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시녀’ 전락한 검찰

우리나라 검찰은 ‘권력의 시녀’로 통한 지 오래다. 그런 검찰이 ‘최순실 게이트’ 사건에서 또다시 권력과 돈의 편에 서려는 정황들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국민은 그런 행태를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검찰이 그들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을 정립해야 하는 이유다.

▲ 검찰이 ‘최순실 게이트’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할 거라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우리 후배 검사들은 대한제국 1세대 검사 이준의 정신을 이어가라.” 5년 전 2011년 4월.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대한제국 검사 이준 열사 학술 심포지움’에서 당시 대검찰청 박용석 차장검사가 강조한 말이다. 이날 모인 김준규 전 검찰총장과 검사들, 법학자들은 심포지움을 통해 검사 이준을 재조명했다. 이준은 누굴까.

대한제국 시절 최고 사법기관으로 평리원平理院(1899~1907년)이라는 곳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던 그 시기에 평리원이 이름처럼 ‘바닥을 고르고 평평하게 하는’ 사법기관으로써 제 기능을 했을 리 없다. 일본인과 조선인,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권력자와 피권력자가 법 앞에 평등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 평리원에 꿋꿋한 조선인 초대 검사가 있었으니 바로 이준(1859~1907년)이다. 1895년 처음으로 설립된 법관양성소에 입학,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제1회 졸업생이었다. 이성계를 도와 수많은 전쟁터를 누볐지만 “반역(위화도회군)을 도울 수는 없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원계(이성계의 사촌형)의 16대손이기도 했다.

이준은 왕족의 피가 흘렀지만, 옳은 일이라 생각하면 고생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1906년 황태자였던 순종의 재혼을 기념해 고종황제가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이준 검사는 을사조약에 반대했던 정치범들을 특사 명단에 넣는다. 하지만 평리원의 친일 관리들은 해당 정치범들을 특사에서 제외했고, 이준은 “공식 제출된 명단에 함부로 손을 대 형법을 어겼다”면서 상관을 기소했다. 하극상을 이유로 체포되자 “부당한 체포”라면서 동료 검사와 그 윗선의 관리들까지 고소했다.

결국 그는 검사직에서 2개월만에 파면당했다. 이후 이준이 똑똑하고 강직하며 국제법에도 조예가 깊다는 걸 알고 있던 고종은 그를 재임용해 “일본의 부당한 식민통치를 전 세계에 알리라”면서 헤이그 특사로 파견했다. 일본의 방해로 그조차 성공하지 못하자 울분을 못 이긴 그는 1907년 생을 마감했다.

그러니까 5년 전 검사들 스스로 ‘살아 있는 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원리원칙을 지킨 이준을 본받자고 한 거다. 과연 검사들은 이준을 닮아가고 있을까. 그보다는 ‘검찰=권력의 시녀’라는 등식이 더 잘 어울린다. 지금껏 단 한번도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제대로 수사한 역사가 없어서다. 현재 ‘최순실 게이트’ 수사 과정을 봐도 그렇다. 검찰 수사가 미리 짠 각본대로 움직인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TV조선이 미르재단 불법 출연금 모금을 첫 보도한 건 지난 7월 26일이다. 이후 전 언론사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씨 관련 의혹들이 잇따라 나왔다. 9월 29일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최씨와 최씨의 측근들, 청와대 비서관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언론을 통해 이미 대부분의 정황 증거들이 나온 터였다.

잘 짠 각본 같은 검찰 수사

하지만 검찰은 10월 26일 수사에 착수했다. 고발 27일 만이다. 그사이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파일’ 보도(10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연설(10월 25일)이 있었다. 언론을 통해 의혹이 점점 현실이 돼 가는 상황에서 검찰은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검찰은 최씨의 행방도 찾지 못해 ‘추적 중’이었다. 하지만 세계일보는 10월 27일 최씨와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검찰도 못 찾던 피의자를 언론이 먼저 찾은 거다. 10월 30일 최씨가 귀국했을 때 검찰은 도피 가능성이 농후한 최씨를 곧바로 체포하지도 않았다. 31시간의 준비시간을 줬고, 그 과정에서 최씨가 수사대상이 될 수 있는 이들과 전화통화를 했다는 정황들이 나왔다. 최씨가 사전에 검찰과 말을 맞춰 놓고 ‘기획입국’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또한 최근의 모든 정황과 진술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하고 있지만 청와대를 제대로 압수수색하지도 않았다.

검찰에 수사 의지가 없었거나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황제소환’은 단적인 예다. 우 전 수석은 개인적인 비리 의혹에서부터 최순실 관련 의혹까지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거론되던 인물이다. 그만큼 그를 통해 드러날 진실이 많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우 전 수석은 팔짱을 낀 채 웃으며 현직 검사들과 담소를 나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내놓을 수사결과를 믿을 국민은 없다.

검찰이 이처럼 권력형 비리를 맞닥뜨릴 때마다 제대로 수사를 못하는 이유는 뭘까. 물론 수사권의 독립성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검찰 스스로 비리의 중심에 있을 때가 많았다는 게 문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올해 일어난 일들만 살펴보자.
지난 5월 구속기소된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는 2015년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해외 상습도박 사건의 항소심 변론을 맡으면서 보석ㆍ석방을 전제로 약 50억원의 수임료를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 중이다. 보석이나 석방을 전제로 돈을 받았다는 건 검사나 판사에게 수사 무마를 청탁했다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사건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자 정 대표가 최 변호사를 폭행, 최 변호사가 경찰에 정 대표를 고소하면서 정 대표의 법조계 로비 의혹이 ‘정운호 게이트’로 확대됐다.

