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 근절하려면 …

“정경유착을 막을 수 있는 법을 만들자.” “공직자비리수사처를 만들자”.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론이다. 그런데 반론이 있다. 정경유착을 막을 수 있는 법이 없는가. 공수처를 만들면 비리가 정말 없어질까. 법은 빈틈이 생길 거고, 공수처는 옥상옥이 될 게 뻔하다.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라는 얘기다.

▲ 국회의원들은 재벌 총수들에게 정경유착 의혹을 집중 추궁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 12월 7일, 기묘한 풍경이 국회에서 펼쳐졌다.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고 있는 9명의 대기업 총수가 나란히 앉았다. 이들을 한자리에서 보는 일이 쉽지 않은 탓일까. 영상은 생중계됐고 많은 국민들이 이를 지켜봤다. 이들이 국회에 모인 이유는 이렇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증인.”

9인의 총수는 이 자리에서 정경유착의 주범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거센 질책을 받았다. 미르ㆍK스포츠 재단에 800억원의 자금을 넙죽 기부해서다. 흥미로운 건 이들을 질책하는 사람들의 정체다. 이들 역시 정경유착의 한 축인 ‘정政’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된 풍경이 우리나라에서 정경유착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일지 모른다. 국민들이 이번 청문회를 두고 ‘정치쇼’라고 평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혹이 속시원히 규명되지도 않았다. ‘앞으로 정경유착을 하지 않겠다’ ‘더 열심히 경영하겠다’는 공허한 다짐만 받았을 뿐이다.

이런 다짐은 1988년 일해재단 모금비리 청문회 때도 있었다. 그런다고 정경유착이 없어질 리 없다는 얘기다. 언제든 유착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정치인이 경제인으로부터 받아내는 다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경유착을 끊어낼 수 있을까. 실마리는 이 아이러니한 청문회 현장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하태경 의원(새누리당)이 물었다. “다음 정부에서도 돈 내라고 하면 다 낼 것인가.” 하 의원의 질문에는 입을 맞춘 듯 대가성을 부인하면서도 모금 배경에 정부를 지목한 총수들을 질책하는 뉘앙스가 담겼다. 그러자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읍소했다. “국회에서 입법으로 막아 달라.”

 

실제로 정경유착의 연결고리는 ‘돈’이다. 기업은 원래 국가에 돈을 낸다. 대표적인 게 세금. 법인세를 비롯해 부가가치세, 관세, 종합부동산세, 취득세 등 명목도 많다. 이뿐만이 아니다. 세금이 아닌 영역에서도 낸다. 각종 부담금이나 기부금, 불우이웃돕기 성금, 수재의연금 등이다. 우리는 이를 두고 ‘준조세’라고 한다. 이는 세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눈먼 돈’이 되기 십상이다. 정경유착의 빌미가 되기도 쉽다. 대기업 집단이 최씨가 주도한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막대한 자금을 출연한 것도 일종의 준조세인 셈이다.

물론 이를 막기 위한 아무런 법적 장치가 없는 건 아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에 따르면 공직자는 아예 ‘기부금품 모집’을 할 수 없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공직자의 ‘강요에 의한 출연’이었다는 진술이 나오고 있으니 당장 법 적용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적용 기준이 애매한데다 처벌 수위 역시 약하다.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하다. 처벌을 받는 것도 모집자만 해당한다. 각종 불합리한 부담금의 신설을 억제하기 위한 ‘부담금관리기본법’도 시행 중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걷는 부담금 조항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건데, 처벌 조항이 없다.

전문가들이 음성적인 준조세를 근절하기 위한 ‘준조세 청탁 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공직자가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민간에 청탁하는 경우를 명확히 규정하는 법률이 없다”면서 “김영란법 수준의 강력한 처벌이 담긴 준조세 청탁 금지법이 시행되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ㆍ경제 권력에 대한 철저한 감시도 시급하다. 대표적으로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이 꼽힌다. 이미 우리나라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특히 고위공직자나 대기업의 부정부패사건을 두고 편향적인 수사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현 검찰 권력을 견제할 세력이 없는 탓이기도 하다.

 
성역 없는 수사와 기소를 위해 검찰과는 별개의 독립 수사기구 ‘공수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총장은 “이번 사건만 봐도 검찰은 드러난 사실만으로 당장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었지만 기업의 자금 출연을 ‘선의’로 이해했다”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면죄부를 주는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권력과 돈의 공생관계

법 장치가 촘촘히 있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기업과 정부의 투명한 시스템 구축도 절실하다. 당장 기업은 이권이나 사업을 위한 윤활유로 치부하는 기업 경영의 구태를 끊어야 한다. 윗선의 지시에 따라 공식적인 보고 절차도 없이 정치권에 돈을 내주는 기업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 이사회와 주주들에게 공개적으로 허락받은 정당한 기금만 집행할 수 있도록 내부 규정을 마련하면 간단한 일이다. 사회공헌활동 역시 투명하게 관리해야 오해를 사지 않는다.

정치권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에 손 벌리는 행태를 없애야 한다. 당장 정책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면 기업이 개입할 여지도 없어진다. 이동주 을살리기운동본부 정책국장은 “대기업은 늘 각종 민원이 있고 부패한 권력은 늘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면서 “둘의 이해관계가 자석처럼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강도 높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의지’와 ‘양심’의 문제라는 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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