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이랑주 스타일공유 대표

이랑주(44) 스타일공유 대표는 전통시장 지킴이이자 소상공인의 성공을 위해 뛰는 맞춤형 VMD다. 세계 40개국 150여개 전통시장을 섭렵한 그는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길 위의 여왕’으로 통한다. “세계일주를 하는 동안 길 찾기가 힘들었다”는 그는 젊은 세대에게 “인생길도 그렇다”고 말했다. “처음 가는 인생길에서 헤매는 건 너무도 당연합니다.”

▲ 이랑주 스타일공유 대표는 빵맛 등 상품의 가치를 시각적으로 제대로 전달하면 동네 빵집이 브랜드 빵집에 밀려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소상공인들은 품질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네빵집 사장은 흔히 빵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요. 품질은 기본입니다. 좋은 재료로 맛있는 빵을 만들었더라도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진열하고 매장의 제반 환경이 이를 받쳐줘야 돼요.” 이랑주 스타일공유 대표는 빵맛 등 상품의 가치를 시각적으로 제대로 전달하면 동네 빵집이 브랜드 빵집에 밀려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빵을 잘 만드는 재주에, 맛있게 보이도록 만드는 전략까지 갖춰야 합니다. 고객은 빵과 더불어 인테리어, 매대 등 빵을 사는 환경을 함께 구매하기 때문이죠.” 스타일공유는 예비 사회적기업이다.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에서 유행이 지나 버려지는 집기와 정기 머천다이징(MD) 때 퇴출되는 점포의 집기를 수거한 후 손봐 전통시장 점포에 제공한다. 백화점으로서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다. 이들 집기 덕에 전통시장 점포는 판매가 늘어난다.

“비주얼을 알면 머천다이징이 좋아집니다. 미장원의 집기를 바꿔주고 사장이 30년 사용한 미용가위를 액자에 넣어 벽에 걸면 고객 반응이 달라지죠.” 이 대표는 백화점 비주얼 머천다이저(visual merchandiser·VMD) 출신이다. 2005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비주얼 머천다이징에 대해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을 계기로 독립해 이랑주VMD연구소를 차렸다. 이때부터 전통시장을 살리기에 매진하는 한편 소상공인들의 성공 도우미로 뛰었다.

✚ 소상공인들에게 VMD에 관해 ‘지상 컨설팅’을 한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시겠어요? 세가지로 압축해 주시죠.
“첫째 우리 점포만의 주제 색상이 필요합니다. 스타벅스 같으면 초록색이죠. 이 색상을 세번 이상 반복해 구사해야 합니다. 핑크색이 주제 색상인 배스킨라빈스는 간판, 아이스크림 떠먹는 스푼, 아이스크림 케이크 묶는 리본에 이 색을 사용합니다. 둘째 조명을 잘 골라야 돼요. 먹거리를 판다면 식욕을 돋우도록 형광등 말고 노란 빛이 도는 삼파장 램프를 써야 합니다. 셋째 상품을 진열할 때 상품군 간에 최소한의 간격을 둬야 합니다. 최소한 9㎝의 간극 즉 비움이 있어야 진열 상품에 고객의 손이 가요. 이 ‘비움의 전술’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에요.”

이 대표는 이런 VMD 전략을 지난봄 출간한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에 수록했다. 부제는 ‘보는 순간 사고 싶게 만드는 9가지 법칙’. 이 책은 14쇄까지 찍었다고 한다. “600만 소상공인을 위해 썼는데 대기업 사람들이 주로 사봤습니다. 먹고살기 바쁜 탓도 있겠죠. 이 책을 읽으면 돈 들여 VMD 컨설팅을 받지 않아도 되고 폐업 확률을 낮출 수 있습니다. 그저 몇가지만 고치면 돼요.”

그는 2012년 7년간 운영한 이랑주VMD연구소 문을 닫고 남편과 세계일주에 나섰다. 전통시장 살리는 일이 힘들기도 했지만 시장이 뜻대로 잘 살아나지 않는 것이 마음 아팠다. 1년간 배낭을 메고 40개국 150여 개 전통시장을 찾아다녔다. 이때 발로 뛰어 얻은 지식을 2014년 쓴 책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에 담았다.

