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

박성민(52)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보수는 전통적 의미의 국가와 시장이 작동할 때까지 존재 의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트리클다운 효과가 소멸하고 돈, 정보 등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국경이 의미를 잃은 오늘날 보수는 보수란 말을 용도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징벌권과 징세권을 배타적으로 행사하던 시대는 이미 저물었습니다.”

▲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헌재의 탄핵심판은 야권이 기대하는 것만큼 빨리 결론이 안 날 가능성도 있지만, 3월 13일 전에는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세대와 계층이 한국 정치의 핵심 변수입니다. 지역ㆍ이념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대립구조는 이미 무너졌어요. 광장 정치의 주인공은 10대~30대입니다.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지역ㆍ이념 지형의 붕괴는 가속화할 거에요.”

「정치의 몰락-보수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권력의 탄생」을 쓴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한국사회의 이념 지형에 대해 세대와 계층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다고 말했다. 보수세력은 보수라는 말을 버려야 한다는 그를 만나 정국 전망 등에 대해 들어봤다.

✚ 헌법재판소가 이번에 어떤 결정을 내릴 거로 보나요?
“법리적인 논리의 영역을 넘어섰습니다. 국민은 유일한 헌법 제정 권력입니다. 이른바 헌법기관에 권한을 부여하는 근원적인 힘이죠. 우리 헌법에 권력이라는 말이 단 한번 등장하는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제1조 2항입니다. 국민이 자질 없는 대통령에게 선거를 통해 앞서 위임한 권력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국회가 탄핵소추로 그 요구를 받든 거고, 헌재도 마땅히 그래야죠. 헌재가 주권자의 요구를 거스를 수는 없을 거예요. 헌재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 대통령 탄핵 찬성 여론이 78%였고, 탄핵소추에 찬성표를 던진 국회의원 비율이 78%입니다. 공교롭게도 12년 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 여론도 78%였습니다. 우연치고는 참 공교롭습니다.
“78%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것 자체는 우연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75%, 즉 4분의 3이 결정하는 민주주의라고 봅니다. 한국인은 51 대 49에 승복하지 않고 6 대 4로 기울어도 잘 승복하지 않아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둘러싼 진통이 좋은 예죠. 국회 다수당이더라도 의석 수가 180석(300석의 60%)에 미달하면 예산안을 제외한 법안을 강행 처리하지 못하도록 한 국회선진화법 180석 조항도 6 대 4에 해당하는 케이스죠. 탄핵과 개헌의 의결 정족수 66 대 34, 즉 3분의 2 찬성은 이렇게 볼 때 압도적인 우세입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두명이 짜장면을 먹자고 하는데 나머지 한명이 꼭 김치찌개를 먹어야겠다고 하면 쉽게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4분의 3이 되면 반대자들도 못 버팁니다. 금융실명제 찬성 여론이 75%였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찬성률은 20% 선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소수자들 목소리가 잦아들었죠. 75%는 말하자면 한국에서 반대파가 승복하는 지점입니다. 한국에서의 절대다수라고 할 수 있죠.”

✚ 헌재의 구성과 관련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 문제도 뛰어넘을 거로 봅니다. 법적으로 유무죄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파면하는 겁니다. 다만 대통령이 혐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절차를 지키고 반론권을 충분히 보장해 줘야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더라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야권이 기대하는 것만큼 빨리 결론이 안 날 수 있다고 봅니다. 내년 1월까지 심판하는 건 물리적으로 쉽지 않고 특검이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한다면 수사를 마치는 2월 말 이후, 1월 박한철 헌재소장에 이어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전에 결론이 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대통령의 적극적인 소명 의지가 관건이죠.”

헌재 구성 문제를 뛰어넘을 것

✚ 촛불 민심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현 상황을 이른바 시민혁명으로 볼 수 있나요?
“시민혁명이란 공화정에 대한 요구입니다. 권력자가 곧 법 자체인 왕정의 반대죠. 반면 법이 왕인 법치주의 및 죄형법정주의는 법에 의하지 않고는 타인의 재산을 빼앗거나 인신을 구속하지 말라는 겁니다. 왕의 힘을 약화시킨 것이 말하자면 혁명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시민혁명의 과정에서는 늘 반동이 따릅니다. 또 구체제-앙시앙 레짐이 청산되고 신체제가 성립해야 비로소 혁명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죠. 일본의 메이지유신도 도쿠가와 막부가 천황에게 권력을 돌려준 1867년 대정봉환大政奉還이 정점이지만 이를 전후해 20여 년이 걸린 혁명입니다.”

한국 국민은 1960년 4ㆍ19혁명을 일으켜 독재자 이승만 대통령을 몰아낸 후 5ㆍ16 쿠데타라는 반동을 만나 어두운 밤을 보내야 했다. 1979년 10ㆍ26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거했지만 12ㆍ12 쿠데타가 덮쳐 더 짙은 어둠에 휩싸였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항복을 받아냈지만 이번엔 전두환과 더불어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노태우 장군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다. 박 대표는 이문열 작가가 1998년 외환위기 후 내놓은 단편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지금의 미명이 새로운 시대의 전야일 수도 있지만 청산하지 못한 어둠의 시대의 끝자락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87년 우리 국민은 쿠데타와 혁명을 동시에 폐기처분했고 이때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 시민혁명이 시작됐죠. 87년 체제는 청산 대상이라기보다 진행 중인 변혁이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우리 사회의 갈등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다당제로 가야 돼요. 양극화가 너무 심하고 약자들을 대변할 만한 정당도 정치인도 없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시민이야말로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혁명은 진행돼야 합니다. 바로 진정한 공화주의죠. 사실 공무원과 군인에 대한 문민 통제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민주주의는 완성품이 아닙니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그 과정에서 반동이나 좌초가 있을 수도 있어요.”

