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프리존 문제점➊ 기업실증특례

▲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안전성 검사를 똑바로 하겠냐는 우려가 나온다.[사진=뉴시스]
혁신제품이 시장에 론칭됐다. 소비자는 열광했다. 안전성 검사까지 통과했으니 믿을만도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 제품의 문제가 몇년이 흐른 뒤 나타났다. 안전성 검사도 알고 보니 기업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것이었다. 규제프리존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피해신고 4893명, 사망자 1012명. 지난 10월 24일까지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신고 및 사망 판정 현황이다. 문제의 옥시 가습기살균제는 1999년 안전성 검사를 마치고 2001년 10월 판매를 시작했다. 그 이후 가습기살균제는 10년이 넘는 기간 시장ㆍ가정회사 곳곳을 누볐다. 옥시의 가습기살균제는 안전성 검사를 분명히 마쳤다. 그런데 왜 문제를 일으켰을까.

가장 큰 원인은 해당 제품이 안전성 검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유리한 부분만 실험을 진행하고 불리한 부분은 실험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안전성 검사에는 흡입독성 검사와 피부독성 검사가 있는데 인체유해성이 높게 나타날 게 분명한 흡입독성 검사는 실시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반쪽자리 안전성 검사를 통과한 가습기살균제는 시중에 나와 1012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안전성 검사 절차와 방법을 공적으로 입증할 만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전성 검사 등을 더 모호하게 만드는 법안이 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규제프리존법)’이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건 제13조 기업실증특례 조항이다. 골자는 이렇다. “규제가 없거나 부적합불합리한 경우 기업이 사업에 대한 안전성을 실증하면 사업을 허가한다.” 언뜻 봐도 기업에 안전성을 맡기는 조항이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까닭이다.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생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질이나 기술은 공적으로 다뤄야 한다”면서 “제품이 쪽박 날지도 모르는데 기업이 안전성 검사에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일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도 비용 부담 탓에 제대로 못하는 안전성 검사를 기업에 맡긴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더구나 정부의 인프라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비경제적이기까지 하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기업실증특례가 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되레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바이오의약산업 같은 경우 해외시장에 진출하려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야한다”면서 “개별 기업의 기준에 따라 안전성을 실증한다는 건 내수용에 그치거나 비용을 들여 또다시 실험을 해야 한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근시안적 사고가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규제프리존법 제14조는 “안전성에 문제가 생길 시 기업실증특례를 취소한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제품의 문제가 수십년 후에 나타난다면 리스크를 해소하는 게 불가능해서다. 일례로 옥시 가습기살균제의 문제점이 발견되는 데는 무려 10년이 걸렸다. 규제프리존법 제13조를 두고 ‘악마와의 거래’ 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