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저물가 시대인가

“저물가의 고착화가 우려된다.” “월급만 빼고 대부분의 물가가 올랐다.” 물가 관련 공식 통계를 놓고 정부와 서민 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저물가로 인한 경기 침체, 성장 둔화를 우려한다. 서민들은 도무지 ‘저물가’를 이해할 수 없다. 생활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라서다.

▲ 소득이 적을수록 식료품과 생필품 가격 인상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사진=뉴시스]

얼마 전 주부 이미옥(59)씨는 동네 대형마트에 갔다가 물건 대신 걱정만 안고 왔다. 11월 말께 김장을 계획하고 있는 터라 채소 가격을 알아본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다. 배추며 무 가격이 지난해보다 두배 이상 뛴 게 아닌가. 특히 지난해 포기당 채 1000원도 하지 않던(980원ㆍ1950~2000g 기준) 배추값이 2490원까지 올랐다. 판매 직원은 “한달 전에 6000원이나 하던 거에 비하면 많이 내렸다”고 말했지만 미옥씨는 그래도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해마다 스무 포기씩 김장을 했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양을 줄여야 하나 아니면 그때그때 마트에서 조금씩 사 먹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배추값만 올랐으면 두눈 딱 감고 김장을 하겠지만 무랑 파 가격까지 오르니 부담이 크다.” 미옥씨는 일단 11월 말까지 배추값이 떨어지길 오매불망 기다려 볼 참이다.

장바구니 물가가 비상이다. 지난 여름 폭염으로 작황이 좋지 않았던 영향이 장바구니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김장을 앞둔 가정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크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4인 가족 김장재료(배추 20포기 기준) 구입비용은 약 25만원이다. aT가 전국 19개 지역 전통시장(18개)과 대형유통업체(27개소)를 대상으로 김장 관련 13개 품목 가격을 조사한 결과, 전통시장은 24만8000원, 대형유통업체는 26만5000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김장비용 18만5000원(11월 11일 기준)과 비교했을 때 적게는 6만3000원, 많게는 8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김장을 앞둔 서민들의 부담이 커지자 aT는 곳간을 풀었다. 김장비용 안정을 위해 ‘정부비축 배추’를 시중에 방출하기로 결정한 거다. 지난 17일 aT는 “12월 9일까지 비축해놓은 김장용 배추 4500t을 재래시장과 대형마트에 집중 공급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포기당 1900~2100원대로 가격이 안정될 거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소비자물가와 물가인식의 괴리

이런 땜질 처방으로 서민의 부담이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채소 등 식료품과 생필품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일회성 정책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부와 소비자간 간극은 지표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최근 1%대를 오가고 있다. 지난 7월에는 0.7%, 8월에는 0.4%였다가 9월과 10월에는 1.2%와 1.3%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의 통계수치는 이보다 높다. 일반인들의 체감물가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물가인식’은 2013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줄곧 2%대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다. 7월과 8월에는 2.4%, 9월과 10월에는 2.5%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정부와 소비자간 이런 괴리는 왜 자꾸 나타나는 걸까.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가 지난 8일 오후 국회 사회공헌포럼과 함께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소비자는 저물가를 체감하고 있는가’란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 정부와 서민 간의 괴리감 발생 이유를 짚어봤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물가감시센터의 조영주 회계사는 독과점 기업들이 시장지배력을 이용해 잦은 가격인상을 단행하고 높은 유통마진을 챙기는 게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낮지만 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의 가격이 자꾸 오르다보니 체감물가도 높아진다는 거다.

저물가 혜택 적게 받는 저소득층

실제로 올해 두부ㆍ과자ㆍ아이스크림ㆍ생리대ㆍ맥주ㆍ탄산음료 등 식료품과 생필품 가격이 줄줄이 인상됐다. 전월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서민들 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저물가를 체감할리 만무하다는 게 조 회계사의 주장이다. “서민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독과점 시장을 철저하게 관리감독하고 규제를 해야 한다. 유통구조의 개선과 생필품 최소 마진, 기업의 자발적이고 합리적인 가격 책정이 이뤄져야 한다.”

‘지표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백다미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경제 전체의 대표성과 객관성을 반영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구입하는 품목과 빈도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 연구원은 공식물가와 체감물가 간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가계 소비 특성이 반영된 다양한 소비자물가지수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저물가 혜택이 상대적으로 적은 저소득층의 물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식료품 물가가 안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 채소가격이 떨어지지 않자 정부가 비축해놓은 김장용 배추를 풀었다.[사진=뉴시스]
그의 설명처럼 통계청 지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가계별 소비 비중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소득분위별, 가구원수에 따라 각기 다른 소비지출비중이 다르게 나타난다. 소득이 적은 가구일수록 식료품ㆍ주거ㆍ보건ㆍ통신비용을 많이 지출하는 반면 소득이 많은 가구는 교통ㆍ오락문화ㆍ교육비 지출이 많다. 이중 소득이 적은 가구의 소비지출비중이 높은 품목에서 가격인상이 발생하다보니 그 격차가 커지는 거다. “소득이 적은 가구일수록 담배 및 식료품 물가 상승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반면 소득이 많은 가구일수록 교통물가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가구원수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인다. 가구원이 많은 경우 통신비와 교육비 비중이 높지만 1~2인 가구는 식료품, 주거 관련 소비 비중이 높다. 10월 기준 5인 이상 가구의 소비 비중이 높은 통신(0.0%), 교육(1.6%) 비용은 전년 동월 대비 소폭 상승 또는 하락했다. 반면 1인 가구가 많이 소비하는 식료품은 그에 비해 상승폭(5.0%)이 컸다. 게다가 1~2인 가구가 증가세이다 보니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기 마련이다.

김순복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사무처장도 지표의 모순을 꼬집었다. “소비자는 고물가로 고통 받고 있지만 정부통계(소비자물가지수)는 저물가로 발표되는 모순이 계속되고 있다. 체감률이 떨어지는 물가지수는 정보로서의 효용 가치를 떨어뜨리고 정책의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시장구조 공정하고 투명해야

그는 덧붙였다. “11월 1일에 소비자물가지수가 발표됐다. 그런데 그날부터 맥주와 탄산음료의 가격이 인상됐다. 과자ㆍ라면 등 각종 생필품의 가격도 올해 최소 5~16% 인상됐다. 그런데 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어떤가. 0%대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가격 인상을 일삼는 업체들의 비합리에 저항해야 하는데 통계가 이렇게 나오면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세분화된 물가지수를 개발해 체감물가를 발표해야 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직장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중식비 물가 동향, 수험생 부모를 위한 학원 물가 동향, 공공요금 물가 동향 등 다양한 계층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정보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이들은 정부당국이 서민물가 안정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시장구조를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또한 유통업계와 제조업계가 기업의 이윤을 늘리는 데만 치중할 게 아니라 상생 구조를 위해 자발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원가를 투명하게 하고, 가격산출의 근거를 명확히 해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해줘야 한다는 거다. 그것이 치솟는 물가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서민을 위한 첫걸음이자 체감물가와의 괴리를 줄이는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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