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비만 Exit | 살과 사랑 이야기

▲ 술을 끊으면 사소하 실수를 범할 확률이 줄어든다.[사진=아이클릭아트]
누군가는 술을 ‘주머니를 비움으로 가난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초래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또한 첫 잔과 달리 마지막 잔을 비울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바보의 혀와 악한 입술을 갖게 만들어 시비를 불러온다고 평가했다. 누군가는 ‘적당히’와 ‘인간관계의 윤활제’라는 명분을 내세워 음주를 정당화하지만, 주머니를 비우는 것도, 건강한 자를 병들게 하는 것도 결국 술이다. 세상 더러움의 자국을 남기듯, 술을 마시고 혼미한 정신에 실수를 남기는 것도 흔한 일이다.

필자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자랑하는 3가지가 있는데, 가기 싫었던 군대를 다녀온 게 그중 으뜸이요, 장가를 간 것과 술을 끊은 것이 둘, 셋이다. 술 끊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술 탓에 실수를 범할 확률이 커지게 마련이라서다.

얼마 전 마포의 허름한 순댓국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젊은 친구의 얼굴이 대낮부터 붉게 문들었다. 식당을 전세낸 양 친구들과 떠들어 대는데 간헐적으로 요상한 웃음을 짓는다. 그 친구들이 정면에 앉았다면 자연스럽게 쳐다보면 되는데, 등 뒤에 앉았으니 큰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불쾌함을 표하기 위해 뒤를 돌아봐야 한다.

홀에서 밥을 먹는 이들의 표정이 모두 좋지 않다. 술을 몰아 먹었는지, 또는 몰아 먹였는지, 셋 중 유독 한명만 그 모양이다. 벽 전면의 TV에서는 최순실 뉴스가, 홀에는 그 친구의 웃음소리가 흘러넘친다. 요상한 웃음의 주인공은 의자 위에 신발을 벗고 고양이처럼 올라앉아 무릎에 깍지를 끼고 있다. 술을 먹고 난 후에도 변하지 않은 자신의 균형 감각을 뽐내듯 말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생각처럼 순탄한 것이 아니다. 이내 “쿵”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바닥에 쓰러졌다.

열상을 입은 머리에서 순식간에 피가 흐르는데 고통도 모르는 듯, 지혈하는 친구들을 오히려 제지하며 소리를 지른다. 순댓국을 먹다 피를 보게 된 손님 중 일부는 먹는 둥 마는 둥 계산을 한다. 주인은 돈 받으랴 119에 신고를 하랴 바쁘다. 목불인견의 소란이 등 뒤에서 벌어지는 것이 불편해 앞자리로 옮겼는데 눈앞의 상황은 그야말로 엉망이다. 묵묵히 그 모습을 보며 금주 8년 차인 필자는 생각에 잠긴다.

과거 술을 즐기던 필자는 힘듦을 술로 풀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질 뿐이었다. 술을 일상처럼 즐기며 완벽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 젊은이 역시 마찬가지로 힘든 일이 있었겠지. 잠시 후 119가 도착하자 사태를 깨달은 듯 얌전해진 만취자는 순순히 구급차에 오른다. 마침 TV에서는 최순실이 검찰 마크가 선명한 휠체어를 탄 모습이 방영된다. 국정을 농단해 국민을 유린한 자, 술주정을 부린 자, 이래저래 국가는 소란을 피운 자들을 처리하느라 분주하다.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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