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독감에 걸린 사회

▲ 사상 최악의 AI 사태는 방역 컨트롤타워 부재와 늑장 대응이 부른 인재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에도 골든타임을 놓쳤다.[사진=뉴시스]

유달리 큰일이 많았던 2016년이 사상 최악의 양대 독감과 함께 저물고 있다. 독감이 청소년들에게 급속도로 퍼지자 일부 학교가 조기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전국에 확산하면서 살처분된 닭과 오리가 3000만 마리에 육박하고 계란파동이 일고 있다. 이런 확산세라면 5000만 마리가 살처분될 것이란 예상까지 나온다. 오죽하면 비행기로 생계란을 긴급 수입하자는 대책이 나왔을까.

한국인에게 닭과 계란은 값싸게 먹히는 단백질 공급원이자 핵심 식품원이다. 특히 국민 1인당 연간 280개를 먹는 계란은 식품 그 이상이다. 수급이 부족한 계란 절벽은 빵과 과자, 가공식품 등의 가격인상으로 연결된다. 가계의 식료품 지출 비용이 급증하면서 연말연시 소비심리에 영향을 미치고, 수많은 음식점의 영업까지 망친다. 소비심리 냉각과 음식점 자영업자의 경영난은 내수를 위축시키고, 기업인들의 경제하는 마음까지 상하게 한다.

사상 최악의 이번 AI 확산은 방역 컨트롤타워 부재와 부실 늑장 대응이 부른 인재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박근혜 정부는 골든타임을 외쳤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골든타임을 놓친 채 허둥댔다. 비슷한 시기에 AI가 발생했지만 살처분이 100만 마리 정도에 그친 일본과 대비된다.

한국과 일본의 AI 대응은 발병 첫날부터 달랐다. 일본은 지난 11월 말 AI 확진 판정이 나오자 두시간만인 밤 11시 총리 관저에 ‘AI 정보 연락실’을 설치했다. 아베 총리의 철저 방역 지시가 심야에 각 부처에 시달됐다. 이튿날 새벽 4시 자위대가 투입돼 방역과 살처분 작업을 했고, 오전 9시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어 범정부 대책을 협의했다. 이 모든 조치가 12시간 안에 이뤄졌다.

한국에서 정부 차원 대책회의가 열린 것은 AI 발생 후 이틀이 지나서였고, 농림축산식품부에 대책반을 꾸렸다. 가금류 차량ㆍ인력에 대한 이동중지 명령은 그 사흘 뒤 나왔고, 일주일 뒤에야 위기 경보를 ‘경계’로 올렸다. 최고 단계인 ‘심각’ 경보를 발령한 것은 살처분 가금류가 1600만 마리를 넘어선 발병 한달 뒤였다. 살처분 인력이 부족하자 농식품부가 요청한 군 병력 투입을 국방부는 거절했다.

 

지방자치단체와 축산농가, 양계산업 종사자들의 적당주의도 문제다. AI가 한창 번진 초기 한 달 동안 전국 87%의 농장에서 겨울철 낮은 온도에선 효력이 떨어지는 엉터리 소독제를 썼다. 어떤 지자체는 서류상으로만 방역본부를 설치하고 실제론 운영하지 않았다. 계란 운반 차량이 농장 안까지 들어가거나 작업자가 방역복을 입지 않은 채 계란을 나르며 방역수칙을 어기는 행태도 여전하다.

제발 대충주의에서 벗어나자. 2003년 국내에서 AI가 발생한 뒤 13년이 지났다. 지난해까지 다섯차례 발생한 AI 방역에 620 0억원이 넘는 정부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도, 학계도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축산 전문직군을 두고, 발병 단계별 로드맵을 정비하고, 범정부적 컨트롤타워 지휘 아래 확실하게 실행해야 한다.

계란은 60% 이상이 농가에서 수집판매상을 거쳐 유통된다. 일부 수집판매상들이 싼값에 대량 사재기한 뒤 바로 시장에 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사재기와 가격담합 등 불공정행위를 철저하게 단속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 독감과 AI가 이렇게 창궐하기까지 정부는 뭘 했나. 감염병은 근원적으로 막기는 어려워도 적절한 예방과 사후 조치로 전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 맥주ㆍ라면 등 생필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는 판에 계란프라이 하나 붙여먹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오래 가선 안 된다. 2017년은 닭띠 해다. 정유년丁酉年이 본격 개시되는 설 이전에 AI를 종식시켜야 할 것이다. 황교안 총리가 직접 챙기고, 농식품부가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 국회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자질 논란을 빚었던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은 지금부터라도 존재 의미를 보여주라.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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