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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부는 놔두고 링거만 맞을 셈인가철강업계 구조조정 비판 받는 이유
[213호] 2016년 11월 04일 (금) 08:26:09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

구조조정이 한창인 지금,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국민들은 멘붕에 빠졌다. 하지만 일부에선 미소가 나온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기초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던 기업들이다. 감시의 눈이 느슨해져서다. 정부 예산만 챙기고 구조조정은 뒷전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철강업계는 구조조정에 관한 쓴소리에는 귀를 닫았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최순실 게이트’로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구조조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컨트롤타워다. 그러니 기업들의 자율성은 더 커지지 않겠는가.” 철강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애당초 정부는 지난 9월 30일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면서 ‘업계 자율 구조조정’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업계에만 맡겨두겠다는 건 아니었다.

정부가 발표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의 핵심은 ‘5대 핵심전략’으로 압축된다. ‘친환경 및 정보기술(IT)화를 통한 설비 경쟁력 강화’와 ‘고부가 철강재 및 경량소재 등의 조기 개발’ 전략에는 친환경 고로 전환 지원이나 스마트 제철소 보급 등 주로 정부가 연구개발(R&D)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새로운 수출시장 개척과 부적합 철강재 유통 방지’는 철강업계가 지속적으로 지적해온 통상 문제 해결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경쟁우위 품목 인수ㆍ합병(M&A)과 투자확대를 통한 고부가화 유도’와 ‘경쟁열위ㆍ공급과잉 품목에 대한 사업재편 지원’에는 철강업계의 자발적인 설비 감축, 이에 따른 설비 개선 지원 내용이 담겨 있다.

요약하면 ‘정부가 경쟁력 있는 사업 분야를 키우기 위해 지원을 해줄 테니 일부 사업 분야는 업계가 알아서 교통정리를 좀 하라’는 거다. 사실 정부가 구조조정 가이드라인을 내놨을 때, 일부에선 철강업계 입장이 너무 많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철강업계 구조조정이 ‘환부는 도려내지 않고 링거만 맞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기우가 아니다. 최근 상황을 정리해보자. 지난 9월 초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철강산업 동향 및 경쟁력 강화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철강업계 공급과잉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렇게 분석했다.

“현재 철강업계 구조조정은 일부 공급과잉 제품을 감산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중소 강관업체들의 설비 감축과 철근 생산거점을 통합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와는 거리가 있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선 소극적인 감산전략보다는 M&A를 통한 산업 차원의 구조재편이 필요하다. 장치산업의 특성상 원자재ㆍR&D의 비용절감과 철강재 가격 결정 주도권 강화 등 통합에 따른 규모의 경제효과가 매우 크다. 포스코와 현대제철간 통합까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쓴소리는 귓등으로 흘려들어

철강업계는 “애써 경쟁체제를 만들어놨는데 다시 독점체제로 돌아가자는 거냐”며 반발했다. 하지만 문제의 보고서를 작성한 강정화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어차피 현재 철강업계에 닥친 위기는 세계 시장의 공급과잉에서 비롯된 것이고, 우리 산업이 중국이나 일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게 관건 아닌가”라면서 “M&A는 국내 시장 관점으로 보면 독점이지만 세계시장 관점으로 보면 경쟁력을 높이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관점의 차이일 뿐이며, M&A가 ‘한국 철강업계 전체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다. 강 연구원은 “더구나 포스코와 현대제철을 완전히 합칠 수도 있다는 각오로 강도 높은 사업재편을 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중요한 건 철강업계가 ‘쓴소리’를 철저히 외면했다는 점이다.

9월 중순, 한국철강협회가 보스톤컨설팅그룹(BCG)에 의뢰한 컨설팅의 중간보고 내용이 일부 공개됐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당시 보고서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단계적으로 후판공장 7개 중 3개 폐쇄’ ‘강관 생산 기업들의 출혈경쟁 방지를 위한 업체 간 통폐합’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철강협회는 또 발끈했다. 협회는 “그런 식(후판공장 폐쇄)으로 설비를 줄이면 중국만 이득을 볼 것”이라면서 “비전문가들이 고작 4개월 들여다보고는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고 BCG를 맹렬히 비판했다. 이후 보고서는 수위가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의 주장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철강업계가 M&A든 설비 감축이든 어느 것 하나 고심의 흔적조차 없이 외면했다는 거다. 그럴 듯한 다른 대안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철강업계는 “철강업계가 고부가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통상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후 9월 30일 정부는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통해 약 1조원의 R&D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경쟁우위 품목 M&A와 철강업계의 자발적인 설비 감축도 함께 주문했다. 앞서 해외경제연구소나 BCG의 지적보다 상당히 완화된 가이드라인이었다.

그런데 이젠 정부가 가이드라인 준수조차 감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철강업계 경쟁력 강화 방안에서 M&A와 설비 감축을 제외하면 남는 건 R&D다. 결국 철강업계의 ‘자율적인 사업재편’은 환부를 도려낼 정도의 수준이 될 가능성은 낮고, R&D 지원만 받아갈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철강업계가 자체적으로 글로벌 경쟁사 대비 R&D에 많은 투자를 해온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자료를 토대로 보면 국내 철강사(매출 상위 5개사)의 매출 대비 평균 R&D투자 비중은 고작 0.5%(2014년 기준ㆍ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도 0.7%)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과 일본은 각각 2.1%와 1.4%였다.

수동적 R&D 성과 있을까

강 연구원은 철강업계가 R&D 투자에 소홀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과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기술개발을 통해 고부가제품을, 중국은 저가제품을 생산한다. 한국은 중간 수준의 제품을 생산한다. 그런데 시장 비중이 가장 높은 게 중간제품이다. 그 덕에 특별히 기술개발을 하지 않아도 중간제품 시장에서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이 치고 올라오면서 기술개발 필요성을 느낀 거다.” 철강업계 R&D는 능동적이기보다는 환경에 적응하는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정부의 R&D 예산 지원이 큰 성과를 낼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결국 R&D 예산은 예산대로 쓰고, 철강산업 구조조정은 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R&D 예산은 당연히 국민 세금이다. 철강업계가 스스로 구조조정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자구책들을 갖고 있는지, 자구책들이 실효는 있는지 먼저 검토해야 한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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