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보다 ‘오래가는 회사’가 낫다
1등보다 ‘오래가는 회사’가 낫다
  • 성태원 대기자
  • 호수 213
  • 승인 2016.11.02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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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혁 현대코퍼레이션그룹 회장

정몽혁(55) 현대코퍼레이션그룹 회장이 홀로서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연말 현대중공업으로부터 현대종합상사를 넘겨받아 독립경영에 나섰던 그는 최근 그룹명과 창립기념일까지 바꾸며 제2창업을 독려하고 있다. 현대가家 오너 2세이면서 ‘비운의 황태자’로 불리었던 그가 늦깎이로 범凡 현대가 오너로 변신한 것. 현대종합상사 창립 40주년이자 그룹 홀로서기 원년의 경영 성적이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 정몽혁 회장(가운데)이 현대종합상사 창립 40주년 기념식에서 홀로서기를 선언했다.[사진=뉴시스]
“창립 40주년을 기해 현대코퍼레이션그룹으로 거듭나 재도약을 꾀하겠습니다.” 정몽혁 회장은 지난 9월 29일 저녁 6시 현대종합상사 창립 40주년 기념식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 3층 그랜드볼룸 행사장에 나온 내빈 400여명 앞에서였다. 호스트였던 정 회장에게 이날은 단순한 기념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진정한 홀로서기와 제2창업을 선언한 날이었기 때문.

축하객들 앞에서 그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자신의 인생 역정처럼 기업체 현대종합상사의 역정 또한 파란만장했기 때문이다. 범 현대가 오너 2세인 자신의 굴곡 많았던 27년 사업 역정과 현대의 간판 상사商社 현대종합상사의 기구했던 운명이 돌고 돌아 비로소 새 도약을 꿈꾸는 자리에서 만났다고나 할까.

그가 이번 현대종합상사 창립 40주년을 기해 꾀한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진정한 홀로서기를 선언한 게 가장 눈에 띈다. 현대종합상사를 통해 현대가 오너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려 한 것이다. 정 회장은 그룹 명칭부터 새로 정했다. 현대종합상사의 기존 영문 명칭인 ‘현대코퍼레이션’을 그대로 따서 ‘현대코퍼레이션그룹’으로 바꾸었다. 이 그룹명에 지난 27년 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홀로서기를 도와준 현대가 가족들에 대한 고마움과 이제 자기도 어엿하게 ‘현대’ 이름을 단 새 그룹을 꾸리게 됐다는 점을 담고 싶어 한 것 같다.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자가 축성한 현대그룹은 2000년 3월, 2세들 간에 벌어진 소위 ‘왕자의 난’을 계기로 급속한 분가의 길을 걷게 된다. 16년이 지난 금년 10월 1일 ‘정몽혁의 현대코퍼레이션그룹’이 늦깎이 출범을 함으로써 왕자의 난 전에 이미 분가했던 형제그룹을 포함, 범 현대가 그룹기업은 무려 10개로 늘어났다.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현대산업개발그룹,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 한라그룹, KCC그룹, 성우그룹에 이어 현대코퍼레이션그룹이 추가된 것이다.

정 회장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현대코퍼레이션그룹 출범을 “이산가족을 다시 만난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큰 아버지 정주영 회장이 직접 창업한 회사를 워크아웃 7년 만인 2009년 채권단으로부터 현대 품(현대중공업)으로 찾아온 데 이어 7년만인 올해 또다시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독립해 새 그룹으로 출범시킨 게 마치 이산가족을 찾은 기분이 들게 한다는 얘기다.

그는 정주영 회장의 다섯째 동생인 고 정신영 씨의 외아들이다. 정신영 씨는 서울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를 하다가 독일 유학을 떠났으나 32세였던 1962년 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정 회장의 나이 두 살 때였다. 자연 그는 현대가 오너 2세들 중 가장 굴곡 많은 인생역정을 거치게 된다. 평소 동생 정신영 씨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정주영 회장은 조카 정몽혁을 알뜰하게 보살폈다고 한다.

