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블러드 다이아몬드❶

▲ 시에라리온 내전으로 가족을 잃은 평범한 농부는 희귀한 핑크 다이아몬드를 발견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는 에드워드 즈윅(Edward Zwick) 감독의 2006년 작품이다. 그는 ‘가을의 전설(1994년)’과 ‘라스트 사무라이(2003년)’로 익숙한 감독이다. 전작들을 통해 역사의 전환과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서 고뇌하고 욕망하며 속절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온 감독은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도 그 시선을 이어간다.

영화의 배경은 1999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Sierra Leone) 내전이다. 일단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관람이 조심스럽다. 디스커버리 채널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이 보여주는 아프리카는 대개 숨 막히도록 아름답지만, 다큐멘터리나 영화가 담아내는 아프리카의 모습은 대개 숨 막히도록 고통스럽다. 신이 창조한 아프리카는 숨 막히게 아름답지만 인간들의 손을 탄 아프리카는 그냥 숨 막힐 뿐이다. 신성모독에 가깝다.

이야기는 평범한 농부가 희귀 다이아몬드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시에라리온 내전 중에 반군들에게 가족을 잃고 다이아몬드 광산에 끌려간 평범한 농부 솔로몬 밴디(디몬 하운수)는 강제노역 중에 무척 크고 색상까지 희귀한 핑크 다이아몬드를 발견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용병 출신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엄청난 다이아몬드의 냄새를 맡고 솔로몬에게 접근한다. 불법 다이아몬드 유통의 흑막을 파헤치려는 미국 신문기자 매디 보웬(제니퍼 코넬리)도 그들과 엮인다.

시에라리온 반군은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번 돈으로 세력을 확장한다. 그리고 급기야 수도 프리타운(Free Town)에 총공세를 감행한다. 즈윅 감독이 특별히 공들인 듯한 프리타운에서의 정부군과 반군의 시가전 장면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서양인들을 위한 호텔 하나만 유럽풍으로 그럴듯할 뿐이다. 명색이 수도라는 프리타운의 전경은 ‘번화한 쓰레기 하치장’이나 다름없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인구만 늘고 정비되지 못한, 불결하고 무질서한 파리와 런던을 두고 ‘도시는 신神의 가래침’이라는 독설을 남겼다고 한다. 아마 루소가 불교에 조예가 있었다면 ‘신의 가래침’ 대신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수라阿素羅는 하늘의 뜻에 어긋나고 하늘로부터 버림받았음을 의미한다. ‘신의 가래침’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영화 속 프리
▲ 무수한 흑인을 살상했을 대니 아처가 목숨 걸고 흑인 농부를 호위하는 건 핑크 다이아몬드를 향한 욕망 때문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타운은 신의 피조물이 아니다. 쓰레기 하치장 같은 모습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은 ‘신의 가래침’이라는 루소의 남다른 표현력에 감탄하게 할 뿐이다. 남루하기 짝이 없는 난민촌 같은 시가지에 남루하기 짝이 없는 시민들을 사이에 두고 정부군과 반군이 화력을 쏟아 붓는다. 남루한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어나가거나 공포에 질리고 머리를 감싸 쥔 채 무조건 달린다. 하지만 그 남루함 속에서도 군복은 번듯하고, 총과 박격포, 장갑차 역시 번쩍이는 최신형이다.

이미 신에게 버림받은 아수라장 한복판에서 백인용병 대니 아처가 솔로몬 밴디를 ‘호위’하며 목숨 걸고 달린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용병 출신으로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ㆍ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 최전선에서 무수한 흑인의 살상을 일삼았을 그가 난데없이 목숨 걸고 흑인농부를 호위하고, 활로를 뚫는다. 그에게 흑인농부는 핑크 다이아몬드였던 거다. 인종도 뛰어넘고 목숨도 건너뛴 욕망이다.

핑크 다이아몬드를 향한 욕망 앞에선 누가 죽어나가든 상관없다. 다이아몬드만 지키면 된다. 감히 신이 만든 땅에서 신의 피조물들이 연출할 수는 없는 장면이지만 신이 뱉어버린 가래침 속에서라면 능히 벌어질 만한 모습이다.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풍광과 핑크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신의 온갖 선물을 받은 아프리카. 그곳은 어떻게 신이 버린 아수라장이 되고, 또 인간 군상들이 모인 그 도시들은 왜 신의 가래침이 돼버렸을까.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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