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패착

▲ 안종범 전 수석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기업들로부터 출연금을 모금할 때 입김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학자 안종범’은 시장주의자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그는 “정부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의원 시절에도 그는 시장 투명성을 강조하는 법안을 여러개 내놨다. 그런 그가 정경유착의 고리에 얽혔다.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으로 지목된 것이다. 안종범, 그의 패착은 무엇일까.

“잦은 개편과 경쟁적이고 과도한 입법 때문에 우리나라 조세체계의 근간이 훼손되고 있다. 따라서 국회에 제출하는 5년 단위 ‘국가재정운용계획’과 함께 중장기 조세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해 조세체계 안정성을 도모, 예측 가능한 조세정책 방향성을 정립해야 한다.” - 2013년 10월 25일 발의된 국가재정법 개정 취지.

“현행법은 지방자치단체 조세 부과ㆍ징수 등과 같은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만 과세정보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연구를 목적으로 과세정보의 요구가 늘고 있다. 따라서 연구목적으로 과세정보를 요구하는 경우에도 공공기관이 과세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2013년 10월 28일 발의된 국세기본법 개정 취지.

“현행 조세감면제도의 평가는 객관적이지 못하고 원칙도 없어 비효율적이다. 조사ㆍ연구기관을 지정해 평가를 의무적으로 실시, 평가보고서를 국회 소관 상임위에 제출해 객관성이 담보된 평가결과를 근거로 비과세ㆍ감면제도의 유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 2013년 11월 29일 발의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취지.

이 법안들은 공통점이 있다. 조세제도와 정책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법안이라는 점이다. 모두 제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뽑힌 여당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인데, 발의한 사람은 바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다.

공무원이기 이전에 ‘학자 안종범’은 정부의 역할보다는 시장을 강조해온 전형적인 시장주의자다. 2008년 시장 실패라 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그는 “원인이 ‘시장 실패’ 때문인 걸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역할이 커져서는 안 된다”면서 ‘작은 정부’를 주창했다. 그런 시장주의자들에게 시장의 투명성은 반드시 갖춰져야 할 덕목이다. 시장이 투명하지 않으면 자유경쟁의 의미가 없어서다. 그가 조세관련 법안에서 ‘더 걷는 것’보다 ‘투명하게 잘 쓰는 것’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학자 안종범’은 신뢰도 강조했다. 그는 2009년 기파랑에서 출판한 「자본주의 대토론」에서 토론자로 등장해 이렇게 말했다. “전문가, 교수, 공무원, 언론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에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아무리 전문가가 전문성을 갖고 얘기해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어떤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신뢰잃은 ‘학자 안종범’

그랬던 그가 불투명과 불신의 함정에 빠졌다.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물로 안 전 수석이 거론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서다. 최순실씨의 주도하에 설립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기업들로부터 770억원의 출연금을 모금했다. 하지만 모금과정에 강제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안 전 수석이 이 과정에 적극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검찰은 안 전 수석이 모금 과정에서 전경련과 기업들에 압력을 행사했는지,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수석은 검찰에서 “대통령의 뜻이라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관심을 보여 두 재단이 잘 운영되도록 하라는 게 대통령의 뜻인 것으로 파악, 참모로서 역할을 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중요한 건 안 전 수석이 미르ㆍK스포츠재단의 설립에 어떤 식으로든 연루된 게 사실이라면 그가 학자로서 강조했던 철학이 산산조각난다는 점이다. 시장주의자가 ‘정경유착’의 고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최소한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안 전 수석과 함께 동문수학하면서 잘 알고 지냈던 미국 위스콘신대 출신 교수들은 이렇게 말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자리다. 대통령의 지시가 없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들을 벌일 수 있겠는가. 수석비서관의 연루 사실보다 더 큰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수십년간 이어온 개인적인 인연에 따라 국정농단이 벌어졌다는 것 아니겠는가. 현재 문제의 핵심인 대통령은 빠져 있고, 비선실세로 불린 이들만 타깃이 되고 있다.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나.” 

안종범 공범인가 피해자인가

안 전 수석이 ‘최순실 게이트’에 얽힌 건 인정하더라도 “시켜서 한 일인데, 왜 비서관에게만 책임을 몰아가느냐”는 불만이다. 이들은 “안 전 수석이 그런 심경을 토로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함구하거나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시킨다고 다 하면 그게 제대로 된 비서관이라 할 수 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김상봉 전남대(철학) 교수는 “그럴 거면 공직자를 임명할 때 시키는 일이나 잘하는 사람을 뽑으면 그만이지, 굳이 전문성을 따져 물을 필요가 있겠는가”라면서 “시키는 대로 한 것이니 책임이 없다고 하는 건 무책임의 극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자의건 타의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것 자체만으로 안 전 수석은 ‘권력에 놀아난 시장주의자’라는 딱지를 떼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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