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고에 시달리는 면세점

설상가상. 지금 면세점 업계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당한 말이 있을까. 면세점 특허 갱신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개정안은 무산됐다. 12월 계획된 시내면세점 입찰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발목이 잡혔다. 불황에도 유통채널 중 유일하게 승승장구했던 면세점 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 국정농단에 발목잡힌 면세점업계가 여러 난제에 빠져있다.[사진=뉴시스]
올 11월 24일 검찰이 관세청과 기획재정부를 압수수색했다. 관세청이 한화갤러리아와 두산그룹에 면세점 특허권을 내주는 과정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서다. 

사실 면세점 특허 심사 과정에서 청와대와 참여 기업 간 물밑 거래가 있었고, 그 결과에 따라 사업자가 결정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런 뒷말이 극에 달한 건 지난해 실시된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권 심사다. 당시 면세점 사업 27년 경력의 롯데면세점과 23년 경력의 SK네트웍스 워커힐면세점이 특허권을 상실하고 면세점 사업 경험이 없는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특허권을 따냈다. 하지만 관세청은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아 의혹을 키웠다. 

그러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묻힐 것 같았던 면세점 선정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당연히 신규 시내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에도 제동이 걸렸다. 사업자를 선정해야 할 관세청과 기재부가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 면세점업계는 경영 안정성과 장기 투자 위축을 이유로 특허기간 연장을 주장했지만 결국 개정안은 무산됐다.[사진=뉴시스]
당초 관세청은 12월 중 신규 시내면세점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10월 4일 후보 접수를 완료했다. 하지만 관련 절차는 그 이후 한걸음도 전진하지 못했고, 시장 안팎엔 ‘무산설’ ‘연기설’이 나돌았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촉박할뿐더러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이 계획대로 3일 업체에 통보하고 10일 프레젠테이션을 할 거란 얘기도 있지만 실현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면세점 업계의 발목을 잡는 건 또 있다. 특허권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이 그것이다. 하지만 결국 무산됐다. 과거 면세점 특허권은 결격 사유가 없으면 10년마다 연장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2013년 관세법 개정안이 통과하면서 기간이 5년으로 단축됐고, 기존 사업자도 원점에서 재입찰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2013년 당시 업계는 제도가 변경되더라도 기존 사업자들이 특허권을 잃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시내면세점 특허권 경쟁에서 롯데면세점과 SK네트웍스 워커힐면세점이 특허권을 상실하자 곳곳에서 바뀐 제도에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사업 안정성’이나 ‘장기 투자 위축’ 문제가 거론된 것도 이때부터다.

관세법 개정안 무산

그러자 정부는 올 초 면세점 특허 갱신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기로 했고, 이 개정안은 정기국회에 상정됐다. 하지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최종적으로 ‘관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 현행 면세점 특허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제외했다. 재추진을 하려면 다시 개정안을 제출해야 한다. 한편에선 검찰이 최순실 사태를 수사하고 있는 만큼 해당 사안을 재점검해봐야 한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5년 특허’가 면세점 사업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한다. 중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 등은 대형화 방침을 통해 면세산업을 키우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사업권 기간을 5년으로 한정해 투자 위축, 고용 불안정 등의 우려를 낳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2017년 12월 롯데면세점 코엑스점의 특허권이 만료되고 신규 사업자로 선정된 두산과 신세계DF는 5년 뒤 재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런 면세점 논란은 상당히 위험하다. 수많은 인력이 일자리를 잃거나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시내면세점 사업자 3곳이 선정되면 최소 3000여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 중소·중견기업이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되더라도 최소 500명 이상이 일자리를 얻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5년이라는 특허기간이 보장되면 일자리는 몇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다.

노동자 잡는 면세점 논란

반대로 무산되면 그만큼의 신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기존 직원들도 밥줄이 끊길 수 있다. 지난해 면세점 특허권을 상실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경우, 면세점 근무직원은 물론 용역업체, 매장 판촉직원까지 포함해 3000여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다행히 면세점에서 근무하던 1300여명의 직원은 다른 지점으로 이동을 하거나 휴직을 했지만, 이번 입찰에서 재선정되지 않는다면 이마저도 잃을 처지에 놓이게 된다.

SK네트웍스 워커힐 면세점도 상황은 비슷하다. 재탈환에 성공하지 못하면 면세점 근무 직원 200여명, 용역업체와 매장 판촉 직원 700여명까지 더해 900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SK네트웍스는 지난해 면세점 특허 심사에서 탈락했지만 현재 직원들은 그대로다. “면세점이 아직 그대로 있고, 직원도 그대로 있다”고 말하는 SK네트웍스 측이 하루라도 빨리 특허권을 얻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다. 국정농단에 발목 잡힌 면세점 업계가 진퇴양난에 빠져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는 얘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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