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한 ‘박근혜 디스카운트’

▲ 대내외적으로 경제가 비상 상황인데,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장기화하고 있다. 이러다 한국경제가 '장기불황의 늪'으로 더 빠져들어갈지 우려된다.[사진=뉴시스]

1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된 제4회 창조경제박람회는 썰렁했다. 지난해의 두배에 가까운 33억원이 지원되는 등 예산과 참가업체 모두 역대 최대다. 하지만 기조강연이나 기념사, 축사가 없었다. 두차례 개막식에 참석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 오후 박 대통령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이 행사장대신 전날 불이 난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정치적 고비가 닥칠 때면 찾아 ‘기운’을 받던 곳이다. 하지만 이날은 지지자들의 박수와 환호 대신 시장 입구에서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침묵시위를 목격해야 했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에 국정이 올스톱 상태다. 박 대통령은 10월 11일 이후 국무회의를 주재하지 않았다. 수석비서관 회의도 마찬가지다. 게이트가 표면화한 이후 대통령이 한 일은 일부 외교사절 접대와 차관ㆍ경찰 인사가 고작이다.

대통령이 역할을 못하면 정부부처라도 중심을 잡아야 할 텐데 총리와 경제부총리 또한 물러날 자와 내정자가 공존하는 비정상 구조가 한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새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 등 임명 절차는 기약조차 없다. 총리ㆍ부총리 처지가 이러니 이들의 지휘를 받는 공직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그사이 한국 경제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오랜 경기침체와 소득정체로 연말인데도 소비가 얼어붙었다. 매출과 이익이 동반 감소한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줄이고 있다. 급기야 그동안 상대적으로 낙관적 전망을 내놨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 CD)마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6%로 낮췄다. 지난 6월과 비교해 다섯달 새 0.4%포인트나 낮추면서 그 주요 이유로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정치 리스크를 꼽았다.

우리 사회의 리스크가 어디 이뿐인가. 조선과 해운업 등 부실기업 문제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인데 구조조정 작업은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3분기 말 가계부채가 1296조원으로 1300조원에 육박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이미 오른 판에 12월 중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국내 금리도 덩달아 올라 가계의 이자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다.

기업부채와 가계부채발發 경제 리스크에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발 정치 리스크까지 가세함으로써 한국 경제와 기업에 대한 해외의 평가를 떨어뜨리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가 현실화하고 있다. 당장 11월부터 들어오기보다 빠져나가는 금액이 많은 외국인 자금의 유출 규모가 커질 수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강한 달러, 트럼프 시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한국 경제의 리스크를 더욱 키울 것이다.

대내외적으로 경제가 비상 상황인데 컨트롤타워 부재는 장기화하고 있다. 이러다가 새해 경제운영 방향인들 제때 제대로 세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내년 예산안이야 가까스로 법정 시한인 2일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박근혜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서비스산업발전법이나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심의는 부지하세월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새 행정부 경제팀을 속속 기업인 출신으로 채우고 있다. 재무장관에는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서 오래 일한 금융인을, 상무장관에는 기업 인수ㆍ합병(M&A) 전문가를 임명했다. 대외 통상 업무를 총괄하는 통상대표부(USTR) 대표 자리에도 기업인 출신이 거론된다.

이들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노믹스에 속도를 붙일 텐데 우리는 자격과 신뢰를 잃은 대통령의 버티기로 국정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다. 그 바람에 미국의 정책 변화를 대비하기는커녕 발등에 떨어진 국내 현안도 처리하지 못해 경제가 망가지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ㆍ퇴진 시계가 돌아가는 가운데에서도 민생경제를 책임질 경제사령탑은 대통령과 국회가 협조해 서둘러 재정비해야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당신이 경제대통령이야’ 하며 전권을 주었다는 김재익 경제수석처럼 정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경제관과 미래 비전을 갖춘 인물로. 박 대통령이 지금 기억해야 할 건 ‘아버지의 오만한 권력’이 아니라 경제를 배우겠다면서 심야에 김학렬 경제부총리 집을 찾았던 ‘아버지의 학습열’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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