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민영화에 숨은 우려

말 그대로 4전 5기. 우리은행이 다섯 번째 민영화에 도전하고 있다. 정부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기하면서까지 지분 매각에 나섰고 시장은 뜨거운 관심으로 답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한두개가 아니다. ‘이번 민영화 작업도 완전한 의미의 민영화가 아니다’는 지적은 가장 큰 산이다.

▲ 우리은행 지분 매각 예비입찰이 흥행하면서 민영화 성공 가능성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사진=뉴시스]

“우리 모두의 숙원인 민영화를 반드시 달성하겠다.” 2014년 12월 30일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목표인데, 이 말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우리은행의 민영화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어서다. 2010년 이후 추진된 우리은행의 민영화 작업은 번번이 실패했다. 일괄매각, 분할매각, 블록세일 등 모든 방안이 검토됐음에도 4번이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10년엔 유력한 인수 후보였던 우리금융 컨소시엄이 입찰을 포기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2011년에는 관치금융(주요 인수후보 산업은행), 2012년엔 메가 뱅크 논란(주요 인수후보 KB국민은행)에 휘말려 민영화 작업이 좌초됐다. 2014년에는 분리매각을 시도했지만 중국의 안방보험만이 입찰에 참여하면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사실 우리은행의 민영화 작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우리은행의 지분 30% 이상을 통째로 매각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우리은행 입찰전戰에는 산업은행(2차), KB국민은행(3차) 등 몸집이 큰 금융사만이 인수주체로 거론됐고, 이는 민영화를 막는 ‘관치금융’‘메가뱅크’ 논란을 일으키는 변수로 작용했다. 공적자금 회수에 초점을 맞춘 게 민영화를 막는 걸림돌로 작용한 셈이다.

▲ 정부가 우리은행 지분 매각 이후 자율경영을 선언했지만 시장의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런 실패를 의식해서인지 정부는 다섯 번째 민영화 작업에선 다른 카드를 꺼내들었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의 지분 51.6% 중 30.0%를 4.0~8.0%씩 쪼개 파는 ‘과점주주 매각 방식’을 택한 것이다. 여기에 4.0% 이상의 지분을 매입한 과점주주에게 사외이사 추천 기회를 부여하고 이사회와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은행장 선임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정부가 이렇게 우리은행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내려놓자 시장이 반응했다. 지난 9월 23일 마감한 예비입찰에 총 18곳의 국내외 투자자가 참여했다. 여기에 시장의 예상을 웃도는 실적 달성이라는 호재도 만났다. 올 3분기 우리은행의 당기순이익은 3556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15.8%나 증가했다. 누적 순이익도 1조1059억원으로 전년 동기(8402억원) 대비 31.6%(2657억원)이나 늘어났다.

자산 건전성도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3분기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1.05%로 2015년 말 1.47%보다 0.42%포인트 개선됐고 같은 기간 연체율은 0.82%에서 0.58%로 낮아졌다. 박진형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우리은행의 펀더멘털이 개선되면서 양호한 실적이 이어지고 있다”며 “주가 상승과 민영화 성공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김은갑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실적개선 추세에 최근 민영화 투자의향서 호응도까지 높았다”며 “잠재적 오버행(대량대기매물) 우려가 크게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민영화 4전 5기 성공할까

하지만 우리은행의 민영화 작업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은행의 주가 상승이 인수가격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은행의 주가는 정부가 과점주주 매각 방식을 발표한 8월 22일 1만250원에서 지난 19일 1만2550원으로 20% 가까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민영화 이후 자율경영이 가능할지를 둘러싼 논란도 많다. 언급했듯 정부는 이번 민영화 작업을 통해 예금보험공사의 우리은행 지분 51.6% 중 30.0%를 매각하기로 했다. 계획대로 매각에 성공해도 예보 지분은 21.6% 남는다. ‘민영화 이후 우리은행이 자율경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부는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집단지배체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분 매각 이후 주주협의회를 구성해 사회이사의 과반수의 추천권을 과점주주에게 부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아울러 예보에서 파견한 비상임이사를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제외하고 2001년부터 맺어온 경영정상화 이행약정(MOU)도 해지하며 기업 가치와 직접 관련되는 중요 사항에 대해서만 의견을 제시할 계획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우리은행 지분 30.0%를 매각하는 대로 자율적 경영을 보장할 것”이라며 “예보가 가진 20.0% 지분은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약속이 실제로 지켜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예보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 21.6%는 정부가 우리은행에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는 충분한 지분량이다. 더구나 금융산업의 생태계는 여전히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지분이 있는 금융회사나 그렇지 않는 금융회사나 눈치를 보는 건 마찬가지”라면서 “예보가 30.0%를 매각한다고 해서 우리은행의 지배권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고 꼬집었다.

정부 입김 벗어나긴 힘들어

이에 따라 자율경영을 보장하기 위한 더욱 확실한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금융업을 사실상 정부가 컨트롤하고 있어 매각 이후에도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정부가 민영화 작업 이후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도록 만드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권을 온전히 넘겨주지 않는 형태의 지분매각은 확실한 민영화라고 보긴 힘들다”고 강조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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