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블러드 다이아몬드❻

▲ 정부군과 반군은 시가지의 주권자인 국민들을 사이에 두고 무자비한 총격과 포격전을 벌인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주무대는 1990년대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Sierra leone)이다. 하지만 용병 출신이자 다이아몬드 밀수꾼인 주인공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시에라리온을 중심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기니, 콩고, 라이베리아를 부지런히 넘나든다. 다이아몬드 주요 생산국이며 당시 동시에 참담한 내전상태에 빠졌던 국가들이다. 또한 이들 국가들의 정식국호는 모두 ‘공화국(Republic)’이다.

공화국이란 ‘국가의 주권이 다수의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가 주권자인 국민의 이익과 인권을 위해 국가를 통치’하는 정체政體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들 ‘공화국’에 국민의 인권과 이익은 없다. 역사적 비극을 가장 현실적으로 재연했다고 평가받는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Freetown)’ 공방전에서 정부군과 반군은 시가지의 주권자인 국민들을 사이에 두고 무자비한 총격과 포격전을 벌인다. 국민의 대표를 자처하는 정부군이든, 또 다른 대표자를 자처하는 반군이든 그들에게 주인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만이 존재할 뿐이다.

국가의 착취와 수탈에 시달리는 마을에 ‘또 다른 국가’인 반군이 들이닥쳐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의 팔목을 자른다. 평범한 어부 솔로몬 밴디(디몬 하운수)는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끌려가고, 의사를 꿈꾸던 아들은 소년병으로 끌려간다. 이것이 ‘민주공화국’ 시에라리온의 모습이다.

오랜 기간 군부독재 ‘민주공화국’의 학정虐政에 신음했던 아르헨티나의 정치학자 기예르모 오도넬(Gillermo O’Donnell). 그는 ‘민주공화국’의 허울을 쓴 정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민주공화국은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뽑은 ‘대표’에게 자신들의 권익을 일임한다. 그것이 ‘대의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요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선출된 대표자들은 마치 국민으로부터 무소불위의 ‘전권全權’을 위임받은 것처럼 권력을 행사한다. ‘대의 민주주의’가 어느 순간 ‘위임 민주주의’로 변질되는 거다. “짐이 곧 국가(L’Etat c’est moi)”라고 선언했던 루이 14세의 절대왕정과 다를 게 없다.

▲ 국민의 대표들이 무소불위의 ‘전권全權’을 위임받은 것처럼 권력을 행사할 때 ‘대의민주주의’는 ‘위임 민주주의’로 변질된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대통령은 취임선서 때 헌법 위에 손을 얹고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해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동사무소에서 위임장을 발급받을 때 위임장의 ‘용도’를 명기하듯 대통령이 부여받은 권력의 용도와 한계를 헌법 69조에 명시한 것이다. 헌법과 취임선서에 나타난 ‘용도’ 내에서만 권력을 위임받았을 뿐이지 전권을 위임받은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 드러나는 ‘국정농단’ 사태는 마치 동사무소에서 발급받은 위임장 한장으로 위임자의 모든 재산과 생명까지 처분해 온 듯한 모습이다. 위임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말이다. 오도넬이 경고한 ‘위임 민주주의’의 함정에 빠졌다고 할까. 우리나라의 정식국호도 ‘한국 공화국(Republic of Korea)’이다. 우리 공화국은 과연 ‘시에라리온 공화국’이나 ‘콩고 공화국’보다 공화국다운지 의심스럽다. ‘대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탈을 쓴 난폭한 ‘위임 민주주의’로 돌변하지 않게 하는 것은 온전히 주권자인 국민들의 몫이다.

영국 수상이었던 처칠(Churchill)이 즐겨 인용했다는 경구警句가 다시금 떠오르는 날들이다. “모든 국민들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된다 (Every nation gets the government it deserves).” 우리 국민들이 지금의 정부 수준은 아니라고 믿는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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