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패착
2014년 7월 침체에 빠진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했다. 최 전 총리는 침체에 빠진 경제를 구하기 위해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가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부동산 규제 해제 등으로 뼈대를 만든 ‘초이노믹스’를 시행했다. 문제는 ‘초이노믹스’ 이후 경제가 더 악화했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난제를 생각하면, 새 경제팀은 아마도 ‘지도에도 없는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2014년 7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후 처음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밝힌 일성이었다. 최 전 총리는 한국경제가 위기에 처한 만큼 과감한 부양정책을 펼칠 것을 시사했다. 당시 한국경제의 위기 징조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34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영향으로 소비심리는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은 상황이었다.이를 타개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최경환ㆍ안종범 투톱 경제체제’였다. 대표적인 친박 경제 전문가인 최경환 당시 의원을 경제부총리로, 안종범 청와대 전 정책조정수석을 경제수석으로 임명하면서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이 출범했다. 최 전 총리는 취임 열흘만인 2014년 7월 24일 7월 24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41조원 규모 이상의 경기 부양 패키지를 추진했고,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때까지 거시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했다. 한겨울에 입고 있는 여름옷으로 빗댔던 부동산 규제도 완화했다. 침체에 빠진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명목으로 지역별ㆍ금융권별로 다르게 규제했던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70%, 60%로 상향했다. 부동산 규제를 풀어 매매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고금리의 비은행권 대출을 은행권으로 이동시켜 소비를 늘리겠다는 계산이었다.
가계소득을 늘리기 위해 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기업소득환류세제 등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도 도입했다. 아울러 기업소득 환류세제도 시행, 가계소득과 기업소득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목표도 꺼내들었다. 시장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경기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시장에 전달됐던 거다. 초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박스권을 맴돌던 주식시장은 상승세를 탔고, 주택시장도 꿈틀댔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초이노믹스’와 보조를 맞췄다.
하지만 ‘초이노믹스’가 남긴 실적은 초라하기만 하다. 2013년 2.9%에서 2014년 3.3%로 반등했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 2.6%로 쪼그라들었다. 올해는 2%대 초반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가경제만이 아니다. 가계소득은 그대로인데다, 실질임금상승률은 바닥을 기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연평균 실질임금증가율(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기준)은 1. 34%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평균 경제성장률(2.96%)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초이노믹스, 예고된 실패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도 해소되기는커녕 더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대기업 근로자의 62.0% 수준으로 2008년 이후 가장 큰 격차를 기록했다. 청년실업률도 걱정거리다. 최 전 총리 취임 당시인 2014년 7월 8.9%였던 청년실업률은 올해 9월 9.4%로 치솟으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의 현금이 가계로 흘러들어가게 하겠다(기업소득환류세제)’던 약속은 한낱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5년 기업소득환류세제에 따른 환류액은 139조5000억원. 이중 투자가 100조80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배당(33조8000억원)이 뒤를 이었다. 기업 투자가 증가한 건 의미 있는 숫자이지만 배당액이 많다는 점은 꼬집어야 한다. 기업소득환류세제를 통해 주주의 배만 채운 격이라서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가계부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국경제에서 가계부채는 가장 위험한 뇌관雷管이 됐다. 올 2분기 기준 가계부채 규모는 1257조3000억원이다. 2013년 1분기 962조8749억원 대비 294조40000억원이 증가했다. 3년 반 만에 MB정부 5년 동안의 증가액 296조600억원을 거의 따라 잡았다. 참여정부의 202조638억원에 비해서는 이미 92조3000억원을 초과했다.
특히 최 전 총리 취임 기간(2014년 3분기~2015년 4분기) 가계부채는 146조7000억원이나 증가했다. 한분기 평균 24조45000억원의 가계부채가 늘어난 셈인데, 이는 최 전 총리 취임 이전(2013년 1분기~2014년 2분기) 증가량의 두배에 이른다. LTVㆍDTI 규제를 낮추면서 부동산 시장을 살리려 했지만 ‘가계부채 증가’라는 부메랑을 피하지 못한 셈이다. 물론 각종 규제 완화로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하긴 했지만 집값 상승으로 기대했던 ‘부富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되레 치솟은 집값에 전세난까지 겹치면서 서민의 주거환경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경제통상학부) 교수는 “빚내서 집을 사도록 국민들을 유도한 결과 한국경제는 가계부채라는 뇌관을 떠안게 됐다”며 “이 뇌관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초이노믹스’는 방을 데운 것이 아니라 집에다 불을 질러 버린 정책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수와 부동산에 집중해 수출정책을 등한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서비스업 활성화를 통한 내수 활성화에만 집중한 결과, 한국 경제의 밥줄인 수출과 직결되는 제조업 경쟁력 강화에는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던 초이노믹스가 한국경제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이라며 “정책 실패의 모든 책임을 최 전 총리에게 돌릴 수는 없지만 잘못된 정책으로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든 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가계부채, 저성장, 수출경쟁력 약화 등 한국 경제는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를 해결해야 할 박근혜 정부가 사실상 식물정부가 된 지금 경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탄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강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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