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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산업기본법은 기본적으로 강자보다 약자를 억누를 가능성이 높다.[사진=뉴시스]
법은 종종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다. 죄를 지은 이가 낮은 처벌을 받는가 하면, 죄 없는 이가 죄를 뒤집어쓰거나 죄질이 나쁜 이보다 더 큰 처벌을 받기도 한다. 우리 법이 사회적 정의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힘 없는 하도급 업체가 무거운 처벌을 받은 사례다.

2015년 어느 봄. 부산의 한 건설업체 A사의 대표가 수사기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고발 내용은 C공공기관으로부터 전문건설 공사 발주가 있었는데, 건설업체 B사가 불법으로 하도급을 받았다는 것(건설산업기본법 위반)이었다.

사실 A사 대표가 B사를 고발하기 전까지 두 기업은 공생관계였다. B사는 건설공사 경험과 실적이 풍부해 부산 지역에서는 나름 인지도가 있는 중견 건설업체였지만, 전문건설업체로 등록돼 있지 않았다. 반면 A사는 영세하고 공사실적이 많지 않았지만 전문건설기계를 보유하고 있어 전문건설업체로 등록돼 있었다. 그리고 C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는 전문건설업체만 참여할 수 있는 공사였다. A사와 B사가 손을 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A사는 전문건설기계를 B사에 사실상 보유한 것처럼 보이게 빌려주고, 전문건설업체로 등록한 B사가 실적과 인지도를 앞세워 공사를 수주하면 A사에 하도급을 주기로 한 것이다. 결국 B사는 공사를 수주했다. 하지만 B사는 공사를 수주한 이후 A사로부터 빌린 기계와 인력으로 모든 공사를 진행하면서도 자신의 이익만 챙기기 바빴다. 특히 B사는 원사업자로서 갑질을 일삼았다. 화가 난 A사 대표는 B사를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A사와 B사가 편법으로 공사를 수주하고 나눠먹기했다는 점에서 두 기업 대표는 함께 처벌을 받았다. 문제는 B사보다 전문건설기계를 빌려준 A사가 더 큰 처벌을 받았다는 점이다. 왜일까. 답은 조금 황당하다.

전문건설기계의 명의를 빌려준 A사는 자격요건을 상실했다. 전문건설기계를 사실상 B사에 넘겼기 때문이다. 자격요건을 상실한 A사는 건설산업기본법상 ‘건설업자’가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B사로부터 하도급을 받았으니, A사는 ‘불법 수주’를 받은 셈이다. 힘없는 하도급 업체인 A사가 더 무거운 처벌을 받은 이유다. 대법원 판례도 이와 같다.

결과적으로 B사는 이익을 누리고 약한 처벌을 받은 반면, A사는 일은 일대로 하고 이익은 별로 못 보면서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A사가 잘 했다는 건 아니지만, 법이 약자를 더 힘들게 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이 애초부터 대형건설사(원사업자)의 입장에서 소규모 영세건설사(하도급자)를 짓누르려고 했던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를 ‘정의’라고 할 수 있느냐다.

사람이 만드는 법은 완전무결하지 않고 빈틈과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법원은 부당한 피해자가 없도록 판결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지금이라도 건설산업기본법은 개정돼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박재정 IBS법률사무소 변호사 pjj@ibslaw.co.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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