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아파트의 역설

상반기 최대 호황을 누렸던 주택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각종 지표도 시장 침체를 우려할 정도로 좋지 않다. 무엇보다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고 있다. 투자자들은 눈물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내집마련을 꿈꾸던 서민들에게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폐허에도 때론 꽃이 피는 것과 같은 이치다.

▲ 주택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나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2016년 주택시장은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시장은 호황이었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와 ‘다주택자 규제 완화’ ‘재건축 활성화’ ‘공급조절’ 등 정부의 정책 효과가 이어지면서다. 특히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 오름세가 지속됐다.

하지만 하반기 분위기가 달라졌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정부는 주택담보대출 심사 기준을 강화했다. 원리금 균등상환을 원칙으로 삼고, 소득 심사를 깐깐하게 한 것이다. 그러자 이사철, 신혼부부 내집마련 특수 등으로 매매와 전월세 거래가 활발해져야 할 지금, 시장 지표는 되레 하락했다. 11월 첫째주 서울 아파트 값 상승세는 37주 만에 멈춰 섰다. 과열 양상을 보이던 청약시장은 경쟁률이 반토막났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정책 속에서 시장이 혼란에 빠진 셈이다.

이런 기조는 내년에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내수 경기가 안 좋은 데다 ‘금리인상’ ‘공급과잉’ 등 리스크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적 불확실성도 더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탄핵 또는 퇴진으로 조기 대선이 점쳐지고 있어서다. 정치권은 부동산 규제를 강화하는 공약을 앞다퉈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내집 마련’을 꿈꾸던 이들은 한숨만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수요자라면 고개를 들어도 된다. 노려볼 만한 상품이 있어서다.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새 집, 바로 미분양 아파트다.

 

먼저 미분양 아파트 물량 수치를 보자.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2014년 4만호에서 지난해 6만2000호로 크게 늘어났다. 올해는 10월 기준으로 5만8000호를 기록 중이다. 이 수치는 더 증가할 공산이 크다. 내년이면 역대 최대 물량의 새 아파트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입주 물량을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합해 32만1886가구, 내년엔 41만5586가구로 예상했다.

지방에만 미분양 물량이 몰리는 것도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에도 ‘공급 과잉’ 적신호가 켜졌다. 이미 수도권 청약조정 대상 지역에선 2주택 이상 보유자들의 1순위 청약을 막으면서 청약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점점 늘어나는 미분양 물량

실제로 중흥건설이 12월 동탄2신도시 A35블록에 분양한 ‘중흥 S클래스’는 435가구 모집에 1순위에서 759명만 청약하는 데 그쳤다.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면서 투자수요가 대거 이탈한 결과다.

서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서대문구에 공급된 ‘연희파크 푸르지오’는 서울 도심권에서 공급된 아파트임에도 112.8㎡(약 33평)가 1순위에서 미달해 2순위로 넘어갔다.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 서울대입구’와 삼성물산의 성북구 석관동 ‘래미안아트리치’도 1순위 마감은 했지만 청약률은 5대1 안팎이다. ‘공급과잉’ 적신호가 켜졌다는 얘기다. 청약률이 떨어지고 집값이 약세를 보이면 미분양의 공포가 고개를 들게 마련이다.

이런 미분양 아파트는 반대로 실수요자들의 내집마련 대안이 될 수 있다. 건설사들이 중도금 무이자와 무상 옵션 등 할인혜택을 앞세워 입주자에게 손짓하고 있어서다. 청약 기간이 끝나고 남은 가구수를 팔기 때문에 동과 호수를 주택구입자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청약 통장도 필요 없다. 순위 내 단지를 마감한 곳에서도 물량이 왕왕 나온다. 청약 당첨자 확인 과정에서 자격 미달이거나 기재를 잘못해 부적격자가 발생해서다.

 
입주 시기가 다가올수록 건설사들의 마음만 급하다. 미분양 아파트를 털기 위해 혜택을 늘린다. 분양 당시 유상으로 제공하던 발코니 확장 등을 무상으로 돌리는 식이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들어서는 ‘광교상현 꿈에그린’의 경우 미분양 가구를 대상으로 중도금 무이자를 제공하고 있다.

개발호재나 교통입지가 좋은 미분양 아파트의 경우 웃돈도 기대할 수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공급된 ‘반포래미안아이파크’가 대표적이다. 미분양으로 수개월간 고전하다 웃돈을 얹어야 살수 있는 단지로 전세가 역전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이 단지는 11월 84㎡(약 24평) 33층이 15억4000만원에 거래돼 분양가 14억9400만원보다 5000만원이 뛰었다.

가격 싼 만큼 리스크 있어

김포시 감정동에 분양한 한강센트럴자이 1차는 순위내 마감에 실패해 선착순 분양으로 전환했다. 3497가구를 모두 팔기까지는 7개월이 걸렸다. 내년 1월 입주를 앞둔 이 단지는 전용면적 70㎡(약 21평)가 3억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분양가인 2억8884만원과 견줘 1000만원 넘게 올랐다. 특히 1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는 거래량이 많기 때문에 손바뀜이 잦아 가격이 오를 여지가 있다.

물론 가격이 저렴한 만큼 리스크는 있다. 무엇보다 제값을 주고 분양을 받은 입주민들과의 형평성 문제로 갈등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건설사와의 소송뿐만 아니라 이웃 공동체마저 산산조각내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집값 하락으로 담보가치가 떨어지면 은행이 금리를 올리거나 원금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 2002cta@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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