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독대를 좋아하면…

▲ ‘최순실 게이트’는 측근경영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사진=뉴시스]
어느 재벌회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회장이 매일 2~3시간씩 문을 닫고 A임원과 독대를 했다. 무슨 얘기인지 바깥에서는 들리지 않았지만, 때론 심각하고 때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에 있었다.

회장실 독대를 마친 A임원이 나오면 그룹 모회사 사장이 득달같이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임원 앞에서 직급이 훨씬 높은 사장이 선 자세로 그가 말하는 내용을 받아썼다. 일과이다시피 했다. 그룹의 주요 인사나 조직개편 예산집행까지 이런 방식으로 이뤄졌다. 모기업 사장이 주재하는 회의는 잡담이나 하는 무력한 회의가 된 반면, A임원이 주재하는 회의는 어전회의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룹 사람들은 상무급인 A를 부회장이라고 불렀다. 그의 눈 밖에 난 임원들은 그룹 감사실을 동원해 뒷조사를 하니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단언컨대 감옥을 자주 들락거리거나 기업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은 기업들은 대부분 CEO의 눈과 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장의 말이 측근 실세를 통해 전달되니 그의 말은 곧 회장의 육성이나 다름이 없게 된다. 회장과 독대하는 특정인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것을 막을 제동장치가 없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특정인과 독대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회사가 20년 만에 이렇게 성장한 배경엔 오너 경영인이 특정인이 아닌 그룹 전체의 미래를 놓고 직접 소통을 했기 때문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나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와 같은 걸출한 경영인들은 모든 업무를 장악하고 직접 챙겼다. 목표를 정해놓고 임직원을 이끌었다. 그러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2ㆍ3세 회장은 대부분 업무를 잘 모르고, 자신감이 떨어지며 사람 만나는 것도 두려워한다. 게다가 귀가 얇고 의심이 많고 탐욕스럽다. 물론 정도경영을 하는 2ㆍ3세도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측근경영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과 40년 가까이 친분을 쌓아온 ‘자연인’ 최순실에게 힘이 몰렸고, ‘영악한’ 그녀는 이를 십분 활용했을 것이다. 전경련을 통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8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재벌들로부터 끌어 모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대통령의 연설문과 해외순방 때 의상은 물론 청와대와 내각 인사에 개입했다는 증거들이 속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 4대국정 지표 중 하나인 ‘문화융성’ 관련 세부사업을 짜고 사업별 예산까지 책정했다고 하니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최순실 게이트는 희대의 요승으로 불리는 고려말 신돈과 제정 러시아 말기 라스푸틴을 연상케 한다. 이들은 왕과 황제의 어리석음을 이용해 권력 1인자로 전횡하다 결국 나라를 망하게 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성을 상실했고, 권위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대통령이 사태의 원인이니 과거 대통령처럼 비리의 책임을 가족이나 부하에게 돌리고 꼬리를 자를 수조차 없다. 대통령이 국기 문란의 장본인으로 전락한 것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얼마 전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국회에서 대통령과 직접 대면보고를 한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수출이 급감하고, 청년실업이 하늘 높이 치솟고, 대우조선해양이나 한진해운문제 등 촌각을 다투는 난제가 산처럼 쌓였는데도 경제팀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GM사태를 직접 소매 걷고 나서 불과 3개월 만에 해결의 기틀을 마련했다.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라는 지휘봉으로 일본경제에 자신감을 불어넣는데 성공했다. 한국은 어떤가. 측근에게 보고하고, 측근을 통해 지시사항을 하달 받는다. 세월호가 침몰해도, 메르스가 일파만파로 번져도 컨트롤타워의 최정점인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이유다.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인 김현철씨의 비리로 리더십이 휘청거리며 가뜩이나 어려웠던 국내외 경제상황과 맞물려 비극적인 외환위기를 맞았다. 지금 국가경제는 그 당시보다 더 나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출구전략조차 마땅치 않다. 삼각파도를 헤쳐 나갈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리더와 오너는 다르다. 오너는 “전진 앞으로”를 외치고, 리더는 “나를 따르라”고 외친다. 위기의 한국호에 닥친 절박한 문제는 폭풍우를 헤쳐갈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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