에 책임이 있는 이혜경 전 동양그룹 부회장은 법적 처벌을 피했다”면서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동양증권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ㆍ사과, 배상ㆍ재발방지 방안 마련 등 지금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양사태’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났지만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시계추를 2013년 9월로 돌려보자. 그해 재계순위 38위였던 동양그룹에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양그룹은 친족기업인 오리온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무산됐다. 당연히 그룹 안팎에 ‘법정관리 가능성’이 깔렸지만 현재현 전 회장은 “그럴 리 없다”는 단호한 말로 투자자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해 9월 30일까지 상환해야 하는 회사채 905억원, CP 165억원 등 1070억원을 막지 못했고, 결국 주식회사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은 법정관리 대상기업이 됐다.

문제는 이들 세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회사채와 CP가 한순간에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설상가상으로 동양그룹 측이 부실한 재무구조와 자금 사정을 숨기고 높은 이자로 개인투자자를 유혹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동양그룹 CP 등에 베팅한 투자자가 ‘불완전판매’의 덫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발생한 피해자는 4만2000명, 피해액은 1조7000억원에 달했다. 2013년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동양그룹과 계열사 CP 투자자의 99.2%, 회사채 투자자의 99.4%가 개인투자자였다. 그로부터 3년, 동양그룹의 사기 CP 사건은 어떻게 마무리됐을까. 현 전 회장은 부실 가능성을 알고도 CP와 회사채를 판매해 1조3000억원대의 피해를 입힌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 됐지만 2심에서 5년이 감형됐다.

동양그룹의 CP와 회사채를 주도적으로 판매한 정진석 전 동양증권 사장은 징역 2년 6개월, 이상화 전 동양인터내셔널 대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김철 전 동양네트웍스 대표는 징역 4년형이 확정됐다. 동양사태 직후 미술품 수백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부회장은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불복해 항소 중이다.

제2의 동양사태 막을 수 있나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동양과 주요 계열사는 여전히 건재하다.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는 각각 지난해 2월과 3월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동양증권은 지난해 대만계 금융그룹인 유안타금융그룹에 매각된 이후 ‘유안타증권’으로 사명을 바꿨다. 동양도 올해 2월 회생절차 2년 4개월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동양은 동양매직ㆍ동양파워ㆍ동양시멘트 등 계열사 주식을 매각해 채무 7074억원을 모두 갚고도 5000억원가량의 여유자금을 보유한 알짜배기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동양사태’에 따른 여파가 하나둘씩 해소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동양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 불완전판매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동양사태가 발생한 2013년 11월 ‘동양그룹 문제 유사사례 재발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금감원은 금융투자자보호, 금융사를 통한 대주주ㆍ계열사 부당지원 차단, 기업부실위험의 선제적 관리 등으로 ‘제2의 동양사태’를 막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동양그룹처럼 대부업체가 자금줄 역할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기업 계열 대부업체의 대주주나 계열사 등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의 100%로 제한했다. 또한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최대주주인 대부업자는 대주주ㆍ계열사 등에 대한 신용공여를 금지했다. 지자체가 가지고 있던 대형 대부업체의 관리ㆍ감독 권한도 금융당국으로 옮겼다.

하지만 기업부실 위험의 선제적 관리와 금융투자자 보호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 9월 발표한 ‘독자신용등급’의 도입안은 대표적이다. 독자신용등급은 모기업과 계열사의 지원가능성을 제외한 개별 기업의 독자적 채무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제도다.

금융당국은 2017년 금융사를 시작으로 2018년 일반기업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2013년 ‘독자신용등급’의 도입을 예고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도 이 제도의 약점이다.

익명을 원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정부가 금융사를 시작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계획대로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규제개혁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4년간 미루던 정책을 쉽게 시행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일반기업으로 확대되는 2018년은 정권이 바뀌는 시기라서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금융회사가 고객이 예탁한 자금을 고객이 지정한 투자처에 투자하는 ‘특정금전신탁’의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금융당국은 동양사태 직후 발표한 ‘특정금전신탁 업무처리 모범규준’을 통해 상품의 위험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했다. 또한 투자 유의사항을 투자자가 직접 확인하고 서명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가입금액을 규제하지 않아서다. 2013년 특정금전신탁의 최소 가입한도를 5000만원으로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졌지만 규제개혁위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2013년 발의돼 기대를 모았던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안’은 빛을 보지 못한 채 폐기됐다. 여기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 도입안이 담겨 있다. 금융당국이 ‘불완전판매에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달리 솜방망이 처벌이 여전하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지난해 큰 손실이 발생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불완전 판매 여부를 점검해 증권사 2곳을 적발했다. 하지만 2곳 중 1곳만 5000만원의 과태료 제재만 받았고 나머지 1곳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불완전 판매를 막기 위해서는 징벌적 성격의 과징금 부과하는 등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며 “몇천만원 수준의 제재로는 불완전 판매를 근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행위로 인해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줘야 한다”며 “고작 몇천만원의 제재로 불완전판매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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