✚ 시장이 살아남는 길이 뭔가요?
“고객이 뭘 원하는지 제대로 알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온 철학이 있어야 돼요. 모든 매장은 점포주 즉 한 브랜드의 철학이 담긴 그릇입니다. 시장은 또 마트처럼 상거래가 이뤄지는 곳이자 마트와 달리 문화가 서려 있는 삶의 현장이에요. 마트가 사람과 물건이 만나는 곳이라면 시장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죠. 시장이 이 문화성을 상실하면 마트에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 구체적으로 상인들의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요?
“시장 상인들이 스토리가 담긴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팔아야 합니다. 메밀로 특화한 강원도 봉평시장이 그런 곳이죠. 또 청년들이 시장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고령화하는 상인과 청년 간의 코워크가 필요해요. 중기청이 이렇게 시장에 들어온 청년들을 1년간 지원하는데 이들이 뿌리를 내리려면 지원 기간을 3~5년으로 연장해야 합니다. 정부도 개별 시장의 콘셉트 설정을 돕고 홍보도 지원해야 합니다.”

그는 이랑주VMD연구소 시절 직원들과 결성한 한국VMD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8개 회사가 뭉친 지식형 협동조합이다. 시장 상인들은 그에게 ‘길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선물했다.

✚ 시장의 좋은 점이 뭔가요?
“계절이 바뀔 때 시장을 찾아보세요. 마트에서 보기 힘든 그 시즌에만 나는 상품들이 있죠.”

✚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 뭐가 좋은가요?
 “온몸의 세포가 바뀌는 경험이랄까요? 넓고 다양한 세상을 만나면 편협한 시각과 생각이 교정되죠. 단적으로 여기서는 옳은 게 거기서는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을 내고서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른 그의 눈에 차가운 바닥에 앉아 책을 읽는 아이들이 들어왔다. ‘저 아이들은 독서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책을 싫어하고 서점을 멀리하지는 않을까?’ 한쪽에서는 안마의자와 수세미를 팔았다. 그는 교보에 전화를 걸어 최근 책을 낸 진열 전문가라고 자기 소개를 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열을 바꿔 매출을 올리는 무료 강의를 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 이랑주 대표는 “비주얼 콘셉트는 철학에서 나오고 구현된 비주얼 아이디어가 라이프 스타일을 바꾼다”고 설명했다.[사진=지정훈 기자]
그는 직원들에게 세계 10대 서점 사진을 보여주고 물었다. ‘교보는 어떤 서점인가? 어떤 서점으로 불리고 싶나?’ 한 신입 사원이 ‘책을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답했다. “책과 사랑에 빠지려면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할까요?” 이 화두를 푸느라 TF팀이 꾸려졌다. 교보생명 출신 허정도 교보문고 대표가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100인의 독서 테이블’이다. 100여명이 한꺼번에 앉아 독서를 할 수 있다. 블로거들은 ‘오늘도 100인 테이블에 자리가 없었다. 내일은 더 일찍 가야지’라고 썼다.

이 테이블을 들여놓느라 책을 많이 뺐는데 매출은 오히려 올랐다.  “저야 이 리뉴얼에 숟가락을 얹은 것뿐이에요. 어떻든 매장 공간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건지 콘셉트를 정립하는 게 중요해요. 비주얼 콘셉트는 철학에서 나오고 구현된 비주얼 아이디어가 라이프 스타일을 바꿉니다.”

그는 내년에 이로운 제품을 찾아 전국을 일주하는 꿈을 꾸고 있다. 이를 실행에 옮기려 세계일주 후 재취업한 네살 연하의 남편을 설득 중이다. 그는 과메기로 유명한 포항 구룡포 출신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여상에 진학했지만 주판에 약해 은행 취업을 포기했다. 인문계 수업을 청강해 4년제 대학 시험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전문대 디자인과에 진학해 각고의 노력 끝에 수석 졸업을 했지만 세번 취업 사기를 당했다.

“이랜드 계약직을 거쳐 백화점에서 일할 때 전문대 출신이라고 동료들에게 무시당했어요. 말 없는 그 눈빛에 마음이 많이 아팠죠. 그 결핍을 채우려 늦깎이로 공부해 서른일곱에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그러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결핍이 보였습니다.” 그는 청년 창업가 두 사람과의 코워크로 스타일공유를 꾸려나간다. 경력단절여성들에게 VMD를 가르치는 한편 이들을 투입해 소상공인들의 매장을 바꾸는 꿈을 꾼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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