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등 켜진 수익형 부동산

잘나가던 중소형 빌딩 시장의 인기에 제동이 걸렸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언론인ㆍ공무원 등 식사 자리가 많은 직군이 몸을 사리면서 어려움을 겪는 입주 매장(한정식ㆍ일식집 등)이 늘고 있어서다. 특히 업종 전환이나 폐업을 고려하는 입주 매장이 적지 않아, 중소형 빌딩 소유주는 ‘공실 리스크’에 한동안 시달릴 공산이 커졌다. 수익형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는 얘기다.

▲ 수익형 부동산 시장이 김영란법 시행 이후 몸살을 앓고 있다.[사진=뉴시스]

서울 강동구 길동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김오성(52)씨. 김씨는 지난해 초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4층 중소형 빌딩을 35억원에 구입했다. 전체 가격의 60%에 달하는 21억원은 은행에서 빌렸다. 그럼에도 이자 부담이 없었다. 대출 금리가 워낙 낮은데다 고급 레스토랑과 고급 한식당이 비싼 임대료를 부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가게는 빌딩 인근에 사무실이 많아 손님이 늘 붐볐다. 덕분에 임대료가 밀리는 일도 없었다.

그러다 최근 가게에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다. 임차인들은 장사가 어렵다며 임대료를 낮춰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들의 요구대로 임대료를 낮췄다가는 대출이자를 납부하는 것도 벅차진다. 결국 김씨는 빌딩을 시장에 매물로 내놓기로 결정했다.

‘중소형 빌딩’은 수익형 부동산 시장의 인기 상품이다. 빌딩 컨설팅업체 리얼티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500억원 미만의 중소형 빌딩 거래 규모는 총 5조5300억원. 전년 대비 70% 이상 성장했다. 올해 2분기만 해도 중소형 빌딩 거래량은 222건으로 1분기(192건) 대비 30건(15.6%) 늘었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중소형 빌딩 열풍에 제동이 걸렸다. 원인은 김영란법이다. 이 법은 1인당 식사대접 상한선을 3만원으로 정했다. 이로 인해 고급 음식점들의 매출이 준다면 빌딩 주인에게 불똥이 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가게 주인이 빌딩 주인에게 폐업이나 업종 전환, 임대료 인하를 요구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서울 광화문~종각 일대와 서초동 등의 고급 음식점들은 법 시행 이후 가게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인당 3만원 미만의 저녁 메뉴를 찾아볼 수 없던 한정식집에서는 이제 3만원 넘는 식사를 하는 손님을 찾아보기 어렵다. 음식 구성을 바꿔 3만원 미만의 메뉴를 만드는 고급 음식점이 있는가 하면 아예 식당이 문을 닫아 공실이 발생하기도 한다. 공실은 중소형 빌딩 시장의 큰 리스크다. 중소형 빌딩 소유주 대부분이 개인이라서다. 실제로 매매가격 50억원 이하 빌딩 시장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85.4%에 달한다.

얼어붙는 중소형 빌딩 시장

이들 대부분은 ‘레버리지 효과’를 노렸을 공산이 크다. 레버리지 효과란 다른 사람의 자본을 빌려서 더 높은 수익을 얻는 효과를 말한다. 자기자본을 100% 투자할 때 수익률이 3%라면, 대출을 통해 자기 자본비율을 낮출수록 자본 대비 수익률이 상승하는 식이다. 공실이 늘어날수록 중소형 빌딩 소유주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실이 생기면 임대수익이 금융비용을 밑돌 가능성이 높아서다.

실제로 올해 2분기 기준 서울 소재 중소형 빌딩 상가 공실률은 7.8%로 지난해 1분기 6.7%에 이어 꾸준히 오름세다. 5%에 달하던 수익률도 2~3%대로 낮아진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중소형 빌딩의 공실 리스크는 앞으로 더 확대할 공산이 크다. 지난 3~4년간 강남 일대에 중소형 건물 신축이 급증하면서 공급과잉 신호까지 나와서다. 저렴한 임대료를 앞세운 지식산업센터가 늘어난 점도 불안요소다. 대출 규제도 중소형 빌딩의 위축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는 가계부채가 늘어나자 8ㆍ25 대책을 내놓았다. 비주택 담보대출의 담보인정한도를 기존 50~80%에서 40~70%로 줄였다.

 
또다른 수익형 부동산인 ‘상가’ 역시 처지가 비슷하다. 도심 상권을 중심으로 고급 식당의 ‘급임대 물건’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다. 이들 고급 식당의 매물들은 대부분 권리금마저 받지 않는 추세다. 업종 전망이 어두우니,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고 싶다는 얘기다.

9월 13일 기준 매물로 나온 한식점은 1129건으로 지난해 한식점 전체 매물 1133건에 육박할 정도다. 한정식집의 올해 평균 보증금은 4445만원, 권리금 8504만원, 월 임대료 279만원으로 지난해 평균 보증금(5275만원)ㆍ권리금(9855만원)ㆍ월세(324만원)보다 14~15% 모두 낮아졌다.

고급 일식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 나온 매물은 총 132건으로 지난해 전체 매물(129건)보다 많다. 보증금, 권리금, 월 임대료도 모두 지난해보다 줄었다. 올해 2분기 기준 광화문 상권의 임대료 역시 1분기보다 5.8% 감소했다. 문제는 도심상권의 급임대 매물 대부분의 규모가 커서 대체 업종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매매 가격을 낮춰도 임차인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게 중개업계 의견이다. 수익형 부동산 시장에 ‘빨간불’이 커졌다는 거다.
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 2002cta@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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