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블러드 다이아몬드❼

▲ 보웬은 아처에게 다이아몬드 밀거래의 흑막을 세상에 고발해주기를 청하지만 아처는 ‘수요와 공급’ 법칙을 들며 비웃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등장하는 논쟁 하나. 미국 기자 매디 보웬(제니퍼 코넬리)은 아프리카의 참상을 상징하는 ‘전쟁과 피로 얼룩진 다이아몬드’ 채취와 불법거래를 추적하기 위해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으로 간다. 정의감과 사명감에 충만한 보웬은 그곳에서 밀거래를 담당하는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접근해 이제라도 개과천선해 다이아몬드 밀거래의 흑막을 세상에 고발해주기를 청한다.

하지만 아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들이대며 “잘난 미국 여자들이 결혼식 때 다이아몬드를 그토록 원하는 게 문제”라면서 보웬의 이상理想을 보란 듯이 비웃는다. 아처는 다이아몬드를 향한 사람들의 헛된 욕망에 분노한다. 그 안에는 인간의 헛된 욕망과 그 욕망을 부채질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분노가 배어있다. 보웬 기자는 “그렇다면 그들이 욕망하는 허황된 다이아몬드가 어디서 어떤 과정을 통해 오는 것인지 소비자들에게 알려줄 책임이 있다”고 설득을 멈추지 않는다.

보웬과 아처의 논쟁은 승패를 가리기 어렵다. 그런데 과연 다이아몬드만이 피에 물들어 있을까. 세계적인 커피 재벌 스타벅스는 오늘도 가나와 에티오피아 어린아이들의 하루 50센트짜리 가엾은 노역으로 휘황찬란한 커피매장을 운영한다.

무엇이든 욕망의 대상이 되는 순간 인간은 그것을 얻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 그 욕망이 다이아몬드 광산을 피와 죽음으로 물들게 한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휘황찬란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고받는 신랑신부, 근사한 커피숍에서 진한 풍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다이아몬드에 서린 아프리카의 비극과 커피콩에 서린 앙상한 어린이들의 땀을 떠올릴 수 있을까. 그들에게 그것을 기대하고 요구할 수 있을까.

▲ 커피재벌 스타벅스는 가나와 에티오피아 어린아이들의 가엾은 노역으로 휘황찬란한 커피매장을 운영한다.[사진=뉴시스]
다이아몬드나 웨딩드레스, 커피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에는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피와 땀과 한숨이 배어있을 것이다. ‘피의 다이아몬드’ 추적에 나선 보웬 기자는 우리 모두가 그 피와 땀을 알고 그들에게도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우리의 영원한 고전인 「춘향전」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것도 아마 우리 민족의 한과 정서가 가장 잘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성의 고혈을 빨아 욕망의 절정으로 치닫는 변사또의 파티에 거지꼴을 한 암행어사 이몽룡이 나타나 시 한 수를 읊는다. “金樽美酒 千人血, 玉盤佳肴 萬姓膏. 燭淚落時 民淚落, 歌聲高處 怨聲高(금잔에 담긴 달콤한 술은 1000명의 피요, 옥쟁반의 귀한 안주는 1만 사람의 땀이라. 촛농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흐르고, 흥겨운 노래 소리 높을 때 사람들 원망소리 높다).”

거지행색을 한 이몽룡의 시 한 수에 흥겨운 연회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일순간 싸해진다. 그러나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한창 물오른 현실의 파티에서 누군가 ‘그 따위’ 훈계를 한다면 “너 잘났다”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지고, 특히 그 사람이 거지꼴이라면 술병으로 얻어터지지 않는 게 다행이다. 변사또의 파티가 정말 거지행색을 이몽룡의 시 한 수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면 변사또 파티 참가자들은 분명 썩 괜찮은 사람들이었을 거다.

굳이 권력자나 ‘금수저’ ‘상위 1%’의 무신경, 파렴치를 들먹일 필요까지도 없다. 인식의 변환 없이 단순히 아랫돌과 윗돌 자리바꿈만 한다고 ‘金樽美酒 千人血 玉盤佳肴 萬姓膏’가 사라질 리 없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하고, 며느리 늙은 것이 시어미일 뿐이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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