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부산행 ❶

역대 흥행 9위. 1100만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 ‘부산행’은 감독도, 장르도 낯선 영화다. ‘연상호’라는 낯선 이름의 감독은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좀비 영화를 들고 나와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1000만이 넘는 관객들은 이 생소한 감독의 생소한 영화를 왜 찾게 된 걸까?

▲ 부도덕한 작전을 걸어 살려놓은 유성바이오에서 시작된 재앙은 석우 본인의 가정까지 덮친다.[사진=뉴시스포토]
영화 ‘부산행’에는 관절을 꺾어가며 질주하는 최강의 한국형 좀비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우리나라 대개의 대형 재난이 그러하듯 ‘부산행’의 좀비 환란은 인재人災에 가깝다.

영화는 경남 진양에서의 구제역 방역 장면으로 시작한다. 꽤 잘나가는 펀드매니저 석우(공유)는 ‘진양 저수지, 의문의 물고기 폐사’라는 기사를 접하고도 무덤덤하다. 현장 방역 요원도 딴 세상 이야기하듯 심드렁하게 말한다. “바이오단지에서 뭐가 찔끔 샜다네요.” 바이오단지의 ‘유성바이오’라는 회사의 사고였건 아니면 그것이 고의였건 어쨌든 찔끔 새어나온 무엇인가가 한국형 좀비를 탄생시킨다.

‘유성바이오’는 석우가 ‘작전’을 걸어 살린 기업이다. 석우와 함께 ‘유성바이오 작전’에 참가했던 김 대리는 죄책감에 안절부절못하지만 석우는 노련한 펀드매니저답게 평정심을 유지한다. 우리의 노련한 현장 실무자들은 사고가 터지면 우선 시치미를 떼고 “몰랐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초기 대응 매뉴얼을 따르고, 피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리면 남에게 책임을 돌리는 필살기를 동원한다. 그 정도 내공은 갖춰야 자기 분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석우의 한국적 대응 매뉴얼이 작동하는 사이 좀비 바이러스는 급속도로 확산된다.

석우가 부도덕한 작전을 걸어 살려놓은 유성바이오에서 시작된 재앙은 석우 본인의 가정까지 덮친다. 석우가 외동딸을 데리고 탄 부산행 KTX로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자가 뛰어든 거다. 부산행 열차는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한다. 좀비 바이러스는 잠복기간도 없어 물리는 즉시 좀비로 변한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물어댄다.

똑같이 피에 굶주렸지만 좀비는 고전적인 드라큘라처럼 특정 관계인만 선별적이고 제한적으로 그리고 은밀하고 젠틀하게 물지 않는다. 드라큘라처럼 절제된 ‘식사’를 마치면 관 속에 들어가 얌전히 잠들지도 않는다. 좀비들은 포만감을 느끼지 못한다. 잠도 안 자고 눈에 띄는 대로 닥치는 대로 대량으로 물어뜯는다. 시간당 100명이라도 물어뜯는다. 좀비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는 가히 가공할 만하다.

▲ '익명성' 뒤에 숨은 21세기 좀비들은 행동에 제약이 없다.[사진=아이클릭아트]
‘부산행’의 좀비들은 관절을 꺾어가며 열차 안팎을 쓰나미처럼 몰려다니며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물어재낀다. 그런 좀비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인터넷 시대의 공포를 느낀다. 인터넷 시대에 모든 정보는 무차별적으로 그리고 대량으로 유통되고 소비된다. 안타깝게도 악성정보일수록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인터넷을 점령하고 빠르게 전파된다.

중세시대 드라큘라는 그 전염성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21세기 좀비의 전염성은 차원이 다르다. 과거에는 괴담이나 악성루머가 전국에 확산되려면 족히 몇년이 걸렸다. 게다가 검증을 통해 자연 소멸할 시간적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최첨단 정보화 시대의 괴담과 악성루머는 좀비의 쓰나미처럼 감당이 안 된다. 1시간 내에 수십, 수백만 명을 감염시킬 수도 있다. 동시에 감염된 수십만 명이 동시에 특정인을 향해 달려들기도 한다.

좀비가 드라큘라보다 무서운 건 제약이 없다는 거다. 중세 드라큘라 백작은 알려진 존재인 만큼 아무리 피에 굶주려도 행동에 제약이 따랐다. 하지만 21세기 좀비군群은 ‘익명’의 존재들이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다. 21세기 인터넷 시대는 그야말로 좀비의 시대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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