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여주는 여자’ 後日譚

▲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사진=CVG 아트하우스]
나이가 들면 죽음도 선택할 수 없는 걸까. 작품마다 장르와 스토리를 넘나들며 파격적인 시도를 해온 이재용 감독이 이번에는 도통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주제 ‘성性’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쾌락을 뜻하는 ‘죽여주는’과 죽음을 뜻하는 ‘죽여주는’이 한 영화 안에서 넘나든다.

영화의 주인공인 소영(윤여정)은 생계를 위해 종로 일대에서 몸을 파는 ‘박카스 할머니’다.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주눅 들지도 않는다.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몇이나 되는 줄 알아? 빈병이나 폐지수거하며 생계유지하는 건 죽기보다 싫더라고.” 늘 당당한 소영은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게 잘 하는 여자’로 입소문이 나있다.

어느 날 소영은 성병 치료차 방문한 병원에서 코피노 소년 민호(최현준)를 만나 집으로 데려온다. 집주인인 트랜스젠더 티나(안아주), 장애를 가진 피규어 작가 도훈(윤계상)은 민호를 함께 돌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지내던 중 고객인 노인들로부터 뜻밖의 부탁을 받는다. “소영, 사는 게 창피해, 나 좀 죽여줘.” 이제 그들이 소영에게 부탁하는 건 쾌락이 아닌 죽음이다.

‘죽여주는 여자’에는 노인문제뿐만 아니라 성매매, 코피노, 성소수자의 삶도 등장한다. 어느 것 하나 무겁지 않은 주제가 없지만 영화 자체가 무거울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주인공 소영은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다. 때로는 사랑스럽고, 때로는 온화하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남자들과 세상은 냉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에게 소영은 성욕을 풀기 위한 배출구이자 편안한 죽음을 위한 도구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 노인(송노인ㆍ재우ㆍ종수)의 삶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 자살률 1위인 한국은 복지 제도가 부실하고, 노인을 위한 일자리도 거의 없다. 하지만 먹고살기 바쁜 이들에게 ‘늙음’과 ‘죽음’은 먼 일이고 남의 일이다. 이재용 감독이 이 영화를 기획한 이유도 사실 여기에 있다.

“‘죽음’이라는 소재가 상업적으로 쉽지 않은 소재라 걱정을 많이 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먹고 사는데 허덕이기 때문에 현안에만 신경을 쓰지 노인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더 비극적인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노인문제를 한시라도 빨리 공론화하고 싶었다는 거다.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이 영화는 이미 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윤여정)을 수상했다. 개봉 18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상업 영화의 홍수 속에서 얻은 의미 있는 결과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주제. 용기 있게 그 이야기를 꺼내든 이 영화가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 던지는 강렬한 메시지를 느껴보자.

 

권세령 더스쿠프 화전문기자 christin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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