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권금융 낙하산 논란

사장, 부사장, 상근감사 모두가 낙하산 인사로 채워진 금융회사가 있다. 바로 한국증권금융이다. 엄연한 민간기업이지만 여전히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어서다. 이렇다 보니 주요 주주인 증권사와 은행 등 금융회사는 반대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증권금융의 낙하산 논란을 살펴봤다.

▲ 한국증권금융의 상임이사 3명이 모두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관피아(관료+마피아) 천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증권금융(증권금융)이 또다시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증권금융은 10월 21일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양현근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신임 부사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양 신임 부사장은 한국은행 여신관리국, 금융감독원 외환업무실장ㆍ금융투자감독국장ㆍ은행감독국장ㆍ기획조정국장 부원장보 등을 거쳤다.

증권금융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한국증권금융은 금융마피아의 일자리 창출기관이 아니다” “여의도 사옥으로 출근하는 것을 막을 것이다(성명서)” 증권금융 노조가 출근저지 투쟁까지 불사하며 반발하는 건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취임한 정지원 증권금융사장은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 공모 작업을 진행 중이던 11월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얘기가 돌면서 낙하산 논란을 일으켰다.

정 사장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를 거친 이른바 전형적인 관피아 인사로 4번째 금융위 출신 사장이다. 지난 8월 선임된 조인근 상근감사위원도 낙하산 인사라는 질타를 받았다. 특히 조 감사위원은 2004년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한 최측근으로 지난 7월까지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으로 근무해 금융 분야 경력이 전무하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최근에는 청와대 연설문 유출 등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낙하산 인사는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다. 10월 18일 국회 정무위원원회 국감에서 김영주 더민주 의원,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 등이 조 감사위원의 낙하산 인사와 전문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정 사장은 “낙하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답변으로 낙하산 논란을 일축했다. 하지만 정 사장에 이어 감사위원, 부사장까지 낙하산 인사로 채워지면서 ‘낙하산 인사의 화룡점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경력 없어도 임원으로 선임


증권금융에 낙하산 인사가 난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애매모호한 기업의 정체성에 있다. 증권금융은 1955년 금융회사의 공동 출자로 설립된 상법상 주식회사다. 국내 유일한 증권금융업무 취급 기업으로 증권시장에 자금과 증권을 공급하고, 증권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투자자예탁금을 보관ㆍ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또한 자본시장법에 따른 정부 위탁업무로 국고자금운용, 환매조건부매매, 집합투자재산의 보관ㆍ관리, 증권대차, 증권대차거래중개업무 등의 업무도 수행한다. 상법상 민간회사이지만 공적기능을 가진 준공공기관이라는 얘기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금융은 투자자의 예탁금을 보관하고 국고자금을 운용 권한을 가진 독점적 지위의 기업”이라며 “주요주주는 금융회사지만 정부의 허가를 받아 세워져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주주 구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증권금융의 주주는 은행권(35.57%), 증권단(34.86%), 유관기관(13.93%), 보험단(1.62%), 기타(14.02%)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최대 주주는 한국거래소로 11.35%의 지분을 갖고 있다. 또한 우리은행(7.8%), 산업은행(5.19%), 한국예탁결제원(2.59%) 등 정부의 영향력을 크게 받을 수 있는 기업이 주요 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기관주주 비율이 압도적인 ‘주인 없는’ 회사다 보니 정부의 입김이 잘 먹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낙사한 인사가 주주총회에서 이렇다 할 반발 없이 통과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증권금융 관계자는 “이번 양 부사장도 상임이사후보 추천위원회를 거쳐 선정된 것”이라며 “지난 10월 21일 열린 양 부사장 선임 주주총회에서도 특별한 사항은 없었다”고 말했다. 낙하산 인사가 주주권리 침해할 우려가 있지만 정부의 눈치를 보는 금융회사가 반대의견을 내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 한국증권금융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낙하산 인사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증권금융 주주로 있는 금융업계 관계자는 “상임이사 선임 찬반여부를 밝힐 수는 없다”며 “주주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대답만 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분야를 주업무로 하는 증권금융에 업계 관련 인사가 한명도 없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대주주가 정부 관련기관인데다 정부의 눈치를 보는 입장에서 반대 입장을 표명하긴 사실상 어렵다”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증권금융의 낙하산 인사를 견제할 수단이 없다는 데 있다. 증권금융이 자본시장법에 따른 정부 위탁업무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7월 공직유관단체로의 지정됐기 때문이다. 공직유관단체로 지정되면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정한 취업심사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 입김 반대하기 어려워

증권금융 노조 관계자는 “세월호 사건 이후 관피아 방지법으로 인해 낙하산 인사 투입이 어려워지자 지난 7월 증권금융을 2015년 7월 당사를 공직유관단체로 지정했다”며 “법원에 공직유관단체 지정취소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증권금융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채이배 의원은 “금융업에 대한 경험과 전문지식이 없는 외부출신 인사로 사내이사 대부분이 채워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증권금융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국회의 감사를 받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관상 ‘금융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건전경영의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모호하게 규정한 상임이사의 자격 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관료 출신 인사도 현업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를 해야 한다’는 등의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며 “요식행위로 치부되는 임원 추천위원회의 활동과 선임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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