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신세계 오픈한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정유경(44)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이 입사 20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에  얼굴을 드러냈다. 12월 15일 대구신세계 오픈식장에서였다. 뜻밖의 공개 행보에 재계의 시선이 쏠렸고 언론의 관심도 높았다. 한국 재계에서 보기 드문 ‘은둔 경영자’로 불렸던 그가 무슨 생각으로 대중들 앞에 얼굴을 나타냈을까.

▲ 정유경 사장의 콘셉트는 ‘섬세한 유통채널’로 요악할 수 있다.[사진=신세계 제공]
2016년 연말을 눈앞에 둔 15일, 재계의 눈길을 끈 일 하나가 대구에서 일어났다. 이날 오전 열린 대구신세계 그랜드 오픈식에 정유경 총괄사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 8800억원 상당을 들여 야심차게 지은 복합쇼핑몰 개장식에 오너 CEO가 참석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왜 ‘참석 자체’가 이토록 화제가 됐을까. 입사 20년 만에 처음으로 회사 공식 행사에 얼굴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는 1996년 조선호텔 마케팅담당 상무보(당시 24세)로 입사한 이래 도무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 재계에서 보기 드문 ‘은둔의 경영자’ ‘소리 없는 CEO’로 불렸다. 이런 스타일은 외할아버지 이병철 삼성 회장 밑에서 조용하게 경영수업을 받았던 어머니 이명희(73) 신세계 회장과 닮았다는 얘기가 많다. 겉으로 나타나지 않은 채 경영 일반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오너로서 경영의 큰 틀과 사업 방향만 묵묵히 제시해온 것이다. 

이런 공개 행보는 상무ㆍ부사장 시절은 물론 지난해 연말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자리에 오른 이후로도 처음이었다. 이 때문에 여러 가지 설왕설래說往說來를 낳았다. 그 중 하나가 지난 연말부터 가시화된 신세계그룹의 ‘정용진ㆍ정유경 남매 분리경영’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빠 정용진(48) 부회장이 관장하는 이마트부문과 함께 신세계그룹의 양대 축인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을 그가 맡은 지도 1년이 다 됐다. 그런 만큼 이번 기회에 신세계그룹 승계자의 한 사람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와 대조적으로 정용진 부회장은 활발한 대외활동과 대중들과의 소통을 통해 연예인급 인기를 누려 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가 대구신세계 공식 오픈 이틀 후인 12월 17일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반포 센트럴시티점)까지 따낸 만큼 앞으로 더욱 자신감을 갖고 공개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성향으로 봐서 자주는 못 나타나도 예전처럼 은둔만 하지는 않을 거란 전망이다. 언론들도 반색하며 앞다퉈 그의 공개 행보를 다뤘다. “20년 은둔 경영자 꼬리표 떼나” “소리 없는 경영자 20년 만에 공식석상에” “20년 만에 공식 무대, 경영 보폭 넓혀” “그림자 경영 벗고 경영 시험대에” “20년 만에 홀로 선 리틀 ‘이명희’” “경영 전면 나서 남매 경쟁 불붙나” “화장품 앞세워 대구 재도전” 등등의 제목을 달았다.   

이날 그는 테이프 커팅식 등 공식 행사에 참석한 후 경영진과 함께 백화점 곳곳을 둘러봤다. 매장은 물론 아쿠아리움, 테마파크 등도 살펴봤다. 자신의 의중과 구상이 고스란히 담긴 화장품 편집숍 ‘시코르’에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테이프 커팅식에는 권영진 대구시장, 류규하 대구광역시의회 의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이 참석해 대구ㆍ경북지역 주민들의 기대를 반영한 듯했다. 대구신세계가 지역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국내 정상급 쇼핑문화도 즐기게 해 줄 거란 기대다. 이를 의식한 듯 정 총괄사장은 개장식에서 “현지법인으로 출발하는 대구신세계가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신세계는 대구와 특별하고도 아픈 인연을 갖고 있다. 신세계의 모기업인 삼성그룹 탄생지가 대구인데도 신세계는 40년 전 대구에서 실패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1973년 당시 삼성그룹 계열 신세계백화점은 대구 동성로에 점포를 차렸다.

