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나 사지 뭐

▲ 올 상반기 복권 판매액은 1조8925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사진=뉴시스]

아무런 능력도 없는 사람이 세상을 주물렀다. 집권자의 비선秘線이라는 이유, 그것 하나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상실감을 느낀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은 분기憤氣까지 품는다. 차라리 분기는 다행이다. ‘인생은 운’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증가한 건 사회적 문제다. “로또나 사지 뭐…”라면서 복권발매기로 향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걸 간단히 봐선 안 된다는 얘기다.

3년차 노량진 공시족인 김경훈(29ㆍ가명)씨는 가뜩이나 부족한 생활비를 아끼고 아끼면서까지 매주 사들이는 게 있다. 복권이다. 김씨는 온라인복권(로또)은 물론 즉석복권도 잊지 않고 구입한다. 처음엔 답답한 마음에 사기 시작했지만 이젠 유일한 희망이 됐다. 올해도 공무원 시험에 낙방하면서 언제 끝날지도 모를 공시생 생활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에겐 로또에 당첨될 확률 800만분의 1이나 22만2650명의 지원자 중 2591명만 합격하는 9급 공무원 시험이나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는 꿈인 것만 같다. 경기침체가 갈수록 깊어지면서 ‘인생 역전’을 노리고 복권을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고구마 줄기 엮이듯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는 권력층의 부정ㆍ부패가 복권 구매욕구를 부추기고 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된다는 ‘황금만능주의’가 사회 저변에 깔리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복권 판매액은 사상 최고치를 계속해서 갈아치우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복권위원회가 발표한 ‘상반기 복권 판매동향’에 따르면 복권판매액은 전년 동기 대비 6.9%(1224억원) 증가한 1조8925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특히 지난해엔 전년 대비 8.3%(2730억원)나 늘어난 3조5551억원이 팔려나갔다. 증가율로만 보면 12년 만에 최대치다. 정부는 복권 판매가 증가한 이유로 판매점 증가, 복권에 관한 인식 변화 등을 꼽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박탈감이 복권 판매액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생역전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복권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열심히 살아도 원하는 삶을 살기 어려운 사회구조가 복권을 사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복권에 기대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는 복권 당첨금을 어떻게 사용하겠느냐를 물은 설문조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상반기 로또 1등 당첨자의 60.0%가 당첨금을 주택 구입(30.0%)과 대출금 상환(30. 0%)에 사용하겠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풍토가 노력이 아닌 운에 기대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곽금주 서울대(심리학) 교수는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어지럽다 보니 운에 기대는 한탕주의 심리가 커지고 있다”며 “한번만 이기면 된다는 생각이 강해지면 도덕적 해이, 범죄인식 둔화 등의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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