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왜 컨설팅 업체에 큰 일 맡겼나

▲ 산업계 구조조정이 길을 잃었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지난 6월 정부가 뜻밖의 주장을 펼쳤다. “글로벌 컨설팅사의 보고서를 토대로 조선ㆍ해운ㆍ철강의 구조조정 방향을 잡겠다”는 것이다. 뭔가. 글로벌 컨설팅사의 보고서는 무결점이라는 건가. 이들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구조조정 플랜을 짠다면 정부 스스로 컨트롤타워를 포기하겠다는 걸까. 한국경제의 ‘축’을 건드리는 조선ㆍ해운ㆍ철강업 구조조정이 산으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업계가 자율적으로 외부 컨설팅을 추진했다. 정부는 그 결과를 참조해 산업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지난 6월 ‘제1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가 밝힌 산업계 구조조정의 방향이다. 구조조정의 핵심 산업은 조선ㆍ철강ㆍ석유화학. ‘정부 주도 구조조정은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자율’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그 시점을 전후해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맥킨지(6월), 철강협회는 보스턴컨설팅그룹(5월), 석유화학협회는 베인앤컴퍼니(7월)에 각각 구조조정 방안을 찾아 달라고 컨설팅을 의뢰했다. 하지만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8월 초에 나오기로 했던 맥킨지 보고서는 여태껏 감감무소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의 독자생존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 것 같다”면서 “대우조선해양의 존치를 바라는 정부가 수긍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정부 눈치를 살피느라 보고서 발간을 늦추는 게 아니냐는 거다.

보스턴컨설팅 보고서는 지난 7월 중간보고서가 나왔을 때 철강업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철강업계는 “보고서 내용이 현장의 시각과 맞지 않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정부가 보고서 제출을 무리하게 종용한 결과”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 때문인지 보고서는 두달간 수정작업을 거쳐 발표됐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우려가 있었지만 수긍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철강업계 입맛에 맞게 보고서가 작성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방증이다.

베인앤컴퍼니의 보고서는 아예 업계의 외면을 받았다. 베인앤컴퍼니의 보고서가 발표되던 9월 28일 주요 구조조정 대상으로 꼽힌 삼남석유화학, 금호석유화학, LG화학의 CEO들은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방안은 없고, 생산량 줄이고 연구개발(R&D)에 집중하라는데 그런 말은 누가 못하겠나”고 비꼬았다.

이런 사례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외부 컨설팅은 정부가 강조한 ‘자율’과 거리가 멀었다. 산업계가 ‘무릎을 탁 칠 만한’ 컨설팅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 정부가 “컨설팅 보고서를 토대로 구조조정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때부터 많은 전문가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컨설팅은 과연 만능일까

익명을 요구한 현직 컨설턴트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뛰어난 컨설팅사라도 그들이 기업의 문제 해결방법을 정확히 제시하기는 힘들다. 정석은 컨설팅사가 객관적인 데이터를 모아주고, 이를 토대로 전문가 집단이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거다. 컨설팅사가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는 게 타당한 건지 잘 모르겠다.” 컨설팅사에 구조조정 방안을 듣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라는 얘기다. 

‘글로벌 컨설팅사의 분석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느냐’ ‘글로벌 컨설팅사의 컨설팅은 국내 경제ㆍ기업 상황과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계추를 돌려보면 글로벌 컨설팅사들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사례는 적지 않다.

2010년 KBS를 컨설팅했던 보스턴컨설팅그룹. 당시 KBS는 “근본부터 탈바꿈할 것”이라면서 컨설팅 비용으로 24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막상 보고서가 나오자 내부 임원들 사이에선 “24억원을 들인 컨설팅이 맞느냐” “새로운 게 하나도 없다” “수신료 인상의 명분을 획득하려고 컨설팅을 받은 것 아니냐”는 등의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경영진의 특정한 목적에 의해 엉터리로 조작된 컨설팅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거였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도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맥킨지는 남용 전 부회장이 LG전자 수장으로 있던 2007~2010년 LG전자로부터 수백억원의 자문료를 받고 경영 컨설팅을 해줬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LG전자의 영업이익은 2006년 4조540억원에서 2008년 51억원으로 곤두박질쳤고, 2010년에야 종전의 반토막 수준(2조6807억원)을 회복했다. LG전자 전직 임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가 잇따라 터진 탓에 이익을 내기 힘들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손실폭이 너무 컸다”면서 “손실을 최소화하지 못했다는 것만 해도 실패한 컨설팅”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컨설팅을 정부가 추진한 이유는 뭘까. 김상조 한성대(무역학) 교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산업계를 분석하라고 하면 외국계 컨설팅사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더 잘 할 거다. 하지만 그걸 토대로 구조조정 방향을 잡으면 누가 믿어주겠나. 그러니 글로벌 컨설팅사에 맡기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컨설팅 내용이 부실하다고 남 탓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 컨트롤타워 역할도 팽개쳤으니 이런 한심한 상황에 처한 거다.”

▲ 글로벌 컨설팅사라고 해서 모든 걸 꿰뚫어 보는 건 아니다.[사진=뉴시스]
또 다른 분석도 있다. 현직 컨설턴트의 얘기를 들어보자. “오너십이 있는 기업은 컨설팅을 토대로 방안을 낼 수 있는 의사결정 체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누군가 책임을 지지 않는 공공기관은 그렇지 않다. 정부가 컨설팅을 토대로 구조조정 방향을 잡는다는 건 컨설팅 보고서를 정부 입맛에 맞게 다듬어 근거로 삼거나 책임 회피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정부가 구조조정에서 뭘 해야 할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흥미롭게도 두 의견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는 과연 뭘 했느냐다. 김상조 교수가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내팽개쳤다”면서 목소리를 높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선ㆍ해운ㆍ철강업의 구조조정은 한국경제의 ‘축’을 건드리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런 국가적 대사를 정부는 외부 컨설팅업체에 맡겼고, 그 결과를 토대로 ‘방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스스로 무능함을 인정한 건가 오랜 사대주의의 발로인가. 정부의 답이 무엇이든 국가적 구조조정은 답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