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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걸의 有口有言] “내가 멍청한 짓을 했소”고해성사 경제학
[214호] 2016년 11월 08일 (화) 10:09:33
윤영걸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 닉슨 전 대통령이 하야한 건 불법도청 때문만은 아니다. 거짓말의 늪에 빠진 게 결정적이었다.[사진=뉴시스]
1968년 11월 22일 고헤이 아소 일본항공 기장은 계기 착륙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비행기를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 불시착시켰다. 기장의 솜씨가 얼마나 뛰어났던지 96명의 승객들은 구명정이 나타날 때까지 바다 위에 떠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러나 기장이 사전예고조차 없이 육지에서 2.5마일 떨어진 해상에 비행기를 멈추게 했다는 사실에 승객들은 분노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청문회가 열렸다. 전문가들은 조사가 길어지자 더 이상 책임자를 찾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증인석에 선 아소 기장은 미국인 조사관에게 단 한마디 말로 종지부를 찍었다. “당신네 미국인들 말대로 내가 멍청한 짓(fuck up)을 했소!” 그는 유머 섞인 언어로 명쾌하게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다. 기만이나 은폐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그의 한마디는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그는 청문회 이후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곧 자신의 무덤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끝까지 책임이 없다고 버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사실인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최순실 게이트에 국민은 좌절했다. 그러나 더 큰 실망은 대통령이 진솔한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헤아리는 것보다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국민과 언론이 몰라주는 데 서운함이 큰 듯하다. 최순실 게이트의 출발점과 종착역은 대통령 자신이다.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모든 것을 고백하고, 어떤 형식으로든 철저한 수사를 받겠다고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 진상을 밝히지도 않으면서 사태를 수습하자는 건 진실을 임시방편으로 덮고 얼렁뚱땅 넘어가자는 사술詐術이다. 현 게이트의 가장 큰 위기는 ‘신뢰’의 붕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마치 도망가면서 위기 때마다 호리병을 던지는 동화 속 아이처럼 ‘개헌’ ‘개각’ 등 먹히지도 않는 카드를 마구 던진다. 자연인 최순실이 청와대를 제집 드나들 듯이 했는지, 대통령을 등에 업고 국가 기밀을 빼내 정부예산을 멋대로 주무르고 기업의 돈은 뜯은 사실이 있는지, 청와대와 정부의 누가 협조했는지를 밝히기 전에는 어떤 해결도 불가능하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박 대통령에게 “어렵더라도 진실을 밝혀야 출구를 찾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하야한 것은 도청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의 유혹에 무너졌기 때문이었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닉슨은 술수에 능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애초 하야할 정도는 아니었다. 계속된 거짓말이 그를 하야로 몰아붙였다. 

1998년 8월 17일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섹스 스캔들로 대통령직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난을 받던 시점이었다. 그는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다”며 국민과 가족에게 사죄를 했다. 진실성을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비교적 솔직한 클린턴의 사과는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열벌레라고 하는 작은 곤충이 흥미롭다. 앞장 선 대열벌레가 먹이인 뽕나무 잎을 찾아가면 나머지는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간다. 불길 속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프랑스 과학자 파르보는 대열벌레의 머리와 꼬리가 맞닿도록 원형대열을 만든 뒤 그 사이에 뽕나무 잎을 놓아뒀다. 먹이가 눈앞에 있는데도 곤충들은 서로의 뒤만 졸졸 따라가며 뱅뱅 돌기만 했다. 결국 일주일 후 모두 굶어죽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자리를 떠나는 고위공직자들이나 집권당 측근들이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 “그럴 줄 몰랐다”며 자기변명에 급급하다. 그들은 대열벌레처럼 대통령과 최순실의 꽁무니만 따라다녔다. 자신의 무능과 부도덕을 덮기 위해 충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자신의 개성과 주관을 포기하고 윗사람에게 무조건 무릎을 꿇는 어리석은 충성은 맹목적으로 주인을 섬기는 개와 같다.

리더가 눈이 어두우니 측근들이 ‘어리석은 충성’을 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성공한 지도자는 방법을 찾는 반면 실패한 지도자는 핑계를 찾는다. “내가 멍청한 짓을 했소”라는 리더의 통렬한 자기 반성과 진솔한 사과가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든다.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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