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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걸의 有口有言] 해고에도 기술이 있다직원들과 잘 헤어지는 법
[217호] 2016년 11월 29일 (화) 08:38:40
윤영걸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 박근혜 대통령은 김병준 총리후보자를 발표하면서 황 총리에겐 문자로 해직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해고에도 예의가 필요하다.[사진=뉴시스]
지난 8월초 국내 기업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8ㆍ15 광복절을 앞두고 재계가 건의한 대통령 사면赦免에 A그룹 퇴직 임원 몇명이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회장이 임직원들의 급여를 빼돌려 고급시계와 보석을 구입했고, 비리와 횡령 배임을 저질러 유죄판결이 났는데도 반성하지 않는다”면서 사면대상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마 이 회사 퇴직임원 몇몇은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벌일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 그랬을 것이리라.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해고의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A그룹 회장은 사면대상에서 빠졌다.


한국 기업들은 직원들과 헤어지는 방법이 너무 서툴다. 그래서 평생 회사의 후원자가 돼야 할 퇴직자들이 친정을 향해 돌팔매질을 해댄다. 잘 사는 것 못지 않게, 잘 죽는 것이 중요하고, 만남보다 이별이 더 중요하다. 옥고를 치른 재벌 총수들 면면을 보면 총수 자신의 탐욕이나 도덕적 일탈도 적지 않지만 전직 임직원들의 제보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사람을 뽑는데만 신경을 쓰고, 정작 해고하는 것은 너무 쉽게 생각한다. 예우도 박절하다. ‘그동안 회사 덕에 잘 먹고 잘 살았지’ 하는 식으로 내치기만 할 뿐 감성적인 배려에 인색하다. 대부분 도망치듯 짐을 싸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사소한 감정 다툼으로 내부고발이나 소송까지 진행되는 사례가 적지 않고, 오너의 ‘구린내 나는’ 비밀을 알고 있는 퇴직자에게 입막음용으로 거액이 오가기도 한다. 하기야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황교안 국무총리 후임으로 김병준 총리후보자를 발표하면서 정작 당사자인 황 총리에게는 문자로 해직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총리가 이러니 일반 사람들은 오죽할까. 재벌회사 부회장급이라해도 처지는 다르지 않다. 예고없이 퇴임발표가 난 뒤 이임식조차 생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입사한 모든 직원이 무덤까지 함께 가면 좋겠지만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임원 승진인사’라는 신문 헤드라인은 뒤집어 보면 ‘사상 최대 규모의 임원 학살’과 다름없다. 임원의 총정원이 정해져 있다면 새로 승진하는 인원수만큼 내보내야 한다. 더구나 지금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외환위기 때 못지않다. 한치 앞이 보이질 않으니 기업은 원가절감을 위해 직원수를 자꾸 줄이려 한다. 그러니 해고자가 거리에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퇴출을 결정할 때에는 납득할 만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20세기 최고 경영자로 불리던 잭 웰치 GE 회장은 전 직원을 상위 20.0%, 중위 70.0%, 하위 10.0%로 분류해 하위 10.0%는 가차없이 걷어냈다. 잭 웰치는 가장 잔인하고 거짓된 친절은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직원을 붙잡아두다가 생활비와 자녀교육비가 많이 드는 시기에 쫓아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새로운 일을 찾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지론이었다. 그는 직원을 너무 많이 잘라내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객관적인 기준으로 해고자를 가려내 후유증을 극소화했다.

한국기업들은 냉정한 평가보다는 밀실에서 즉흥적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경영자에게 밉보인 사람을 몰아내기 위해 뒷조사를 하기도 한다. 지연ㆍ학연ㆍ혈연의 작용이 아직 크다. 그러니 내쫓긴 자들이 심판의 판정에 수긍하지 않는 것이다. 더욱 투명한 인사시스템의 정착이 시급하다.

해고에도 예의와 법도가 있다. 헤어지는 고통 속에도 함께 세상을 사는 아름다움과 낭만이 있어야 한다. 인품 넉넉한 고참 임원을 ‘퇴직담당관’으로 임명해 해고대상자의 하소연을 충분히 들어줘야 한다. 야박하게 내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퇴직 이후에도 유대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아님을 인식시켜야 한다. CEO가 직접 나서 진솔하게 떠나는 이의 손을 잡아줘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주인 회장이 직접 나서서 보듬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12월은 이별의 계절이다. 찬바람이 불어 거리에 수북이 쌓인 낙엽이 나뒹굴면 정든 일터에서 떠나야 할 사람과 남는 사람의 희비가 엇갈리게 마련이다. 피고용인은 누구나 공항 출국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처럼 곧 떠나야 할 운명이다. 오래 머물면 좋겠지만, 새로운 사람들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한다. 직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평생을 바친 삶의 터전이고, 시간의 흔적이고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해고에도 기술이 있고, 법도가 있고, 예의가 있다.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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