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에 묻힌 현안들

▲ ‘정치 게이트’가 마무리된 이후 세상은 단 한번도 국민이 원하는 만큼 깨끗해진 적이 없다. 우리가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 그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사진=뉴시스]
‘정치 게이트’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국정을 멈추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현안을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게이트 이후 세상’이 100% 정화되는 것도 아니다. 정국과 사회에 흙탕물을 튀기는 미꾸라지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그 이후의 문제를 허투루 다뤄선 안 되는 이유다. 먼저 이 추악한 게이트에 숨은 현안들부터 찾아내 챙겨야 한다.

“불난 집에서 도둑질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11월 23일 국방부가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을 비공개로 체결하자 쏟아지는 비판이다. 국방부는 “대북 정보력 강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았다. 유사시엔 북한에 자위대를 보내 전쟁을 치를 수 있다면서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이번 협정을 두고 ‘한반도에 자위대가 진출하는 디딤돌이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민심과 어긋나는 결정이 속전속결로 추진됐다는 점이다. 비단 그뿐만이랴. 국정은 멈췄지만 민심의 폐부肺腑에 부메랑을 날리는 일은 소리소문 없이 진행되고 있다. 지방의회가 의정비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는 대표적 사례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묻혀선 안 될 현안들을 다시 한번 정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호號를 둘러싼 상황이 그만큼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시대’가 위태롭다. 대북리스크는 커질 게 분명하고, 보호무역주의로 글로벌 시장에 찬바람이 불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12월 금리인상을 준비하고 있다. 미 연준이 금리인상을 결행하면 서민경제가 더욱 위축될 게 분명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비재 가격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3% 올랐다. 올해 2월(1.3%) 이후 8개월 만에 최대치다. 1~10월 평균 물가상승률(0.9%)보다도 0.4%포인트 더 높다.

여기까진 약과다. 사상 유례없는 불황으로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도 심각한 문제다. 구조조정으로 한순간에 실직자로 전락한 사람들의 재취업도 쉽지 않다. 특히 구조조정 대상 업종이 한국경제를 지탱해오던 조선·해운 등이라는 점은 치명적이다. 조선업은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됐음에도 지원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가까스로 직장에 살아남았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는 기업들이 많아 직장인들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사내에서도 계속해야 한다.
그렇다고 국내 기업들의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단종과 함께 손실을 봤고, 지금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려 8년 만에 3차례나 압수수색을 받았다. 롯데, SK 등 삼성전자를 제외한 대기업 역시 미르·K스포츠재단과 연루돼 제대로 된 경영을 못하고 있다. ‘자업자득’이라는 비판은 마땅하지만 이 여파가 직원에게 이어진다는 점은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불을 끄는 역할을 해야 할 정부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잊은 채 표류 중이다. 2017년 예산안은 ‘최순실 예산’ 논란에 휘말렸다. 그 바람에 진짜 들여다봐야 할 사안들은 뒤로 밀려난 지 오래다. 일례로 ‘깔창 생리대’ 문제는 그동안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지만, 정작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는 지원을 위한 예산을 한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3년째 끌어온 누리과정 예산은 이번에도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상이 무너질 만한 ‘게이트’가 터져도 역사는 도도하게 흐른다. 대한민국호號의 명운이 달린 현안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추악한 일에 묻혀선 안 되는 이유다. 촛불, 그다음을 모색해야 하는 게 우리의 책무라는 거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 기억해야 할 말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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