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그 너머

▲ 서울 청계광장 게시판에 나붙은 포스트잇에는 국민의 진짜 바람이 무엇인지 담겨 있다. 여야 정치권이 국민과 함께 '촛불 그 다음'을 구상해야 하는 이유다.[사진=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은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를 차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적어도 세차례 놓쳤다. 먼저 꽃다운 학생 등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당일 ‘자기반성’이 없었다. 2년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날의 7시간 행적에 대해 떳떳이 밝히지도 못하면서 엉뚱하게 해경 해체와 ‘국가개조’만 외쳤지 자신을 개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두번째 ‘자기개조’ 기회는 7개월 뒤 청와대 내부에서 터졌다. 이른바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파동으로 비선 실세ㆍ십상시ㆍ문고리 3인방 등 이번 게이트에서도 거론된 상당수 인물이 등장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문제의 측근들을 내치기는커녕 문건 자체를 근거 없는 지라시로 규정했고, 검찰은 문건 작성자와 유출자를 처벌했다.

대통령의 세번째 ‘자기혁신’ 기회는 지난 4ㆍ13 총선에서의 참패였다. 16년 만의 여소야대 상황을 불러온 선거 결과를 놓고선 국민이 그간의 국정과 정부 여당을 심판한 게 아닌 식물국회에 대한 변화와 개혁을 요구한 ‘국회 심판’이라고 강변했다.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을 일으킨 ‘친박親朴’을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흐트러진 국정을 진즉 바로잡을 타이밍을 놓친 대가는 혹독했다. 믿었던 검찰이 대통령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이자 피의자로 입건했다. 끝까지 지켜줄 줄 알았던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했다. 새누리당 비박非朴계를 중심으로 당 윤리위원회 제소와 출당 카드에 이어 탄핵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승자박이요, 인과응보다.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광장으로 몰려드는 촛불 앞에 진심으로 고개 숙여야 한다. 국민을 대상으로 한 담화문에서 약속한대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 검찰의 수사 방향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르다고 해서 일국의 대통령이 거짓말쟁이로 기록돼서야 쓰겠는가. 더 이상의 말 뒤집기나 버티기는 곤란하다.

하야 내지 탄핵 여론이 90%를 넘어선 상황에서 대통령으로서 국정 수행은 불가능하다. 중ㆍ고교생까지 하야를 외치는 마당에 임기를 마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국민과 국회가 끌어내리기 전에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질서 있는 퇴진’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그동안 국가와 국민에게 지은 과오를 조금이라도 씻는 길이다.

새누리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다. 살아온 과정에 대한 면밀한 검증 없이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데다 국정 동반자로서 역할도 제대로 못한 사실상의 공범이다. 친박이라고 무턱대고 대통령을 감싸기만 해선 안 된다. 다음 선거와 정당이기를 스스로 포기할 텐가.

야당도 촛불에만 기대선 안 된다. 우왕좌왕하다 대통령이 제안한 ‘내각통할 총리’ 추천 기회를 놓침으로써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황교안 현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는 상황을 초래한 게 지금의 야당이다. 당리당략과 대선구도 등 정치적 이해타산에서 벗어나 국정 혼란을 해소할 수 있는 합법적인 로드맵과 합리적인 정치일정을 제시해야 한다. 광장의 민심이 마련해준 더 나은 민주주의 실현의 기회를 저버리면 촛불은 대통령에 이어 국회로 향할 것이다.

사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는 청와대ㆍ검찰을 비롯한 정부와 국회, 여야 정치권 등 대한민국의 공적 기능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그나마 이 시점에 게이트가 표면화한 것도 언론이 탐사보도를 통해 밥상을 차려 놓으면 검찰이 설거지하듯 수사함으로써 가능했다. 궤도를 이탈한 국가의 공적 기능이 회복될 때까지 광장의 촛불은 계속 타오르며 압박할 것이다.

서울 청계광장 게시판에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바람을 담은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다.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내용만 있는 게 아니다. ‘정상적인 나라’ ‘국민이 주인인 진정한 민주국가’ ‘배고파 아파서 힘든 사람이 없는 사회’ 등 박 대통령 퇴진 이후 그들이 바라는 사회를 그렸다. 시민들은 ‘박근혜 퇴진’을 넘어 ‘더 나은 민주주의’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고 있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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