입사 20년 만에 얼굴 드러내

하지만 3년 만인 1976년 문을 닫고 물러났다. 따라서 이번 개장은 40년 만의 재도전을 의미한다. 2000년 전후까지만 해도 대구 아닌 다른 지역 출신 대형 유통업체들은 대구백화점 등 토종 유통업체들에 맥을 못 췄다. 이 지역의 독특한 보수성ㆍ배타성 때문으로 풀이됐다. 심지어 당시 이런 얘기마저 있었다. “대구에 점포를 차린 서울 유통업체들은 영업이 끝나기 무섭게 옥상으로 헬기를 불러 그날 번 대구 현금을 몽땅 서울로 보내 버린다. 곤란하다.”

이번 대구신세계 오픈과 성공을 위해 정 총괄사장이 무척 공을 들인 느낌이 역력하다. 자신이 주도한 백화점이라 곧바로 평가를 받는데다 40년 전 실패도 만회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구신세계는 입지가 좋고 규모가 엄청나다. 대구 교통요지인 동대구역 복합 환승센터에 건립돼 쇼핑에서 레저ㆍ문화까지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복합 쇼핑ㆍ문화 공간이다. 동대구 복합 환승센터는 교통과 상업시설을 결합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2020년 이용객이 하루 평균 15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이점 때문에 대구ㆍ경북지역의 대표적 랜드마크로 부상할 것으로 관측된다.

크기는 지상 9층, 지하 7층에 전체면적 33만8000㎡(약 10만242평), 영업면적 10만3000㎡(약 3만1212평) 규모로 부산 센텀시티점에 이어 전국 2번째다. 700여개 브랜드가 입점하고, 투자비만 8800억원이 들었다. 정 총괄사장의 작품으로 불리는 뷰티멀티숍 ‘시코르’에만 220개 브랜드가 들어섰다. 그는 오픈 전 다섯차례 이상 현장을 방문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장재영 신세계 대표는 개장 직전 “정 총괄사장은 여성 오너라는 장점을 살려 백화점 경영에서도 섬세함과 디테일을 강조한다”며 “디자인과 패션 공부를 오래 한 만큼 백화점 곳곳의 다양한 콘텐츠에 대해 직접 의견을 낸다”고 소개했다.

대구신세계가 지역 현지법인으로 운영된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광주신세계에 이어 두번째다. 40년 전 경험을 살려 일찌감치 지역 친화 백화점으로 출발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700여개의 입점 브랜드 중 대구 지역 브랜드가 130개 정도다. 직접 고용 인원 5000여명 중 95% 이상이 대구 시민이다. 신세계 측은 간접 고용 효과까지 고려하면 1만8000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설명한다.

기존 유통업체들과 대구신세계가 어떤 경쟁 국면을 연출할지도 관심거리다. 연매출 7000억원대의 현대백화점과 4000억원대의 롯데백화점, 대구신세계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게 분명하기 때문. 이들은 소위 유통 빅3다.

지역 친화 백화점으로 승부

장재영 대표는 “내년 대구신세계는 60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예상한다”면서 “온라인 쇼핑 등이 제공 못하는 콘텐트와 가치를 바탕으로 과열 경쟁 대신 멀리 보며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봉수 대구신세계 점장(부사장)은 “대구의 기존 6개 백화점의 연매출은 1조6000억원 정도”라며 “대구신세계 오픈으로 약 2조원으로 파이가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전망이 맞을지는 최소한 1년 정도는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는 게 업계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내년(2017년)이 정 총괄사장의 홀로서기 경영능력을 판가름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본다. 특히 대구신세계 성공 여부가 시금석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40년 전 실패 경험을 극복하고 현대백화점ㆍ롯데백화점을 비롯한 쟁쟁한 경쟁사는 물론 터줏대감인 지역백화점 등과의 경쟁에서도 이겨야 하기 때문. 20년 만에 공식 행사장에 얼굴을 드러낸 그가 향후 어떤 경영 행보를 이어갈지 눈길이 간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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