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대박론’ 펀드의 현주소

“통일은 대박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통일 관련 펀드가 쏟아졌다. 그런데 시장은 이들을 외면했다. 남북관계가 ‘대박’이 나기는커녕 ‘쪽박’을 차고 있어서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비선秘線 실세 최순실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 이후 통일 관련 펀드가 쏟아졌다. 하지만 시장은 이들 펀드를 외면했다.[사진=뉴시스]

“저는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입니다.” 2014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꺼낸 발언이다. 비문非文이지만 메시지는 간단했다.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가 ‘대박’을 친다는 얘기. 낙후된 북한의 인프라 개발을 위해 국내외 투자가 한꺼번에 몰릴 거라는 분석에 근거한 주장이었다.

박 대통령의 시그널에 가장 빠르게 움직인 곳은 자산운용업계였다. 이들은 펀드 이름에 ‘통일’을 붙이고 다양한 상품을 론칭했다. 2014년 3~6월에만 20여개의 펀드가 쏟아졌다. “통일이 될 경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종목에 주로 투자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대통령이 공언했으니, 펀드에 투자자가 몰릴 것은 자명했다.

그런데 웬걸. 이들 펀드의 현주소는 초라한 모습이다. 설정액 100억원이 넘는 펀드는 ‘1호 통일펀드’인 ‘신영마라톤통일코리아증권자투자신탁(주식)’이 전부다. 지난해 패밀리펀드를 모두 합친 설정액이 417억원에 달했던 이 펀드의 현재 설정액은 324억원이다. 1년 만에 1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이 빠졌다. 나머지 펀드는 50억원 이하의 소형펀드다.

 
출범 당시 1억원의 설정액으로 출범했던 ‘교보악사우리겨레통일펀드(주식)’는 현재 7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웬만한 일반 개인투자자 1명의 주식 투자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나마 있던 투자자들의 이탈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시장의 기대감이 그만큼 낮다는 얘기다. 수익률도 신통치 않다. 11월 23일 기준 통일 펀드 중 3개월 누적 수익률이 플러스 수치를 기록한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정부 메시지에 금융 시장이 반응한 건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걸까. 통일 펀드가 시장의 외면을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통일 대박’이라는 발언과 달리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 등 대북 강경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당장 북한과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상황이 이런데 투자자가 몰릴 리가 없다.

더 큰 문제는 ‘통일대박론’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와 관계 당국의 손발이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정 인사의 자문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고, 이는 ‘최순실 게이트’로 연결됐다. 박 대통령의 비선秘線 실세 최순실씨가 ‘통일 대박’의 기틀인 드레스덴 선언 연설문을 비롯해 각종 외교안보 관련 자료를 보고 받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도 있다. ‘통일은 대박’이라던 박 대통령이 ‘갈지자’ 외교 행보를 보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펀드 시장에도 ‘최순실 게이트’의 그림자가 숨어있었다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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