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블러드 다이아몬드 ❹

▲ 보웬은 기자로서 인정과 존경을 받고 싶어하는 ‘존경욕구’를 보여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복잡다기複雜多岐한 인간의 욕망이 뒤엉켜 있는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인간욕망 보고서’에 가깝다. 시에라리온의 순박한 어부 솔로몬 밴디(디몬 하운수)는 반군에게 끌려간 가족을 되찾기 위해, 다이아몬드 밀수꾼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살육이 판치는 아프리카를 영원히 떠나 새 삶을 살기 위해, 미국 기자 매디 보웬(제니퍼 코넬리)은 시에라리온 내전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핑크 다이아몬드’를 쫓는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에이브라함 매슬로(Abraham Maslow)는 그의 저서 「동기와 개성(Motivation and Personality: 1954)」에서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눈다. 유명한 ‘인간욕구 5단계설’이 그것이다. 매슬로에게 인간의 욕구란 피라미드 구조와 같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의식주衣食住와 동물적인 번식욕구다(1단계). 이런 생물적인 욕구가 충족된 인간은 신변 안전과 건강, 경제적 안전을 원하고(2단계), 그다음으로는 가정과 친구 등의 사랑과 소속감에 목마르게 된다(3단계). 그것까지 확보한 인간은 남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원하고(4단계), 마지막에는 궁극적으로 자아실현(5단계)을 바란다.

모든 이론이 완벽할 순 없지만, 매슬로의 욕구이론 역시 이론으로서의 한계가 있다. 그의 고전적인 인간욕구 단계론을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대입해 봐도 그렇다. 반군에게 끌려가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밥을 얻어먹고 중노동을 감수하는 인부들을 지배하는 건 1단계 ‘생존욕구’다. 그러나 가족을 되찾아야 한다는 밴디의 욕구는 생존욕구를 단숨에 뛰어넘어 3단계로 진입한다. 아처의 욕구는 2단계 ‘안전욕구’에 가깝고, 보웬의 욕구는 기자로 인정과 존경을 받고 싶어 하는 4단계 ‘존경욕구’에 가깝다. 그러나 아처와 보웬 역시 각자의 안전욕구와 존경욕구를 위해 생존욕구를 유보하고 목숨 걸고 ‘핑크 다이아몬드’를 찾아 나선다. 흥미롭게도 가장 ‘짐승 같은’ 반군대장 쁘아종이 매슬로가 제시한 욕구 피라미드의 가장 상층부에 자리 잡은 자아실현을 추구한다.

▲ 매일 밤 분노한 인간들이 밝힌 촛불들이 찬바람 부는 광화문을 수놓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처의 마지막 선택이다. 자신의 ‘안전’과 ‘자유’를 위해 핑크 다이아몬드를 바랐던 아처는 마지막 순간 가족을 찾겠다는 밴디의 소망, 그리고 아프리카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보웬의 꿈을 위해 자신의 욕망과 목숨을 내던진다. 아처는 마지막 순간에 매슬로가 제시한 욕구의 피라미드를 초월하고 다른 사람과 ‘정의’를 위해 자신을 버린다.

얼마 전 교육부의 한 고위관리가 국민을 ‘먹고살 수만 있으면 만족하는 개돼지’라고 난폭하게 규정한 일이 있다. 교육부 관리의 발언은 한 개인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많은 위정자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과 같은 국정의 난맥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의 욕구는 결코 ‘먹고사니즘’이라는 가장 낮은 단계에 머물지 않는다. ‘개돼지’는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만이겠지만, 인간은 분명 개돼지와 달리 등 따습고 배부르면 다른 것들을 원한다. 그래서 인간이다. 당장 먹고살 것을 포기하고, 목숨까지 내놓고라도 밴디나 아처, 보웬처럼 더 높은 가치를 욕망하는 것 또한 인간이다. ‘정의’와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욕구를 초월하기도 하는 것 역시 인간이다.

매일 밤 분노한 촛불들이 찬바람 부는 광화문을 밝힌다. 등 따습고 배불러서 밝힌 촛불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인간은 개돼지가 아니기 때문에’ 밝힌 촛불들이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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