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랭크인 | 오! 마이 파파

▲ 소 알로시오 신부는 평생을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데 헌신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삶을 살고자 ‘가난의 서약’을 맺은 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 그는 1957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의 부산을 찾았다. 이곳을 재건하겠다는 뜻을 담아 ‘소재건’이라는 한국식 이름도 지었다. 부산에 정착한 알로이시오 신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고아 돌보기. 당시 부산에는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많았다. 이를 가엽게 여긴 알로이시오 신부는 송도에 첫번째 ‘소년의 집’을 열고 고아를 모았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인 아이들을 위해선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했다.

첫번째 소년의 집은 ‘톤즈의 성자’로 불리는 고故 이태석 신부와의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다 유명을 달리했다. 이태석 신부는 자신의 저서에서 부산 송도 소년의 집을 이렇게 회상했다. “어릴 적 집 근처에 있던 소년의 집은 아름다운 향기로 다가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그곳에서 가난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씻겨주던 소재건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모습을 보고, 가난한 이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꿈꾸게 됐다.”

이처럼 많은 이에게 영향을 미친 알로이시오 신부의 활동 영역은 점차 확장됐다. 부산에선 또다른 향기를 발산하는 ‘소녀의 집’을 지었고, 서울에선 ‘시립 소년의 집’을 열었다. 각종 학교도 세웠고, 도티기념병원과 마리아모성원 등을 개원, 태아 생명보호 운동을 전개했다. 그가 아시아의 노벨상을 받으러 필리핀에 갔다가 그곳에 소년의 집을 지은 건 유명한 일화다. 이렇게 알로이시오 신부는 1992년 루게릭병으로 선종하기 전까지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영화 ‘오! 마이 파파’는 전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데 일생을 바친 소 알로이시오 신부의 완전한 사랑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알로이시오 신부의 뜻을 이어받은 마리아수녀회가 기획·제작에 참여했다. 두 할머니의 46년 동행 이야기를 담은 영화 ‘춘희막이’로 지난해 극장가를 잔잔하게 수놓은 박혁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박 감독은 알로이시오 신부의 생애를 담아내는 일이 녹록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신부님이 평소 사진 찍는 걸 선호하지 않았던 터라 다큐멘터리 영화에 필요한 동영상과 사진 자료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결국 박 감독은 알로이시오 신부의 흔적을 쫓아 전세계를 돌았다. 한국의 서울·부산을 시작으로 미국·필리핀·과테말라·멕시코·온두라스·브라질·벨기에까지 총 8개국에서 120여명을 인터뷰했다.

다큐멘터리에는 검소했던 알로이시오 신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의 유품은 단벌 신부복과 젊었을 때 입었던 양복 1벌, 운동복, 모자가 전부였다. 공통점은 모든 옷에서 실로 꿰매지 않은 부분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모자조차도 기워 쓴 흔적이 역력했다. 그가 젊었을 때 맺은 ‘가난의 서약’을 평생 실천한 셈이다. 그 어느 때보다 다른 사람을 향한 존중과 사랑이 필요한 시기, 알로이시오 신부의 삶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다. 
손구혜 더스쿠프 문화전문기자 guhso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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