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서동윤 고용노동부 천안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

서동윤(38) 고용노동부 천안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려면 성장에 방점을 찍되 성장 전략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만들라고 정부가 대기업을 압박해 봤자 숫자만 인상적인 질 나쁜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단언했다.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 서동윤 근로감독관은 “계층 간 이동이 예전처럼 가능해지려면 정부가 공유경제를 지원해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성장이냐 고용이냐는 우선순위가 아니라 방향성의 문제라고 봅니다. 성장하면서 고용을 늘리는 길을 찾아야 돼요. 성장 없이는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려면 정부가 대기업보다 창업 기업, 중소 성장 기업을 지원해야 합니다.” 서동윤 고용노동부 천안고용노동지청 근로감독관은 “대기업은 성장을 하더라도 성장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을 쓰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성장에 방점을 찍되 성장 전략의 초점이 바뀌어야 합니다. 대기업이 아니라 창조적 아이디어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시장 개척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래야 시장 진입자가 많아지고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요. 압축성장에 대한 반동으로 우리 사회에 성장 거부감이 있는데 일자리 창출은 성장의 결과물입니다.” 그는 지난해 12월 「누가 나의 일자리를 빼앗았는가?」란 책을 냈다. 여기서 그는 “현대사회에서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계급화 현상 때문이며 이 계급화를 제대로 극복해야 일자리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일자리를 누가 빼앗아 갔나요?
“고도 성장기를 지나 성장이 멈추다시피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그 결과 능력 외에 인맥, 재산 등 구직자의 배경이 구직에도 크게 작용을 합니다. 자원이 많은 기득권층이 일자리를 둘러싼 각축에서도 유리할 수밖에 없어요. 일부 대기업 노조가 일자리를 세습하려 한 것도 일종의 기득권 사수죠.”

✚ 개천에서 용 나기가 어려워졌군요?
“이미 비기득권층은 좀처럼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계층을 막론한 자유 경쟁이 아니라 계층 안에서만 경쟁이 이뤄지기 때문이죠. 계급화로 인해 기득권층은 이미 비기득권층과는 경쟁하지 않아요.”

✚ 우리 사회에서 계층 간 이동 가능성이 작아진 건 다수가 체감하는 현실입니다. 이른바 비기득권층으로서는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나요?
“1970년대 정부가 농촌을 지원하느라 지역별 단위 조합을 협동조합 형태로 결합한 후 중앙에 인위적으로 컨트롤 타워를 만들었습니다. 이게 농협입니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몇개 업종을 선정해 협동조합을 만들도록 하면 대기업처럼 규모의 경제를 이뤄 내수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해외시장도 개척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역의 소규모 두부 업체끼리 자본을 합친 후 중앙에서 품질을 관리하고 유통망을 구축하게 하는 거예요. 자생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진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달리 우리나라는 시장 생태계가 이미 파괴된 상태입니다.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낼 힘이 있는 정부가 공유경제를 지원해 생태계를 복원해야 합니다.”

✚ 일자리는 주로 중소기업이 만들어 내는데 대기업에 의존하는 하청구조 탓에 제대로 성장을 못합니다. 대기업 의존형 성장도 한계에 다다른 거 아닌가요?
“중소기업은 좋은 제품을 내놓아도 대기업 제품에 비해 신뢰도가 낮고 애프터서비스를 하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수시장에 성장의 토대를 마련해 주고 해외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필요한 지원을 하면 대기업에 치이지 않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 서동윤 근로감독관은 “비정규직, 내부 하청업체도 참여하는 다자간 협상 체제로 노사협상의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 기존 정부 지원 체제의 문제는 뭡니까?
“웬만한 지원제도는 다 들어와 있습니다. 기업들 특히 대학생 등 창업하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지원책이 기업 활동이 아니라 지원금 체제에 맞춰져 있는 게 문제예요. 정부는 단기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고 기업은 돈에 목말라 있다 보니 지원금 체제에 목을 매게 된 거죠. 지원금도 창업 후 몇 년 지나면 끊깁니다. 일본ㆍ대만처럼 강소기업이 나오려면 초기 지원은 줄이고 성장 단계 지원을 늘려야 합니다.”

✚ 중소기업 쪽의 문제는 뭐라고 보나요?
“대기업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경영이 어려우면 연구ㆍ개발(R&D) 인력부터 줄입니다. R&D가 부진하다 보니 협상력이 떨어져 대기업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죠.”

✚ 2012~2015년 근로자 고용이 13.4% 늘었는데 100대 기업은 절반인 7.3%, 20대 기업은 그 절반인 3.4% 수준에 그쳤습니다. 대기업이 고용을 늘리게 하려면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부가 압박해 봐야 숫자만 맞춘 질 나쁜 일자리가 만들어집니다. 「노동의 종말(제레미 리프킨 저)」에서 묘사한 대로 자동화ㆍ기계화로 기존 인력도 해고하는 실정이에요. 일자리를 만들게 하기보다 중기와 동반성장을 하게 하고, 창의적인 기업을 지원해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도록 해야 합니다.”

✚ 이른바 ‘노동귀족’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노사 협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대기업에 노사관계가 형성된 시기와 달리 지금은 간접 고용 인력이 훨씬 많아요. 비정규직, 내부 하청업체도 참여하는 다자간 협상 체제로 협상 틀을 전환해야 합니다.”

✚ 노동과 관련한 경제 민주화 과제와 해법이 무엇이라고 보나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거죠. 우선 직종별로 비정규직 사용 비율을 제한해 인원을 최소화하는 겁니다. 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지키도록 해 임금ㆍ복지 면에서의 차별을 해소해야죠. 근본적으로는 인건비 감축을 통한 성장에서 벗어나 산업구조를 바꾸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합니다. 청년실업도 근본적인 원인은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거예요.”

✚ 공기업 민영화는 어떻게 보나요?
“독점 상태의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건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민영화를 하는 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인데 경쟁하지 않는 독점 기업은 민영화해 봤자 효율성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죠. 단적으로 우리나라 철도공사, 담배인삼공사, 한국전력은 독점에 가깝습니다. 이런 기업을 민영화하면 독점 시장에 대한 통제력만 잃을 뿐입니다.”

✚ 민영화된 일부 기업은 다시 국영화하는 게 대안일 수도 있겠습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처럼 경영 잘하는 공기업을 굳이 민영화할 필요가 있을까요?
“공항은 공공성이 강하고 입지가 중요해 경쟁화하기도 어렵습니다. 민영화하더라도 독점 상태가 지속될 거라는 거죠. 민영화한다는 건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독점 이익을 특정 민간 기업에 이전하는 거예요. 담배인삼공사, 철도공사, 한국전력의 경우 다시 국유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는 다음에 쓸 책에서 사회정의 문제를 다루려 한다고 말했다. 정의란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기보다 시대 상황에 따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공정한 분배가 곧 정의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유주의의 가치는 개인의 자유와 더불어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려면 경쟁화 정책을 써야 돼요. 경쟁 우대, 경쟁의 확대, 시장의 실패자를 다시 시장에 끌어들이는 재진입 정책이 그것이죠.”

그는 연세대 행정학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행정고시에 두 번 실패한 후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 시험을 치르고 7급 공무원이 됐다. 공무원이 된 지 10년, 연구를 좋아해 공부를 계속하는 한편 미국에 유학해 정책학을 더 공부할 꿈을 꾸고 있다. “공부에 때가 있다는 건 무책임한 말이에요. 정상적인 자본주의 사회라면 언제든 노력해 성공할 수 있어야죠. 단번에 성공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좌절과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역동적인 사회를 만들어야죠.”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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