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승부수 던진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박진수(64)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이 최근 LG생명과학 합병 결정을 이끌어내는 등 ‘바이오’ 사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4월엔 동부팜한농을 인수해 ‘그린 바이오’ 사업에 먼저 발을 내디뎠다. 석유화학 등 기존 사업이 연간 1조8000억원(2015년)이 넘는 영업이익을 낼 정도로 잘나갈 때 바이오 등 신사업에 도전해 미래 먹거리를 장만해 놓겠다는 생각에서다.

▲ 박진수 부회장은 ‘바이오’를 LG화학의 주요 신성장동력의 하나로 잡았다.[사진=뉴시스]

“바이오(Bio)에 과감하게 선제적 투자를 해 이를 세계적 수준의 사업으로 키우겠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의 올해는 아무래도 바이오에 승부수를 던진 한해로 기록될 것 같다.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그린 바이오’와 ‘레드 바이오’에 함께 손을 댄 한해였기 때문이다.

출발은 지난 4월 동부그룹의 종자ㆍ농화학 업체인 팜한농을 4245억원에 인수한 것이었다. 농수산물 분야인 그린 바이오에 먼저 발을 내디딘 것. 1953년 설립된 팜한농은 63년 넘게 농자재 산업을 해온 국내 1위의 그린 바이오 기업이다. 작물보호제 시장점유율 1위(약 27%), 종자 및 비료 시장 2위(약 19%)로 지난해 매출 6283억원, 영업이익 221억원을 기록했다. 인수 당시 임직원은 1000여명으로 알려졌다.

박 부회장은 11월 28일 같은 LG그룹 내 바이오의약 계열사인 LG생명과학과의 합병 결정도 이끌어냈다. 레드 바이오 부문에까지 영역을 넓혀 명실 공히 바이오를 LG화학의 새로운 주력 사업군群으로 부각시킨 것.

이날 LG화학(존속법인)과 LG생명과학(해산법인)은 각각 이사회와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양사의 합병을 최종 승인했다. 12월 19일 LG생명과학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생각대로 잘 진행되면 합병이 완료된다. 합병 기일은 새해(2017년) 1월 1일이다. 합병을 통해 2025년 매출 50조원 규모의 ‘글로벌 상위 5위 화학회사’로 발돋움한다는 게 포부다.

주지하다시피 LG화학은 LG전자LG디스플레이 등과 함께 LG그룹 주력 3사에 속한다. 지난해 매출 20조2066억원에 영업이익 1조8236억원을 기록한 국내 간판급 석유화학 회사다. LG생명과학은 지난해 매출 4505억원에 영업이익 252억원을 올린 바이오 전문업체다. 매출로만 보면 LG화학의 2%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제약 연구개발(R&D) 역량과 관련 사업 구축이란 면에서는 그동안 나름대로 성과를 보였다. 유트로핀(성장호르몬제) 등 10여개 바이오 의약품 개발 및 수출, B형 간염백신 및 5가 혼합백신 UN 공급자격 획득, 팩티프(항생제)제미글로(당뇨신약) 등 합성신약 개발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영업력이 떨어지고 투자 재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글로벌 바이오 기업이 되려면 무엇보다 새로운 사업 조직과 대규모 투자재원이 필요했다. LG화학이 이번 합병 결정을 놓고 “그룹 차원의 바이오 사업 육성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특히 해당 사업을 진행하는 양사의 전략적 니즈(Needs)가 일치된 결과”라고 설명한 건 그런 배경 때문이다.

비록 LG생명과학이란 법인명은 없어지지만 총알(유동성)이 풍부한 투자 지원군을 만나 사업 자체를 더 키울 수 있다는 것. LG화학은 LG생명과학의 연간 투자액 약 1300억원의 3배가 넘는 3000억~5000억원 규모를 매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미있는 것은 14년 전인 2002년 LG화학의 그늘을 떠나 분가했던 LG생명과학이 이번에 다시 어머니(LG화학)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사실이다.

팜한농 인수에 LG생명과학도 합병

LG화학은 합병 승인 후 금융감독원 공시 자료를 통해 이번 합병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합병을 통해 LG화학은 바이오 사업 육성을 통한 미래지향적 사업포트폴리오를 더욱 강화하고, LG생명과학은 장기적안정적 신약개발 투자를 확대해 레드 바이오산업의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하고자 한다.”

이에 앞서 박 부회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미래 신성장에 필요한 사업구조 고도화에 나서겠다”며 “‘에너지바이오’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현실을 직시하고 사업구조와 사업방식, 조직문화 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같은 3월 청주 오창공장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LG화학의 중장기 미래 변화 방향으로 에너지바이오 3가지 분야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박 부회장은 연 매출 20조원이 넘는 LG화학에 연 매출 합계 1조원 규모인 팜한농과 LG생명과학 두 회사를 접목해 바이오 사업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향후 ‘화이트 바이오’ 진출 기회도 엿보고 있다. 화이트 바이오란 바이오에탄올 등 친환경 에너지 분야를 가리킨다.

업계에 따르면 2014~2020년 기간에 LG화학 주력 사업 분야인 석유화학산업은 연평균 3% 성장률이 예상된다. 같은 기간 그린 바이오(8%), 레드 바이오(5%), 화이트 바이오(4%) 등은 성장률이 그보다 더 높을 전망이다. 세계 최대 화학기업인 독일 바스프나 일본 스미토모 등이 바이오 사업을 하고 있는 점도 글로벌 회사인 LG화학의 바이오 진출에 자극제가 됐다.

올 3분기까지의 LG화학 매출 구성을 살펴보면 기초소재(석유화학제품 가공원료)가 69.8%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그 외에 전지(16.5%), 정보 전자 소재 및 재료(11.9%), 작물보호제 등 바이오 부문(1.8%) 등으로 돼 있다. 연간 영업이익 1조8236억원(2015년 기준)에 영업이익률 9.0%라는 놀라운 실적을 올린 데에는 기초소재 부문의 공이 절대적이다(그래픽 참조).


풍부한 유동성을 확보한 김에 바이오 등 미래 사업에 적극 투자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강해 놓겠다는 게 박 부회장의 생각 같다. 효자사업인 석유화학 분야에 대한 중국의 공세가 워낙 거센 데다 에틸렌을 중심으로 한 지금의 호황 국면이 언제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찾기를 재촉한 셈이다.

‘신사업’ 통해 미래 성장 거점 확보

박 부회장은 서울공대 화공과를 나와 1977년 LG화학의 전신 격인 ㈜럭키에 입사한 이래 39년간 LG그룹 화학 업종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LG그룹의 중진 전문경영자로 석유화학 사업을 큰 틀에서 이끌어 왔다. 현재 LG그룹에서 분야별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부회장은 모두 6명. 박 부회장은 석유화학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해온 부회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오너 재가를 받아 일을 결정하겠지만 바이오 업체 M&A 등과 같은 큰일을 추진할 때는 자신의 오랜 경험과 판단력을 총동원할 것이다.

이번 합병 승인을 앞두고 박 부회장이 자사주 매입에 나서는 등 주주친화 제스처를 보인 것은 이번 합병의 키를 시장이 상당 정도 갖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합병을 앞두고 주가가 많이 떨어져 12월 19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어느 정도 이뤄질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장은 합병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지만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라는 합병의 큰 관문을 무사히 통과할지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