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삼성 지원 사실이라면…

▲ 삼성이 투명하게 변하지 않는 한 리스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사진=뉴시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도 ‘찬성’을 했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주주들은 국민연금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게 분명하고, 정황적 증거가 확실하다면 국민연금이 패소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딴지’를 걸었던 엘리엇은 가만히 있을까.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리스크가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지상 목표는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승계다. 우리나라에서 그걸 모르는 이가 있나. 삼성만 이를 부인한다. 중요한 건 삼성이 승계 과정을 주주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단 한번도 거친 적 없다는 거다. 엘리엇은 이를 이용해 삼성을 공격하는 것이고, 그 빌미를 삼성이 제공하고 있다. 삼성이 변화하지 않으면 더 큰 비용을 치를 것이다.”

지난해 6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앞두고 있을 무렵, 김상조 한성대(무역학) 교수가 더스쿠프(The SCOOP)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삼성은 이 조언을 흘려들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별로 바뀐 게 없어서다. 하지만 김 교수의 예측은 조금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불거진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와의 법적 분쟁(2015년 5~7월)에서 승리해 합병 건을 잘 마무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합병 후 1년 반이 흘렀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배구조 개편 문제와 맞물려 ▲오너 일가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 ‘1(제일모직) 대 0.35(삼성물산)’의 합병 비율 ▲낮게 책정된 삼성물산의 주식매수가격 ▲ISS와 같은 세계 최고 의결권자문회사들의 ‘합병 반대’ 권고를 무시하고 손해를 보면서까지 합병을 찬성한 국민연금의 행태 등이 소송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어서다.

옛 삼성물산 주주였던 일성신약은 지난해 “삼성물산이 제시했던 주식매수가격이 너무 낮다”면서 가격조정 소송을 냈고, 올해 5월 2심에서 “당초 5만7234원보다 9368원 더 높은 6만6602원이 적정 가격”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업 가치를 더 높여야 할 의무가 있는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이 판결을 두고 되레 “말도 안 된다”며 발끈했다는 거다.

일성신약은 올해 3월엔 합병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최근엔 일부 삼성물산 주주들과 함께 국민연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도 시작했다. 국민연금이 삼성으로부터 합병 관련 미공개 정보를 받아 미리 삼성물산 주식을 처분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췄고, 그로 인해 삼성그룹 총수 일가가 득을 봤다는 게 소송의 취지다.

소액주주들도 국민연금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정부가 개입해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다. 국회청문회도 예정돼 있다. 소액주주들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한결의 김광중 변호사는 “피해금액을 얼마나 돌려받느냐보다 정부의 위법행위를 확인받는 공익적인 목표가 이번 소송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합병을 둘러싼 소송이 ‘정부의 위법행위’를 밝히는 절차로 발전했다는 얘기다.

문제는 소액주주들의 소송에서 승리했을 경우다. 그렇다면 삼성과의 법적분쟁에서 패하고 돌아간 엘리엇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이용해 또다시 삼성을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ISD 제소를 통해 다시 한번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물음에 엘리엇 측은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엘리엇은 ISD 제소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최근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이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과 주식가치를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라는 등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에 우호적인 발언도 내고 있다. 이 때문에 엘리엇이 삼성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기로 합의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엘리엇은 이익 극대화를 꾀하는 투자집단이라는 점에서 검찰 수사에 따라 얼마든지 입장을 바꿀 수 있다” “삼성물산과의 소송에서 패한 경험 때문에 더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실제로 ISD 제소는 단 한번의 결정으로 끝나며 결과를 뒤집을 수도 없고, 국제 신뢰의 문제 때문에 승복하지 않을 수도 없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일단 일부 법률가는 “소액주주들이 삼성과의 소송에서 승리하고, 이를 근거로 엘리엇이 ISD에 제소한다면 삼성의 우세를 장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박재정 IBS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법원은 애초 합병비율 산정에 불공정함이 없다고 했다”면서 “하지만 국민연금을 통해 주가조작이 있었다거나 정부가 국민연금에 입김을 넣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것 자체가 ‘합병비율의 공정한 산정’을 해쳤다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가 되는 삼성물산의 주식가치 산정 문제를 원점부터 다시 따질 수 있다는 거다.

ISD 제소하면 삼성 불리할 것 

박 변호사는 “손해액은 다시 따져볼 문제지만, 엘리엇을 비롯한 옛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한다면 확실히 삼성에 불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현의 류형영 변호사는 “국민연금 자체가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개입해 삼성물산 주주들의 손해에 영향을 끼쳤다면 그것만으로 ISD 제소가 가능하다”면서 “정부의 부당한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까지 덧붙으면 엘리엇의 승소 가능성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지난해 판결은 엘리엇 측에 불리하게 작용한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 “때문에 제소를 한다면 국제무대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엘리엇의 주주제안 자격을 문제 삼은 게 대표적이다. 법원은 엘리엇이 지난해 6월 추가 매입한 삼성물산 주식 보유기간이 짧다면서 소액주주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0~2014년까지 판례들은 보유기간과 상관없이 3% 이상만 갖고 있으면 주주자격을 인정해왔다.

류 변호사는 “손해배상의 범위를 ‘직접적인 손해’로 한정짓는 국내 법원과 달리 미국에선 그 외 부대 비용, 이자, 향후의 기회비용까지 고려한다”면서 “때문에 적게는 3~4배, 많게는 10배까지 높은 손해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 엘리엇이 ISD 제소를 진행하고, 삼성이 패소했을 때 삼성의 비용은 대략 얼마나 될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 측이 제시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은 5만7234원. 최근 서울고법이 적정 가격으로 산정한 가격은 6만6602원이다. 9368원의 차이가 난다. 당시 엘리엇이 갖고 있던 주식은 모두 1112만5927주였다. 국민연금에 ‘합병 반대’ 권고를 했던 세계 의결권자문회사들이 제시한 적정 합병 비율은 ‘1(제일모직) 대 0.95(삼성물산)’였다.

이를 토대로 계산을 해보면 직접적인 손해배상 액수만 대략 1042억~3705억원이다. 류 변호사의 말대로 여기에 각종 비용과 이자, 기회비용까지 더하면 1조원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삼성물산 옛 주주는 엘리엇뿐만이 아니다. 기간도 수년씩 걸린다. 그 기간에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 등을 모두 고려한다면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검찰이 국민연금의 태도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리스크를 잘 알면서도 합병에 찬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할 경우, 수천억원의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전망한 국민연금 내부회의록도 있다. 이 때문에 관련 의혹을 덮기엔 무리가 있다. 삼성이 키운 지배구조 리스크의 뇌관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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