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사업권 인수한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최근 LG생활건강이 존슨앤드존슨의 유명 구강케어 브랜드 ‘리치’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사업권을 인수했다. 재계의 이목이 다시 한번 이 회사 CEO 차석용(63) 부회장에게 쏠리고 있다. 이번에도 과연 ‘차석용의 기업 인수·합병(M&A) 마법’이 통할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이 비화장품 사업 진출에 힘을 쏟고 있다.[사진=뉴시스]
LG그룹 내에서는 물론 한국 재계에서 차석용 부회장은 ‘MR(미스터) M&A’로 통한다. 그는 2004년 12월 LG생활건강 사장으로 영입된 이래 12년(4차례 연임) 동안 15건에 이르는 크고 작은 M&A를 성공시켜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그동안 코카콜라음료(2007년), 더페이스샵(2010년), 해태음료(2011년), 긴자스테파니(2012년), 에버라이프(2013년), CNP코스메틱스(2014년), 제니스(2015년) 등을 M&A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회사 한두개쯤을 해마다 M&A한 셈. 11월엔 존슨앤드존슨의 ‘리치’ 사업권을 M&A해 ‘차석용의 M&A 마법’을 걸어 둔 상태다.   

말이 쉬워 그렇지 남의 회사를 M&A해 성공시키기란 그리 쉽지 않다. 기업 문화나 경영 풍토가 서로 다른데다 문제가 있는 기업들이 M&A시장에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문제가 있거나 적자인 회사도 사업 포트폴리오란 큰 틀에서 봐서 필요하면 과감하게 M&A해 수년 내에 효자 기업으로 만들곤 했다. 그래서인지 ‘차석용의 M&A 마법’이란 수식어까지 등장했다.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경기고를 나와 미국 뉴욕 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코넬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영학 공부가 다는 아니지만 경영 현장에 대한 주제 파악과 문제 해결 능력을 학창시절부터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올해로 최고경영자(CEO) 자리만 19년째 지켜온 그는 LG생활건강 CEO로 12년을 보냈다. 국내 30대 그룹 CEO 평균 수명이 2.5년인 현실을 감안할 때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경영에 M&A를 접목해 LG그룹은 물론 한국 재계를 통틀어 독특한 성공사례를 남긴 경영자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얘기지만 현대 한국의 대표적 기업가인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자 같은 이는 평소 남의 회사를 인수해 사업하는 기업인을 평가절하했다. 그는 사업가라면 자기가 직접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며 영업도 하고 해야지 어떻게 남이 애써 일군 회사를 돈으로 달랑 사서 사업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다. 1970~1980년대 신예에 불과했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M&A를 통해 그룹 사세社勢를 폭발적으로 키워 나간데 대해 정 회장은 내심 못마땅해 하곤 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M&A에 대한 국내 인식도 무척 달라졌다. 하지만 보수적인 사풍을 지닌 LG생활건강 CEO로 외부에서 영입돼 수많은 M&A를 보란 듯 성공시킨 차 부회장은 연구대상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생활용품 사업 강화

이번에 그가 존슨앤드존슨의 ‘리치’ 사업권을 M&A한 것은 미래 성장동력 찾기와 생활용품 사업 강화 전략의 일환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너무 잘나가고 있는 화장품사업 둔화에 대비한 전략’이다. LG생활건강은 존슨앤드존슨이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6개국에서 전개해왔던 리치 브랜드 사업권을 인수했다. 구강케어 시장이 생활용품 사업의 미래를 떠받쳐 줄 것이란 판단에 따른 조치다.

리치 브랜드로 한국·중국·일본·대만·베트남 등 기존 진출지역에서 구강케어 사업을 강화하고 호주·뉴질랜드·인도 등 신新시장도 개척할 계획이다. 2015년 기준 글로벌 구강케어 시장은 403억 달러(약 45조원) 규모. 지난 5년간 평균 5%씩 성장해왔다. 특히 중국 등 아시아 신흥국 구강케어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LG생활건강의 3대 사업 포트폴리오는 생활용품·화장품·음료다. 차 부회장은 단기적으로는 차이가 좀 나더라도 중장기적으론 이들 3대 사업의 구성비를 1대1대1로 가져가는 게 좋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존슨앤드존슨의 ‘리치’ 사업권 M&A도 이런 관점에서 추진됐다. 올 들어 의약품, 이유식, 애완용품, 가공육 판매대행 사업 등 비화장품 사업 진출을 강화한 것은 다 그런 이유에서다.

차 부회장 취임 초기인 2005년 당시만 해도 생활용품 매출 비중은 68.0%로 화장품(32.0%)의 두배가 넘었다. 하지만 화장품 사업은 중국 등의 소위 ‘K뷰티’ 인기에 힘입어 날개 단 듯 성장했다. 매출 비중도 41.8%(2014년), 46.0%(2015년)에 이어 올 들어 50%(3분기 누계 50.8%)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올 3분기 누계 기준 화장품 매출은 2조3580억원(비중 50.8%), 생활용품 1조2322억원(26.6%), 음료 1조466억원(22.6%)을 각각 기록했다.

그의 M&A 전략은 LG생활건강의 다양한 수익구조를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주력 사업에 마냥 의존하기보다 각 사업이 시너지 효과를 내게 함으로써 이익은 극대화하고 리스크는 최소화할 수 있었다. “바다에서도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에 좋은 어장이 형성되듯 서로 다른 사업 간의 교차 지점에서 새로운 기회가 창출된다. LG생활건강은 생활용품·화장품·음료 등 각 사업이 갖고 있는 장단점을 통해 서로의 사업을 보완하고 있다.” 그의 M&A 철학이 잘 드러난 발언이다. M&A와 관련해 “먼저 큰 그림을 그리고 퍼즐을 맞추듯 필요한 분야의 회사를 인수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는 취임 첫해 3분기부터 45분기 연속 매출 성장세를 기록했고 영업이익 또한 11년 연속 실적을 경신했다. 올 3분기엔 또 다시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신임이 무척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그는 2011년 외부 출신 경영자로는 처음으로 부회장으로 승진됐다. 겉으론 부드러워 보이면서도 조직 장악력이 있다는 게 주변 얘기다. 여성존중경영을 내세우며 여성 직원 비율을 50% 이상으로 하고 승진에 남녀차별을 두지 않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다섯번째 연임 여부 주목

그는 ‘샐러리맨의 신화’를 일군 경영자로도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런 그도 네번째 임기를 막 시작했던 2014년 상반기 퇴진설에 시달린 적이 있다. 당시 그는 한 매체를 통해 “2017년(2월)까지 보장된 대표 임기를 채우는 데 아무런 변동사항이 없다”고 강조했다. “회장(구본무)께서 지난해(2013년) 말 (대표이사 재선임 때) 내게 ‘65세까지는 회사에 뼈를 묻어야지’라고 하셨다”는 말도 했다. 그의 당시 발언은 상당 부분 사실이 됐다. 이런 가운데 오는 연말연시 인사에서 그가 다섯 번째 LG생활건강의 선장자리를 맡게 될지 주목된다. LG생활건강에 워낙 큰 공적을 남긴 때문인지 ‘차석용 퇴진 리스크’란 말까지 생겨나고 보니 그 결과가 더욱 궁금해진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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