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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에 지친 그대여! 인형 뽑아라뽑기방 열풍의 슬픈 비밀
[221호] 2016년 12월 27일 (화) 08:40:43
김다린 기자 quill@thescoop.co.kr

1000원짜리 지폐를 넣는다. 값비싼 인형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두번이나 주어진다. 요령만 있다면 인형을 금방 뽑을 수 있다. 스트레스 해소에 제격이다. 인형뽑기 가게가 열풍을 일으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원인이 그뿐이랴. 불평등에 지친 청년들이 ‘뽑기’를 통해 작지만 공정한 즐거움을 찾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 인형뽑기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사진=뉴시스]
불평등에 지친 그대여! 인형 뽑아라

서울 소재의 한 대학에 다니는 김재원(21)씨. 김씨는 그냥 집에 들어가는 법이 없다. 그의 발걸음을 잡는 건 33㎡(약 10평) 남짓한 작은 인형뽑기 가게. 10여대의 인형뽑기 기계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김씨의 눈빛이 달라진다. 먼저 좁은 가게를 한바퀴 돌면서 오늘 뽑을 인형을 고른다. 배출구와 최대한 가까운 인형들이 주요 타깃. 단순히 가깝다고 해서 인형을 들어 올릴 행운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대한 많은 접촉 면적을 집거나, 단단히 고정할 수 있는 부분을 집는 것이 중요하다. 어제는 인터넷 방송으로 특별한 팁까지 배워왔다. 요령이 생긴 덕인지 4번에 1번꼴로 인형을 들어올린다. 못해도 5000원은 훌쩍 넘는 인형을 2000원이면 얻게 되니 뭔가 ‘성공’한 기분이다. 김씨는 “인형뽑기를 할 때는 손해보지 않는 기분이 든다”고 곱씹는다. 자취 생활도, 취업 준비도 쉽지 않은 김씨에게 인형뽑기는 유일한 낙이 됐다.


   
 
인형뽑기 가게가 열풍이다.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7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던 2009년에도 반짝 인기를 누렸던 ‘놀거리’라 낯설지만은 않다. 그런데 요새 인형뽑기의 유행은 과거와 분위기가 다르다. 아예 인형뽑기 기계만 모은 ‘뽑기방’이 생겼을 정도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1월 기준 전국의 인형뽑기 가게는 415개에 이른다. 올해 초부터 ‘뽑기방’이라는 명목으로 집계가 시작됐다. 8월만 해도 뽑기방은 108개에 불과했는데, 3개월 사이에 4배 가까이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인근 업주들 사이에 ‘자고 일어나면 뽑기방이 생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집계되지 않은 가게까지 포함하면 수천개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대학가 주변에서는 이런 뽑기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연남동 일대에는 10여개나 밀집해 있다. 최근에는 직장인들의 회식 상권까지 퍼지고 있다. 눈만 뜨면 새로운 가게가 생겨날 정도다. 방문하는 연령대도 다양하다. 10대 청소년들부터 20대 대학생, 30~40대 직장인, 외국인까지 인형뽑기 가게를 찾는다.

사람들이 인형뽑기 가게를 찾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적은 돈으로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서다. 단돈 1000원으로는 커피전문점에서 커피 한잔도 살 수 없지만, 뽑기방에서는 2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는 인형뽑기가 대표적인 ‘불황 사업’으로 꼽히는 이유다. 불황이 길어지면 적은 돈으로도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업종에 사람이 몰리기 때문이다.

   
 
창업자 입장에서 큰돈을 들이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33㎡ 규모에 기계 10대가량을 넣으면 개업 완료다. 대당 250만원씩 하는 기계도 큰 부담이 아니다. 보증금 500만원이면 최대 10대의 기계를 빌릴 수 있다. 인테리어에도 큰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 인건비도 없다. 청소년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관리자가 꼭 있어야 하는 밤 10시부터 12시만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된다. 그외 시간에는 동전교환기만 둔 채 무인으로 운영하는 가게가 많다.

인형뽑기 가게가 급증하는 이유는 또 있다. 심리상담연구소 함께의 김태형 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과거 인형뽑기 가게 열풍을 주도했던 지역은 신림동이었다. 당시 신림동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공무원 시험은 ‘공평하게 취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시험에 학벌과 배경이 크게 작용하지 않아서다.

오직 성적순으로만 합격과 불합격을 판단한다. 공무원 시험을 보는 이들이 인형뽑기 열풍에 휩쓸렸던 건 인형뽑기와 고시를 동일시하는 심리 상태가 조성됐던 게 아닐까. 외부의 개입 없는 공정한 결과를 원하고 있었다는 거다.” 뽑기방 열풍의 원인을 ‘불평등’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거다.
 
공정함 바라는 심리도 있어


뽑기방을 주로 즐기는 젊은 세대를 보자. 이들이 최근 가장 많이 쓴 신조어로는 ‘금수저(좋은 가정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 ‘헬조선(대한민국의 여러 상황이 지옥과 같다)’ ‘N포세대(여러가지를 포기하는 청년세대)’가 꼽힌다. 이 신조어들이 가리키는 건 ‘한국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명제다. 여기에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로 민낯을 드러낸 기득권층의 세습과 부정부패가 얹어졌다.

김 소장은 “인형뽑기는 로또와 달리 성공 확률이 낮지 않아 이용자들에게 ‘하면 된다’라는 성취감을 준다”면서 “결국 인형뽑기 가게 열풍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사회’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심리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자고 일어나면 생겨나는 인형뽑기 가게에 우리나라의 불평등이 숨어있었다는 얘기다. 
김다린 ·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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