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한국경제에 던진 숙제

한국경제가 ‘트럼패닉(Trumpanic)’을 우려하고 있다. 예상을 깨고 미국 45대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의 경제정책이 실현되면 한국경제에 리스크를 안길 공산이 커서다. 더구나 트럼프의 정책은 일관성이 없어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 트럼프가 한국경제에 던진 ‘4가지 화두’를 짚어봤다.

▲ 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승리했다.[사진=뉴시스]

예상은 적중하지 않았다. 지난 8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결과는 290명 대 228명. 비교적 큰 차이로 당선을 확정 지었다. 미국 국민은 함께 강해지자는 힐러리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친 트럼프를 선택한 것이다.

사실 트럼프의 지지율은 선거 기간 내내 힐러리에 뒤처져 있었다. 막말 파문, 성추행, 세금회피 등 논란이 트럼프의 발목을 번번이 잡아챘다. 특히 선거 당일 CNN 방송은 힐러리의 당선 확률을 91.0%, 트럼프는 9.0%로 예상하며 힐러리의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미국의 독특한 선거방식과 트럼프의 숨은 지지층에 있다. 먼저 미국 대선은 주州에서 1위를 기록한 대선 후보가 배당된 선거인단 표를 전부 가져가는 ‘승자독식제’를 채택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의 득표율은 47.5% (5958만9806표)로 47.7%(5979만6265표)의 득표율을 얻은 클린턴보다 득표율은 0.2%포인트, 득표수는 20만6449표 적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득표율에 상관없이 더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또 하나의 원인은 선거 결과가 여론조사와 다르게 나타나는 ‘브래들리 효과(Brad ley effect)’에서 찾을 수 있다. 트럼프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공약에 매력을 느낀 저소득ㆍ저학력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가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면서 여론조사 결과를 반전시켰다. 실제 위스콘신ㆍ미시간, 인디애나ㆍ오하이오ㆍ펜실베이니아 등 전통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Rust belt)’에 위치한 5개주가 모두 트럼프를 선택했다.

세계화에 따른 빈부 격차 확대와 일자리 부족이 백인 노동자 계층의 보수적인 표심을 자극했다는 얘기다. 여기에 기득권층인 민주당에 대한 불신, 지배계층에 대한 반감 등이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문제는 트럼프의 승리가 한국경제에 긍정적일 가능성이 적다는 점이다. 그의 공약이 ‘국수주의’ ‘고립주의’ 성향을 띠고 있어서다. 우리가 트럼프의 공약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트럼프의 경제 콘셉트는 크게 네가지다. 첫째,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탈퇴ㆍ재협상이다. 트럼프는 한미 FTA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현했다. 자국 내 일자리 10만개 사라지게 만든 형편없는 협정이라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트럼프 정부가 공언한 대로 한ㆍ미 FTA 탈퇴 혹은 재협상을 요구했을 경우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큰 경제적 손실을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한ㆍ미 FTA 재협상론과 한국 산업에 대한 경제적 영향분석’ 보고서(10월)에 따르면 한ㆍ미 FTA 재협상에 들어갈 경우 5년간 대미 수출이 269억 달러(약 30조6848억원) 감소하고 일자리 24만개가 사라질 수 있다.

시장 예상 뒤집은 투표 결과

트럼프의 경제 콘셉트 중 하나인 보호무역주의도 한국경제에 부담을 줄 공산이 크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미국이 반덤핑ㆍ상계관세부과 확대에 나설 경우 수출은 5년간 119억 달러(약 13조8575억원) 줄고, 일자리는 9만2000개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트럼프의 극단적인 보호무역 조치가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이 실현화되긴 쉽지 않다”면서 “그 역시 제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있어 무역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융과 통신을 제외한 다우지수 상장기업 25개 중 17개 기업의 해외 매출 비중은 50%를 웃돌고 있다”며 “미국 제조업 측면에서 볼 때 보호무역의 강화는 득보다 실이 많다”고 설명했다.

둘째,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다. 트럼프는 이른바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했다. 이는 당장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2014년 한미 양국이 합의한 방위 분담 특별협정(SMA)의 유효 기간이 2018년에 끝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이전에도 방위비 분담금을 1조원 수준으로 올릴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문제는 분담금의 상향폭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방위비 분담금의 절반 수준인 9200억원가량을 부담하고 있다. 이를 100%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1조원 안팎의 부담이 증가한다. 여기에 미국이 1대에 약 2조원에 달하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를 빌미로 추가 비용 부담을 요청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방위비가 1조~3조원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셋째, 미ㆍ중 무역전쟁에 따른 불확실성 증가다. 트럼프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 제품에 45.0%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 조치가 실제로 이뤄지고 중국이 보복 조치에 나서면 두 나라의 무역 전쟁이 본격화할 수 있다. 한국의 1ㆍ2위 수출 시장인 중국과 미국의 무역 전쟁이 국내 수출 경기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과정에서 한국도 환율조작국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한국은 중국ㆍ일본ㆍ대만 등과 함께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큰 ‘관찰대상국’ 명단에 포함돼 있다.

보호무역 수출 경기에 악영향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ㆍ중간 무역 마찰이 심화하면 수출시장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간재 수출 시장의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우리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며 “정책 부처 간 공조체계를 탄탄히 만들어 통상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는 트럼프의 마지막 경제 콘셉트는 아이러니하게도 ‘불확실성’이다. 트럼프의 경제 공약 중에는 모호한 게 많다. 특히 거시정책의 방향성은 들쭉날쭉하다. 무엇보다 감세를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인프라의 확대를 꾀한다. 그러면 국채 발행에 따른 금리 상승이 예상되는데, 트럼프는 어찌된 영문인지 저금리를 지지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트럼프의 정책이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본부장은 “트럼프의 공약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상호 모순돼 실제 트럼프 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할지 예상하기 어렵다”면서 “짧게 보면 연말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취합될 수도 있지만 정책 수립의 불안감이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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