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일의 다르게 보는 경영수업

참담했다. 그때 그 일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1979년. 필자(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가 근무했던 대우그룹은 박 대통령의 유자녀를 도울 방도를 궁리했다. 삼남매 모두가 검토대상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박근혜씨 주변에 이상한 목사(자칭)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때가 시작이었던 모양이다.

▲ 박근혜 대통령의 최씨 일가를 향한 믿음은 국정농단이라는 재앙으로 되돌아왔다.[사진=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스캔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탓인지 이 게이트는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2016년에 우연히 터진 게 아니다. 1974년 육영수 여사가 총격으로 사망한 직후에 시작된 ‘40여년 숙성된 게이트’다.

필자가 근무했던 대우그룹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성장일로를 걸었다. 빈주먹의 청년 김우중 창업자의 선친이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고의 스승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때문인지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은 대우그룹에 충격파를 안겼다.

실제로 김우중 창업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유자녀를 돕기 위해 기획조정실에 밀령密令을 내렸다. “장녀 박근혜, 차녀 박근령, 아들 박지만을 도울 방안을 검토하라”는 내용이었다.
검토 결과는 이랬다. “아들 박지만씨를 대우그룹 기획조정실에 입사시켜 전문경영인으로 키우겠다.” 하지만 박씨의 거부로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자 대우그룹 기조실은 차선책으로 장녀 박근혜를 도울 방법을 강구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상한 걸림돌’을 발견했다. 장녀 박근혜 주위를 맴도는 정체불명의 목사(자칭)가 그 걸림돌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남대 이사장에 부임했을 때에도 그 목사는 그림자처럼 쫓아다녔다. 결국 대우그룹 기조실은 “최태민이라는 자칭 목사 때문에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보고서를 올리고 손을 떼버렸다.

그랬던 최태민이 딸(최순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필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대체 몇 년이라는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필자뿐이랴. 정치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주변에 ‘최순실’이라는 여자가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필자도 3년 전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대통령이 해외순방할 때 의류 등을 결정해주는 이가 있다더군요. 일종의 멘토인데, 최순실이랍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순실 게이트’를 비판하는 정치인들도 반성해야 한다. 그들 중 일부, 아니 대다수는 이 문제를 수수방관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이다. ‘비선秘線은 권력층을 부패로 물들인다’는 정치 속설은 이번에도 입증됐다. 수십년 동안 최순실씨의 의견에만 귀를 기울였으니, 청와대 수석이든 장관이든 대면보고를 해봤자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대통령과 독대한 적 없다’고 말하는 장관과 수석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장관도 수석도 될 자격이 없는 이들이다.

피보다 더 진한 것이 ‘골수’다. 골수에 사무치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 때문에 어느 조직이든 ‘골수의 관계’가 형성되면 위험해진다. 상관-부하, 동료 등의 관계가 비틀어질 뿐만 아니라 조직을 붕괴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선인들은 인관관계를 ‘물의 관계’로 묘사했나 보다.
김우일 대우M&A 대표 wikimokgu@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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