부정부패 온상 된 검찰

지난 6월 구속기소된 검사장 출신의 홍만표 변호사 역시 상습도박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던 정 대표로부터 수억원의 돈을 받고, 그 돈으로 검찰 간부들에게 사건 무마를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선임계를 내지 않고 변론 활동을 하거나 사건 수임 내역을 축소 신고해 수십억원의 수임료 소득을 누락, 탈세 혐의도 받고 있다. 그가 매입한 오피스텔만도 123채에 달한다. 홍 변호사는 정 대표에게 우 전 수석과의 친분관계를 흘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구속기소된 진경준 전 검사장은 지난 2005년 김정주 NXC 회장에게 4억2500만원의 돈을 받았다. 진 전 검사장은 그 돈으로 김 회장이 실질 경영하는 기업(넥슨ㆍ넥슨재팬)의 주식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약 126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진 전 검사장은 대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현직 검사장에게 기업인이 큰돈을 그냥 주는 게 상식적인 상황은 아니다. 김 회장도 “(진경준이) 검사라서 빌려준 돈을 못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진 전 검사장은 우 전 수석의 처가 명의 부동산을 넥슨에 매각하는 과정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또한 검찰이 김 회장 아버지 명의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는 대검찰청 김주현 차장검사가 그 집을 매입해 살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ㆍ법조계와 재계의 커넥션은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2005년 터져 나온 삼성X파일은 재벌과 검찰의 짬짜미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1997년 대선 과정에서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정치인과 검찰 고위 관료들에게 비자금을 나눠준 대화를 녹음한 파일이 MBC를 통해 세상에 드러난 거다. 녹음파일은 당시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불법 도청한 거였다.

▲ 사정당국인 검찰은 잊을 만하면 부정부패에 연루돼 물의를 빚었다. 사진은 진경준 전 검사장.[사진=뉴시스]
이후 노회찬 민주노동당(현재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녹음파일에 등장하는 ‘떡값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하지만 검찰은 검사를 수사하기보다는 노 의원을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기소했다. 결국 노 의원은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3년 후인 2008년 삼성특검이 진행됐지만, 처벌을 받은 ‘떡값 검사’는 없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09년 5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가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됐다.

당시 삼성특검을 지시했던 이는 지금의 황교안 국무총리다. 황 총리는 이후 부산고검 검사장까지 오른 후 퇴임, 2011년 법무법인 태평양 형사부문 고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에 임명됐다.

결국 삼성특검 속에는 검찰의 제 식구 챙기기, 재벌과의 결탁, 회전문 인사 등 온갖 부조리가 숨어 있었던 거다. 이후에도 검찰의 부정부패는 잊을 만하면 불거져 나왔다. 2010년엔 한승철 당시 대검찰청 감찰부장이 건설업자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스폰서 검사’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검찰은 스스로를 감찰하는 특임검사제도를 도입했지만, 한 전 감찰부장은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처리됐다.

2011년엔 ‘벤츠 여검사’ 사건이 있었다. 당시 현직에 있던 이소연 검사가 내연관계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로부터 사건 청탁을 받고 벤츠자동차와 명품 핸드백 등 금품을 받은 거다. 하지만 지난해 대법원은 금품을 ‘사랑의 징표’로 인정한다면서 무죄 처리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검찰과 법조계의 부정부패는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고, 검찰 내부의 환부를 도려내는 칼은 무뎠다.

자신들의 심각한 부정부패는 철저히 숨기고 방어한 반면, 돈 없고 배경 없는 일반 국민에게 검찰의 칼날은 날카로웠다. 일례로 세월호 침몰 사건의 진상규명 논란에서부터 촉발된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대회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법정구속된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은 최근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고故 백남기씨에게는 강제부검을 위한 영장을 발부하기도 했다.

검찰은 스스로 본받자고 했던 이준 검사와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일부에서 이번 ‘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상봉 전남대(철학) 교수는 “비리의 온상인 검찰이 남을 수사한다는 것 자체가 오류”라면서 “잘 짠 각본처럼 움직이는 검찰의 수사 행태를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국민은 믿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을 위해 조직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수준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정체성 찾아야 할 때

실제로 검찰의 신뢰도는 밑바닥 수준이다. 지난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한 ‘형사정책과 사법제도에 관한 평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사법기관 가운데 검찰의 신뢰도는 16.6%에 불과했다. 경찰의 신뢰도는 24.9%, 법원은 24.2%, 교도소는 19.1%였다.

또한 법집행의 공정성과 관련해 ‘권력 있는 사람이 처벌받지 않는 경향’ ‘돈이 많은 사람이 처벌받지 않은 경향’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더 심한 처벌을 받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은 78.0%에 달했다. ‘신분이나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공정하게 법 집행이 이뤄지고 있다’는 의견은 14.4%에 불과했다.

국민은 검찰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16.6%의 신뢰도가 이를 증명한다. 검찰 조직 전체가 죄다 부정부패한 것도 아닐 테니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있다는 거다. 검찰이 국민에게 신뢰 받기를 포기한 게 아니라면 지금처럼 수사해서는 안 된다. 일제강점기 이준 검사를 떠올리며 검찰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해야 할 때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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