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안 가결 이후

▲ 한국경제가 사상 처음으로 3년 연속 2%대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컨트롤타워부터 세워야 한다.[사진=뉴시스]

찬성 234 대 반대 56.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국회 의석 분포를 감안하면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적어도 6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당내 비주류 외에도 적지 않은 친박親朴 의원들이 탄핵에 찬성했음이다. 가히 광장의 촛불 민심이 만들어낸 명예혁명이다.

그러나 아직 모든 상황이 끝난 게 아니다. 국정 혼돈을 정리해 나가는 여러 고비 중 하나를 넘겼을 뿐이다. 탄핵안 표결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됐을 뿐 넘어야 할 고개가 한둘이 아니다. 탄핵 국면에 대한 정치적 수습에다 민생경제 및 외교안보 쪽에도 과제가 산적해 있다. 오죽하면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박근혜 대통령과 연루된 스캔들이 한국 경제의 중대 결정 지연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한다”고 경고했을까.

최장 6개월인 헌재의 탄핵 심판까지 국정과 민생의 안정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황교안 총리 겸 대통령권한대행이 이끄는 정부와 야당이 주도권을 쥐게 된 국회와의 협력이 그 여느 때보다 긴요해졌다. 특히 더이상 정치 불안이 경제의 발목을 잡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두달 가까이 경제정책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태에서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울려대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7%에서 2.4%로 낮췄다. 탄핵과 조기 대선 등 정치의 불확실성을 반영하지 않은 게 이 정도다. 한국경제가 사상 처음으로 3년 연속 2%대 성장에 머물게 생겼다.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와 곤욕을 치른 재벌그룹을 포함한 재계는 내년 경영계획을 제대로 못 세우고 있고, 조선ㆍ해운업 등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부지하세월이다.

나라밖 사정도 불길하다. 당장 12월 둘째주에 미국의 금리인상이 예고돼 있다. 그동안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에서 한국과 신흥국에 유입됐던 미국 등 선진국 자금이 빠른 속도로 대거 유출될 수 있다. 자본유출을 완화하려면 우리도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1300조원에 임박하며 임계점에 도달한 가계부채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이미 과잉공급으로 신음을 내기 시작한 주택경기의 급락과 맞물리면 금융위기급 폭탄으로 둔갑할 수 있다.

내년 초 출범할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월가 출신 경제장관들을 앞세워 철저하게 미국 국익우선주의를 내세울 태세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 HAAD) 배치 결정을 빌미로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 제한, 한류를 차단하는 한한령限韓令, 중국에 진출한 롯데 계열사에 대한 세무ㆍ소방 조사 등 전방위 공세를 펴고 있다. 일본도 빠질세라 ‘책임자가 분명하지 않다’며 한일 통화 스와프 협상에 미온적이다.

정치권은 대권 노림수 등 정치적 계산을 멈추고 서둘러 새 경제사령탑부터 세워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 부총리로 내정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한달이 넘도록 인사 청문회 절차조차 밟지 못했다. 다른 인물로 컨트롤타워를 복원해야 한다. 나라 안팎의 위기 상황을 돌파해나갈 리더십과 경제정책에 대한 소신을 겸비해 정치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인물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거국내각 총리를 뽑는 기회를 놓쳤으니 총리 겸 대통령권한대행과 실질적으로 내각을 이끌어갈 경제부총리라도 ‘거국내각 총리급’으로 여야가 합의해 선임하라.

대통령권한대행 체제에서 국정 혼란이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같은 혼돈이 계속되면 경제와 외교 분야 모두 위기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국회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주요 경제ㆍ외교 현안과 정책에 대한 여야정與野政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황교안 권한대행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정치 현안 대신 민생경제 안정에 올인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78%에 이르는 압도적 탄핵 찬성률에도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해 나가겠다”며 야권의 즉각퇴진 요구를 일축했다. 국무위원 간담회 발언대로 진정 국회와 국민의 목소리를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면 퇴진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그나마 국민에게 속죄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 자신 이미 ‘4월 퇴진, 6월 대선’이라는 새누리당의 당론을 받아들이기로 하지 않았던가. 박 대통령과 정치권 모두 촛불 민심이 제시하는 ‘대한민국 정상화’의 길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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