창립 40년 계기 홀로서기 가속

이런 집안 분위기가 정주영 회장 사후에도 현대가 사람들에게 이어져 왔다는 게 재계 관측이다. 그는 조카인 자신을 28세 때인 1989년 극동정유 부사장 자리에 앉힌 정주영 회장과 2002년 경영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현대정유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메티아 사장자리를 맡긴 정몽구 회장에 대한 고마움을 특히 잊을 수 없다고 한 인터뷰에서 토로한 적이 있다. 지난 2009년 워크아웃 중이던 현대종합상사를 현대중공업이 범 현대가로 찾아올 당시 대주주이자 사촌인 정몽준 의원(당시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도 그에게 현대종합상사 경영을 맡기며 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연말 현대중공업이 재무구조 개선차원에서 현대종합상사 경영권을 정몽혁 회장에게 넘기면서 사실상 그의 독립을 뒷받침해준 것 역시 정 전 의원과 현대가 패밀리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얘기도 있다. 정 회장은 “수많은 가족이 내게 십시일반 도움을 줬다”며 “내 인생의 가장 큰 자산은 자신에겐 한없이 모질면서도 가족에겐 한없이 관대한 현대가 가풍"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대종합상사는 외환위기 이후 사세가 크게 위축된다. 현대 계열분리 과정에서 고 정몽헌 회장, 현대중공업, 현대상선 등으로 최대주주가 바뀌다가 2003년 채권단과 경영정상화 약정을 체결하며 현대가에서 분리된다. 2009년 말 현대중공업은 약 2500억원에 현대종합상사 주식의 50% +1주를 인수해 2010년 현대중공업 계열로 편입한다.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은 다시 현대종합상사 및 현대씨앤에프 보유주식 대부분을 정몽혁 회장에게 넘겨준다. 매각대금 1194억원 상당은 정몽혁 본인과 현대가의 지원을 통해 조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공정위는 현대종합상사의 현대중공업 계열분리를 공식 승인했다. 당시 증권가에선 연간 5조원대 매출을 올리는 현대종합상사의 회사 지배력을 불과 수백억원대에 특정인에게 넘기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왔다. 

정 회장은 이번에 각오를 단단히 한 것 같다. 정주영 회장이 현대종합상사를 설립한 날은 40년 전인 1976년 12월 8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정 회장은 창립기념일도 10월 1일로 변경하고 올해부터 이날 기념식을 갖기로 했다. 이날은 지주사 현대씨앤에프를 설립한 날이다. 현대종합상사라는 옛 터전 위에 새로운 사업 구상을 접목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창립 40주년을 계기로 국내 대기업 제품뿐만 아니라 중소ㆍ중견기업이나 해외 유망 제품 및 서비스를 적극 발굴해 글로벌 복합기업으로 거듭날 계획도 세웠다. 식량사업을 통해 새로운 활로도 개척하기로 했다. ‘준비된 100년 기업’을 표방하는 사사社史도 10월 12일 발간했다. 발간사를 통해 그는 “40년사를 불확실한 미래를 내다보는 유익한 길잡이로 삼아 향후 50주년, 100주년을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장남 정두선(27) 부장을 지주사에 배치해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시키고 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준비된 100년 기업’ 성과 낼까

그는 현대종합상사를 “1등 회사보다는 ‘오래가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며 “가족 같은 임직원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게 내 사업 목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경영 스타일도 ‘조용하게 내실을 기하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산전수전을 다 겪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외로 크고 작은 여러 회사에서 최고경영자(CEO)로 일한 경험이 많다.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1990년대 현대정유 경영 당시에는 능력을 인정받아 일찍이 현대정유그룹으로 독립할 기회도 있었다. 다양한 사업경험을 밑천으로 그가 독립경영 원년인 올해 경영성적을 어떻게 거둘지 벌써부터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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