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의 법인세 인하론 다시 보니…

“법인세 인상 주장에는 다섯가지 오해가 있다. 우리나라는 오히려 법인세 인하를 포함한 기업 투자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논리를 반박했다. 각종 통계가 기반이 됐다. 그렇다면 전경련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고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전경련의 주장을 다시 살펴봤다.

▲ 전경련이 '법인세 인상'의 근거에 오해가 있다며 반박 자료를 냈다. 하지만 전경련의 자료에도 빈틈이 적지 않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법인세 인상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인하된 법인세를 원상 복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재계는 강력하게 반발한다. 가뜩이나 경제상황이 어려운데 법인세까지 오르면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재계 입장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최근 법인세 인상을 반대하는 보고서까지 냈다.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에 오해가 있다는 거다.

투자ㆍ고용 늘었다 vs 의미 없다 전경련은 ‘법인세를 낮췄음에도 기업이 투자ㆍ고용을 안 늘렸다는 것은 오해’라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통계를 제시했다. “우리나라 30대 그룹은 2008년 이후 연평균 투자 5.2%, 종업원수는 5.2%, 인건비는 7. 7%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연평균 경제성장률 3.1%, 전국 취업자 수 증가율 1.4%,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 2.2%와 비교해 보면 매우 고무적이다.” 쉽게 말해 법인세를 낮췄기 때문에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이 늘어났다는 게 전경련의 주장이다.

언뜻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30대 그룹의 투자 규모는 2009년 72조1000억원에서 2015년 116억6000억원으로 증가한 건 맞다. 하지만 같은 기간 매출 역시 861조원에서 1232조2000억원으로 늘었다. 매출이 증가한 만큼 투자 규모도 늘어난 셈이다. 투자가 늘어난 게 법인세 인하 덕분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거다.

고용이 늘었다는 통계도 짚어봐야 한다. ‘고용의 양’ 못지않게 중요한 게 ‘고용의 질’인데, 대기업 고용의 질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서다. 노동부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의 비정규직 비율은 2014년 기준 37.2%에서 지난해 39.5%로 증가했다. 흥미로운 건 기업규모가 클수록 비정규직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300명 이상 500명 미만 기업은 비정규직 비율이 29.7%인데, 1만명 이상 거대기업은 41.7%나 된다. 우리가 흔히 ‘파견직’으로 부르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비율도 300명 이상 500명 미만 기업은 4.3%에 불과한데 1만명 이상의 거대기업은 32.9%나 된다.

김호균 명지대(경영정보학) 교수는 “법인세율 인하 이후 경제력 집중과 고용의 질 저하로 인하여 양극화와 불평등이 더욱 심화됐다”며 “실제로 국민들 역시 대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늘었다는 걸 체감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유보금 안 늘었다 vs 천만의 말씀 전경련은 “법인세 인하 이후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되레 늘었다”는 주장은 오해라는 입장을 펼치고 있다. 법인세 인하로 아낀 세금규모가 사내유보금에 비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법인세를 인하한 이후 사내유보금이 급증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상위 1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2009년 271조0000억원에서 2014년 537조8000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 전경련은 "법인세 인상은 경제위기 극복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는 결과"라고 주장했다.[사진=뉴시스]
이런 주장에 전경련은 “사내유보금은 쌓인 현금이 아니라 80% 이상이 설비ㆍ재고 등의 형태로 투자된 자산”이라고 맞받아친다. 세금을 내고 남은 세후이익에서 배당ㆍ성과급 등을 제외한 자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산설비나 공장 등 실물자산은 물론 금융상품의 형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 사내유보금이 가계소득으로는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 투자→가계소득 증가→소비 증가→내수활성화’의 경제 선순환 고리에 사내유보금이 낄 자리는 없다.

세입 증가 vs 세입 감소 “법인세 인하로 세입 기반이 잠식됐다.” 전경련은 이 주장에도 반기를 든다. 1995년 8조7000억원이 걷히던 법인세수가 2015년 45조원으로 크게 늘었다는 거다. 하지만 이 주장은 빈틈이 너무 많다. 국세수입에서 법인세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8년 23.0%에서 2015년 20.8%로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팀장은 “1995년과 2015년의 법인세수를 비교하는 자체가 코미디”라며 “최근 세수 동향을 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꼬집었다.

재정건전성 양호 vs 논외의 문제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법인세 인하로 재정건전성이 악화됐다는 주장에 전경련은 이렇게 반박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5번째로 양호하다는 이유에서다. 국가채무 역시 2015년 기준 OECD 평균 114.6%인데, 우리나라는 38.5%에 불과하다는 게 전경련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OECD 평균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재정상태가 양호한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다.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출을 최대한 억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일반정부가 지출한 돈은 GDP 대비 31.0%. 이 비중이 40.0%를 넘지 않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일랜드(35.1%), 라트비아(37.2%) 등 3개국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6월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재정정책 여력이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높다”며 “재정의 역할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인 관리재정수지는 2007년 6조8000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뒤 2008년부터 9년 연속 적자다. 2012년 -17조4000억원이던 관리재정수지는 현 정부 출범 후 매년 큰폭으로 늘었다.

법인세로 복지 못해 vs 생뚱맞은 주장 시민단체와 야권에선 법인세 인상을 통해 부족한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계는 “법인세 인상으로 걷히는 세금으로 복지재원을 충당하기엔 터무니없이 적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20대 총선에서 정치권이 제시한 주요 복지공약 실현에 22조7000억원이 추가로 필요하지만, 법인세 인상(과세표준 500억원 이상 대상, 3% 인상 시)으로 징수 가능한 금액은 3조원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는 생뚱맞은 주장이다. 법인세율 인상으로 복지재원 충당할 수 없으니, 아예 하지 말자는 것과 다를 바 없어서다. 그렇다면 어떤 세금을 활용해서도 복지재원을 만들 수 없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사팀장은 “빨리 법인세부터 정상화해서 공평과세의 첫발을 내디뎌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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