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국 展

▲ ❶산, 캔버스에 유채, 100×81㎝, 1957 ❷산과 호수, 캔버스에 유채, 100×81㎝, 1979 ❸산-Blue, 캔버스에 유채, 130×194㎝, 1994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유영국 작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에만 몰두해온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절대와 자유’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는 기본적인 조형요소인 점ㆍ선ㆍ면ㆍ형ㆍ색이 등장한다. 이들은 주인이 되어 서로 대결하기도 하고, 때때로 균형감각을 유지하기도 한다. 점ㆍ선ㆍ면ㆍ형ㆍ색은 그가 나고 자란 울진의 깊은 바다가 됐다가 장엄한 산맥이 됐다가 맑은 계곡이 된다. 금방이라도 끓어오를 듯한 붉은 태양도 된다. 간결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뿜어낸다.

전시는 그의 발자취를 쫓는 순서로 진행된다. 1916~1943년 도쿄에서의 그는 가장전위적이었던 ‘추상’을 배웠다. 일본의 영향력 있는 추상미술의 리더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예술관을 정립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인 1943년에는 고향 울진으로 돌아왔다. 고기를 잡고, 양조장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리면서도 그는 틈틈이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48년 신사실파, 1957년 모던아트협회, 1958년 현대작가초대전 등 가장 전위적인 미술단체를 이끌기도 했다. 자연의 요소들을 추상화하는 과정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산, 언덕, 계곡, 노을 등 일상의 자연은 그의 손을 거쳐 단순한 형태와 절묘한 색채로 다시 태어났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는 현대미술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자신감이 넘친다. 커다란 화면에 담긴 자연은 마치 거대한 산수山水를 마주하는 듯하다. 23㎡(약 7평) 크기의 작업실에서 제작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웅장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이후 1970년대 중반부터는 조금 더 실험적인 조형실험을 했다. “60세까지는 기초 공부를 좀 하고” 그 이후에 자연으로 더 부드럽게 돌아가겠다고 생각한 것을 실천으로 옮긴 거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때부터 그는 병고에 시달렸다. 2002년 86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8번의 뇌출혈, 37번의 입원을 반복했다. 그런 와중에도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은 결과가 400여점의 작품으로 남았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8시부터 11시 30분까지 작업을 하고, 점심식사 후 2시부터 6시까지 일처럼 규칙적으로 예술 활동을 펼쳐온 유영국 작가. 오로지 예술로 점철된 그의 인생은 내년 3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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