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국감서 각세운 까닭

조양호(67) 한진그룹 회장이 최근 국감 증인으로 나서 한진해운 사태와 관련해 속을 털어놨다. 제수 최은영 전 회장으로부터 부실 덩어리 한진해운을 넘겨받아 2년간 “할 만큼 했으나 역부족이었다”는 게 요지였다.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선친 조중훈 창업주 시절부터 추구해 온 ‘육ㆍ해ㆍ공 글로벌 물류그룹’ 재건에도 큰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향후 한진해운 운명에 눈길이 간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최근 국감에서 한진해운 사태와 관련해 “할 만큼 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속내를 밝혔다.[사진=뉴시스]
“국민들께 죄송하지만 할 만큼 했다. 엄청난 정부지원을 받은 외국 대형 선사들의 저가 공세에 사기업으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조양호 회장은 국회 정무위 국감장(10월 4~6일)에서 한진해운 법정관리 사태와 관련해 이렇게 증언했다. 여야 의원들이 한진해운 침몰과 물류대란 등을 놓고 집요하게 질문공세를 편 데 대해 그는 많은 말을 했지만 핵심 내용은 이렇게 요약된다. 국감 증언석에 함께 나온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등과도 한진해운 처리 과정을 놓고 입장차를 여과 없이 드러내며 각을 세웠다.

특히 산은 이 회장이 “대주주가 팔을 자르겠다는 결단이 없었다”며 자구노력 부족을 공격한 데 대해 “2년 전 인수 전후로 그룹의 알짜배기 자산을 팔아가며 2조원 상당의 유동성을 쏟아 부었을 정도로 할 만큼 했다”고 응수했다.

화주 및 운송정보를 제때 제공하지 않아 물류대란을 키웠다는 임 위원장의 공격에 대해서도 “법정관리 전에 요청 받은 적이 없었다. 당국은 법정관리 사실조차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회생에 성공한 현대상선에 비해 자구노력이 부족했던 게 침몰 요인이 되지 않았냐는 식의 질문에는 “현대상선과는 경우가 다르다. 현대상선 이상으로 자구노력을 많이 했다”며 맞받아쳤다. 

그는 이런 말들도 했다. “40년 역사의 국내 1위 선사 한진해운은 세계 7위 선사, 태평양 노선 세계 3위권 선사로까지 성장했던 회사다. 한진해운의 네트워크와 영업권 등을 인수해 재건해 보려 했지만 막판에 채권단을 설득하는 데 실패해 아쉽다. 우리나라 수출은 90%를 해운에 의존하기 때문에 누가 경영하든 한국 해운업을 위해선 한진해운을 살려야 한다.” 약 8년간(2007~2014년) 한진해운 경영권을 행사했던 제수 최은영 전 회장에게 원초적인 책임론을 제기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해운업의 특수성을 잘 모르는 최 회장 경영진에 의해 한진해운이 많이 부실해졌다.”

조 회장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한진해운 사태로 정부와 언론, 국민들의 시선이 따갑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한진해운을 살리려고 지난 2년 4개월 동안 나름대로 전력투구했다는 걸 알아 달라는 듯 생각의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법정관리를 피하려면 1조2000억원 상당의 유동성이 필요했는데 예상되는 부족액 3000억원 정도를 채권단에서 추가 지원하지 않겠느냐며 조 회장이 버틴 것으로 세간에는 비쳤다.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1위 국적선사 한진해운의 난파를 정부나 금융 당국이 설마 못 본 채 하겠느냐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은 ‘불가’ 쪽으로 나고 말았다. 이제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은 기사회생이나 파산 또는 청산의 기로에 놓여 있다.  

‘심란, 침통, 궁색, 억울, 망연자실….’ 국감장에서 증언한 조 회장의 심경이나 태도 등에 대해 언론이 표현한 단어들이다. 재계 10위의 한진그룹 선장이 한진해운에 발목이 잡혀 14년 회장 재직 중 그 어느 때도 겪지 못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는 얘기다. 재계는 조 회장이 결코 한진해운을 남의 손에 넘겨주거나 망하도록 놓아두지 않으려 했을 걸로 보고 있다.  생전에 ‘해운왕’을 꿈꿨던 선친 조중훈 회장의 유지遺志가 서려 있는 회사이기 때문이었다.

금융위원장ㆍ산은 회장과 각세워

조중훈 회장은 ‘육ㆍ해ㆍ공을 아우르는 글로벌 물류기업 한진’을 꿈꾸며 사업을 펼쳤다. 수송업을 통해 나라에 이바지한다는 뜻에서 ‘수송보국輸送報國’을 경영이념으로 내세웠다. 육운陸運 업체인 한진으로 터를 잡고, 항공 회사인 대한항공을 통해 기둥과 벽을 세운 다음, 해운 업체인 한진해운으로 지붕을 얹어 한진그룹을 축성하려 했다. 그런 아버지의 꿈을 2대째인 자기 때에 와서 더 키우지는 못할망정 몰락하는 것을 보게 됐으니 그의 사업 판단력 및 경영능력이 의심을 받을 수도 있게 됐다. 한진그룹의 꿈도 ‘육ㆍ해ㆍ공’이 아닌 ‘육ㆍ공’으로 쪼그라들 위기를 맞았다.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2015년 매출 22조3150억원에 당기순손실 3070억원을 기록했다. 38개 계열사를 둔 재계 10위다. 한진해운은 연 8조원 전후의 매출로 그룹 전체 외형의 약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큰 사업체였다.

한진해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불어 닥친 해운 불황과 저운임 구조, 살인적인 용선료 등을 견디다 못해 좌초 위기에 봉착했다. 지난해 매출 7조7354억원이었던 한진해운의 용선료가 무려 1조1469억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용선료도 9300억원 상당으로 전망됐다. 조 회장은 보수를 받지 않고 백의종군해 2014~2015년 200억~3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는 등 재건기미를 보여주긴 했다. 하지만 올 상반기 3446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는 등 경영상태가 다시 나빠졌다(그래픽 참조).

인수 전 무려 1400%대에 달했던 한진해운 부채비율은 2014년 1000%대로 낮아졌고 2015년엔 다시 800%대로 낮아졌다. 영업 개선 및 구조조정 노력, 2조원 상당의 유동성 투입 덕분이었다. 하지만 올 상반기 말 다시 1000%대를 넘어서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재계 한 인사는 “조 회장이 한진해운에 더 투자하고 싶어도 그룹 전체가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그를 크게 압박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부에서는 애당초 이번 사태가 조 회장이 좀 더 많은 액수의 사재출연 등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한국 해운산업을 어떻게 끌고 갈지 정부 당국의 산업 정책적 차원의 검토와 대책이 보다 더 필요했다는 주장이다.

2년간 최상급 악재에 부딪쳐

선친 조중훈 회장 별세 이후 14년째 회장직을 맡아 온 그에게 최근 2년 동안 최상급 악재가 거듭 밀어닥쳤다. 2014년 말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으로 그는 속절없이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지난해에는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 처남 청탁 의혹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3월엔 조종사 업무와 관련해 SNS에 댓글을 올렸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의욕적으로 일했던 평창 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자리를 석연찮게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와 뭔가 틀어진 게 있어 그러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세간에 나돌았다. 최근 재건을 꿈꿨던 한진해운마저 법원 손에 넘겨주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장녀의 땅콩회항 사건으로 그룹 이미지가 크게 손상된 이래 불운이 계속되고 있다. 안타깝기도 하고 평소의 기업 이미지 관리란 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도 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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