✚ 이 시대의 앙시앙 레짐은 무엇인가요?
“기득권 카르텔 집단이죠.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권력집단, 고위 관료들, 재벌, 검찰ㆍ법원ㆍ로펌을 포괄하는 법조계, 유력 언론기업 등은 이익동맹을 맺고 국가의 공적 기능을 무력화했습니다. 공공公共은 퍼블릭과 리퍼블릭으로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하고 개인보다 공동체를 위하는 건데 이 카르텔은 국가의 공적 시스템을 사유화해 특정인과 특정 기업의 이익을 챙겨줬습니다. 공화에 반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은 이들이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나라가 돼 버렸어요. 한마디로 ‘내부자들’의 ‘부당거래’가 성행했습니다. 부당거래로 얻는 이익이 너무 컸기 때문이죠. 삼성을 예로 들면 이병철ㆍ이건희 시대보다 이재용 시대에 더 질 안 좋은 부당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게임 체인저가 나타나면서 이 카르텔에 균열이 시작됐습니다. 1차 게임 체인저는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지난 총선입니다. 만일 과반을 확보했다면 카르텔이 안 깨졌을 거예요. 2차 게임 체인저가 바로 탄핵입니다.”

그는 검찰이 검찰답게, 언론이 언론답게 지금 저마다 할 일을 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재벌과 마주앉아 부당거래를 해왔다고 말했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그럼 어떻게 보나요?
“나심 탈레브가 말하는 블랙 스완입니다. 그는 블랙 스완의 예로 9ㆍ11, 월가 붕괴를 들었죠. 다만 블랙 스완의 해석에 대해서 저는 탈레브보다 ‘일상적 사건의 극단적 결과’라는 제임스 리카즈(「통화전쟁」의 저자)의 입장을 받아들입니다. 무당의 딸, 호스트바, 비아그라, 태반주사 같은 말이 튀어나와 더 충격적이었을 뿐 비선 실세의 발호, 기업 갈취, 이권 개입, 인사 청탁 등은 한국 정치에서 익숙한 풍경입니다.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는 대통령, 장관, 청와대 수석, 대학 총장 및 교수 등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모두 포획됐고 이 법이 금지한 모든 범죄를 망라했죠.”

✚ 정치권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앙시앙 레짐의 수혜자들이라고 보나요?
“박정희와 그 안티 테제인 김대중 및 김영삼 이들 라이벌의 정치적 후예들이 양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다 해당한다고 봅니다. 탄핵 당한 박정희의 딸, 김대중의 정치적 아들 박지원, 김영삼의 정치적 아들 김무성 등이죠. 탄핵은 어쩌면 이들이 자신들을 살라 피운 마지막 화려한 불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 이 시대 개혁의 주요 의제가 무엇이라고 보나요?
“김영란법은 우리의 접대 문화 자체를 앙시앙 레짐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치 문화 전반이 개혁 대상이라고 볼 수 있죠.”

이 시대 앙시앙 레짐은 기득권 카르텔

✚ 이런 정치 개혁이 성공하는 필요조건은 무엇인가요?
“개혁의 대상과 목표를 뚜렷이 하고, 개혁 주체 세력이 제대로 형성돼야 합니다. 개혁의 전략도 필요합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은 20대~30대 그룹이 주도했고, 누구의 피도 흘리지 않는다는 전략이 있었죠.”

그는 20대 총선, 탄핵을 이을 3차 게임 체인저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사람들 간의 동맹이죠. 그 주역이 문재인일지, 안철수이거나 유승민일지는, 글쎄 모르겠습니다.”

✚ 평화적으로 치러지는 촛불집회는 어떻게 보나요?
“자칫 폭력이 부를 수 있는 반동에 대한 우려보다 평화적 전망이 우세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 유력한 보수 일간지는 오래 전 1면에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썼습니다. 평화적 전망과 더불어 암묵적인 컨센서스가 있었어요. 검찰이 대통령을 피의자인 최순실의 공범으로 명시한 것도 이런 암묵적 합의를 반영하는 것이죠.”

▲ 박성민 대표는 “시장에서 트리클다운 효과가 소멸하고 돈, 정보 등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국경이 의미를 잃은 오늘날 보수는 보수란 말을 용도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사진=천막사진관]
✚ 우리 사회의 정치적인 편견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대통령제는 보편적인 정치체제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는 내각제가 보편적이죠. 대통령제에서 국회는 대통령을 견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새누리당은 대통령 수발이나 들고 있어요. 또 다수결만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만장일치제도 있고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방식도 있어요.”

✚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이른바 반문연대의 중심에 설 수 있을까요?
“문재인보다는 젊은 후보라야 하지 않을까요? 궁여지책 내지는 고육지책격인 대안이라고 봅니다. 이런 카드로는 이길 수 없어요.”

✚ 이재명 성남시장이 과거 잠재적 후보 시절의 노무현처럼 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검정고시 출신의 아웃사이더로 정의당 후보의 역할 공간을 잠식하고 있다고 봅니다. 과거 기성 정치권을 흔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은 아웃사이더로 이회창 전 총리, 노무현 전 대통령,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 등이 있습니다. 안 전 대표는 아웃사이더로 정계에 입문해 정치를 배우고 있는데 진정성은 있지만 삼당합당을 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말을 바꾸고 신한국당을 택한 이회창 총리 같은 뻔뻔스러움이 부족하죠.”

✚ 개헌론은 어떻게 보나요?
“정파 간에 합의할 수 있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 황교안 권한대행의 역할 공간이 있다고 보나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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